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지수라는 말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것이 높으면 짜증이 난다. 내 성질이 고약해서 뿔을 내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나이를 헛으로 먹는다고 자조할 뻔 했는데... 안심이 된다.

오투린이라는 소주를 판매하는 회사의 주인장이 대전의 계족산에 진흙을 깔아놓았다.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한 편에 마련된 황톳길 위를 맨발로 덤벙덤벙 걸어 산을 오르내린다. 미끈미끈한 찰흙이 신경의 집결체이고 건강의 주춧돌인 발바닥을 주무른다. 수림에서 배출되는 피톤치드랑 힘을 모아 쌍으로 인간의 몸에 유익을 준다! 황토를 전라도에서 퍼나르느라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는데 그 주인장, 소주 팔아서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

강아지까지 대동해서 계족산으로 나선 우리집 나들이는 초장부터 난해했다. 도대체 이 날씨가 날씨가… 아무리 불쾌지수가 높다 해도 이럴 수는 없었다. 나들이가 아니라 노역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우리집 식구 모두 그랬다. 남들은 태평해 보이는데 우리 가족은 건드리면 폭발할 지뢰처럼 위태로웠다. 익숙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분단이었다. 익숙한 자들은 오히려 긴팔 긴바지를 입고 유유자적 희희낙락이었다. 반면 익숙치 못한 자들은 입을 꾹 다물고 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오름길에는 신발을 벗고 말캉말캉한 황토를 밟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냥 아무 것도 나를 건드리지 않길 바라면서, 내딛은 길이니 산자락 깊숙이 올라가서 게곡이나 나무그늘이 늘어진 곳에 돗자리를 펴고 드러누울 생각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시지프스의 것같은 무거운 옮김이었다.

좁은 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시야가 트였다. 기다란 병목이 끝나고 병체가 시작된 자리에 간이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를 향한 채 사람들이 뭉텅뭉텅 모여 앉았다. 족히 200여 명은 되어보였다. 지뢰같은 우리도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2시가 되자 정장과 드레스를 입은 성악가들이 한여름 낮의 음악제를 열었다. 그들의 청량하고 웅대한 목소리가 산자락을 윙윙 흔들었다. 머드팩을 한 발들이 여기저기서 흥얼흥얼 춤을 추었다.

1시간동안 이어진 공연을 보면서 대한민국 좋네! 라고 외치는 메아리가 내 가슴골골에서 수차례 울려퍼졌다. 자연이 설치한 지뢰도 제거해주는 나라!

뜨거운 태양도, 눅진 공기도, 비리로 얼룩진 부자들과 판단력과 정의감이라고는 엿바꿔 먹은 해경이나 골 빈 뱃사람들, 야바위꾼같은 정치꾼들도 들어 있지만 발마사지를 하면서 피톤치드를 흡입할 수 있는 금수강산과 한 여름 낮의 산중턱 음악회와 황토를 실어나르는 자본가와 본질을 흐리는 옷,신발 메이커 타령이나 근거없는 내연녀설에대한 설왕설래를 자제하고 사건의 핵심을 보자고 선도하는 메스컴도 들어있는 한반도... 참 미운 정 고운 정 들게 하는 마력덩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