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호텔 발코니 문을 여니 귓바퀴 안으로 물소리가 밀려들었다. 달조차 가버린 그믐밤이라 널린 건 암흑 뿐이었다. 나는 가끔 한밤중에 우리집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대로를 가르는 차소리를 파도소리로 바꾸어 듣는 연습을 한다. 그러면 대서양도 태평양도 멕시코만도 떠올라 얼굴 가득 미소가 퍼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잠시 파도소리인지 차소리인지 혼란스러웠다. 동공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눈 앞에서 포말이 일고 있었다. 제주도의 푸른 밤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제주도는 나와 남편을 이어준 섬이기도 했다. 대학 새내기때 한마디로 노는 클럽을 찾고 있었는데 제주도에 간다는 선배들의 말에 혹해 덥썩 그 동아리에 들어갔다. 거기서 여학생들이 많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들어온 남편을 만났고, 그래서 우리는 결혼까지 했으니 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좌우한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해당되리라. 그 해 동아리에서 장기등반으로 한라산에만 가지 않았어도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의 남편과 아내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일이 서로에게 행운이었을 지 어땠을 지는 죽을 때즈음 판명이 날 것 같다. 어쨌거나 죽을 때 웃고 싶어서 열심히 살고 있다.

제주의 영주십경중에는 성산일출봉이 있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아내는 광경이 장관이라 제주 시인 이한우(1818-1881)가 영주십경으로 꼽았다. 성산 일출봉은 2000년도에 천연 기념물로 지정이 되었다. 나는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만 스물 일곱까지 남들로부터 천연기념물이란 지적질을 당했다. 키스도 해 본적 없는 쑥맥을 일컫는 말이라 했다. 기암할 일은 남편의 첫 키스 상대도 나란 사실이었다. 남자나이 만 스물 일곱에 첫 키스를 자기 와이프랑 하는 사람은 뭐라 불리우면 좋을까… 별꼴기념물?? 그래서인지 내 첫 키스는 달콤하기보다는 축축했다. 아무리 경험이 없었다기로소니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내가 그 달콤함을 얼마나 꿈꾸어 왔는데… 그럴줄 알았으면 첫 키스쯤 연애 베테랑과 해 볼 걸 그랬다.

성산일출봉은 수중에서 폭발되 굳어진 용암이 처음엔 섬처럼 독립된 화산체를 이루었으나 오랜 세월동안 사주가 형성되어 나중에 본섬과 연결이 되었다. 남편은 혼자 오랫동안 나를 가슴에 담고 살았다. 한 두번 고백도 해보았으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해 수년간 홀로청청 바다에 떠있었다. 우리가 대학 동아리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그때부터 연애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과 나의 합체는 제주도와 성산일출봉의 연결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성사된 일이었다.

남편은 결혼 전까지 내 순결을 지켜주었다. 첫 키스가 축축한 사람다웠다. 지금은 혼전 순결이란 것이 의미가 없어진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중히 여기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존중해 주었던 그에대한 고마움이 살다보면 한두번은 찾아오는 부부간 거친 파도를 헤쳐가는데 큰 지탱목으로 작용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good kisser에 현혹되기 보다는 너와 네 마음을 중히 여기는 남자를 바라보라고 이 땅의 딸들에게 말하고 싶다. 결혼생활의 파고가 제주도의 낭만처럼 부드러워질 것이다. 물론 그 남자의 키스가 달콤하기까지 하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ps

제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테이블산, 베트남의 하롱베이, 아르헨티나의 이과수폭포, 브라질의 아마존, 필리핀의 지하강, 인도네시아의 코모도와 함께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꼽힙니다. 미국의 그랜드, 자이언트, 브라이스 캐년과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도 있는데 그것들을 제치고 선정된 것만 보아도 이 7대 경관은 가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라 생각됩니다. 제주에 가서 이한우가 말한 영주십경을 돌아보면 그 정답이 나올 듯 합니다 영주십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산일출(성산의 해돋이) 사봉낙조(사라봉의 저녁놀) 영구춘화(영구의 봄꽃) 정방하폭(정방의 여름폭포) 귤림추색(귤림의 가을 빛) 녹담만설(백록담의 늦겨울 눈) 영실기암( 영실의 기이한 바위) 산방굴사(산방산의 굴 절) 산포조어(산수포구의 고기잡이) 고수목마(풀밭의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