그런 사연도 있는데다 한두번 광고를 하셨으면 됐지 스피커를 통해 반복되는 말소리는 2,30분이 넘도록 그칠줄 몰라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미국에서 있었으면 얼마 안 지나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좋은 소리도 한두번이라는데 계속되는 이 소음을 다른 이웃들은 어떻게 참아내고 있는 지 의아했다. 15년 전에는 절간같은 미국집에서 숨막혀 패닉이 되더니 이젠 도시 소음이 거슬려 내가 서울 출신 맞나?란 의구심을 갖게 된다. 미국 살 적에는 뉴욕이 고향땅 같더니만 말이다. 역시 인간은 환경적 동물이다. 처해진 환경에 맞추어 무한변신이 되지 않는가. 도시인으로의 재기를 위해 이런 소음쯤 참아내야 한다고 최면을 걸다가, 갑자기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에 항의를 해볼까 하다가, 한국문화는 그런 상행위를 허용하는게지… 그 아저씨도 생업을 위해 열심히 뛰고 계실 뿐인데… 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속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주택환경 선호도는 확연히 다르다. 미국은 렌트를 하는 아파트를 제외하면 고속도로에서 떨어지고 소음과 차량의 통행이 적은 곳이 인기가 있다. 그런데 한국은 주상복합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편의 시설이 갖춰진 주거지를 선호한다. 대중교통도 발달했고 자가용 소유율도 높아서인지 도보로 30여분 떨어진 곳을 걸어서 갈만한 거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좁은 나라를 매우 넓게 살아간다. 30분이라고 해봐야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걷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당도하게 되니 이런게 바로 한국 사는 재미인데 말이다. (운동과 관광이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는가)

쓰기를 포기하고 읽기를 시도해 본다. 하지만 지면에 박힌 글자에 자꾸 편백향은 천식과 비염을 낫게 하고 집먼지진드기도 없애주며 잠을 잘 자게 도와준다는 말소리가 섞여들었다. 그래서 시원한 결명자차에 홍삼분말가루 한 팩을 섞어 보온병에 넣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뒷 산에라도 다녀오는 편이 나을 듯 싶었다. 김밥 한 줄 사서 산 정상에서 먹고오면 근사한 점심외출도 될 것 같았다. 이것도 한국 사는 재미란 생각이 들자 기분이 씻은듯이 청결해졌다. 그런데 외츨 준비로 분주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로우지가 말했다. “나도 좀 데려가 줘요.” 천천히 산을 오르며 사색을 좀 하고 싶었지만 내 욕심만 차리기엔 로우지의 간절함이 너무 진했다. 그래서 그러마, 했다.

대낮이어서인지 산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로우지는 첫 산행이지만 평지와 계단 뛰어다니던 경험을 살려 멋지게 산을 오르내렸다. 울울창창한 여름산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게 할만큼 그늘이 풍만했고 잎새 더더귀더더귀 붙은 가지는 풍향따라 흔들리며 간지러운 바람을 투척했다. 로우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른 산의 정상엔 두 개의 벤치가 놓여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온 몸에서 벌레가 기어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벌레들은 다름아닌 땀방울들이었다.

시원한 홍삼결명자차를 들이키고 나자 산을 이토록 간단히 오를 수 있는 환경이 복처럼 느껴졌다. 이런게 한국 사는 재미지…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