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우리 가족중 가장 한국화 된 일원이다. 나머지 식구보다 4개월 더 체류한 티가 팍팍 난다. 운전이 거칠어졌고 성격이 급해졌고 남자 할 일, 여자 할 일을 슬슬 구분하기 시작했다. 식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귀히 여기지 않기 시작했고 스마트폰 세계를 탐닉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를 넉넉한 눈으로 해석해 주자면 좁고 복닥거리는 삶의 현장에 가장 많이 노출된 입장이며 환경적응력이 뛰어난 성정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남자의 와이프이고 내 남자의 여유롭고 자상했던 옛 모습에 자꾸 미련이 갈 수 밖엔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처럼 남편도 본연의 장점을 잃지 않기를 충고한다. 성인인 남자는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하니 외유 끝에 스스로 제자리에 안착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사랑으로 충만한 노후가 도래할 것이다.

두번째 주인공은 우리 막내다. 막내는 여느 외딸, 외아들처럼 약간은 떼쟁이가 되고 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 아쉽게도 어수선해 졌다. 속이 깊고 정확한 판단을 할 줄 알면서도 가끔 생떼를 쓰는 걸 보면 그게 재미있어 보였나 보다. 처음엔 너무 낯설어 어이가 없었는데 지금은 이도 지나갈 일이겠지,하며 눈을 감는다. 막내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면서 한국 어린이로서 손색없는 자태가 되어간다. 경주에 갔을 때 첨성대를 보아야 한다며 온 가족을 제일 먼저 첨성대 앞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고대 삼국 중 신라의 지지자가 되어 신라문화의 우수성을 토로하기도 하고 한국과 미국에대한 자체 평가에도 재미를 붙였다. 그만큼 한국에대해 알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몇 주 전에는 부회장 선거에도 나갔다.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으니 회장은 안 되겠고 부회장을 해보고 싶다며 열심히 연설문을 작성하여 엄마에게 번역을 부탁했다. 나는 내심 이를 말려야 하나 어쩌나 고민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임원이 되려면 일단 공부를 잘 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전교 꼴등님이니 말이다. 표를 못 얻어 실망을 하면 그 일이 상처일까 걱정이 되는데 미국 마음이 불쑥 튀어나와 좋은 경험을 한다는데 왠 염려니,라며 꾸짖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막내는 초반에 승승장구하다 막판 뒤집기 당한 무용담을 이야기했다. 결국 한 표 차이로 투표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와~~ 내게는 그 사실이 당선만큼이나 기쁘고 기적으로 다가왔다. 그날 저녁 우리는 케익을 사다 막내의 선전을 축하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막내는 그날 점심 메뉴를 읊조리 듯 담담하게 체육부장이 되었다는 말을 했다. 이번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이겼는데 상대 친구에게 미안했다면서 앞으로 그 친구에게 잘 해주어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두 손을 살포시 포개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거푸 되뇌는 일 외에… 물론 속으로 말이다. 막내의 깊은 속과 한국에서의 분발의 합체는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발전된 삶인 것이다.

우리는 귀국 1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살이에대한 소감을 이야기 했다. 남편은 무례한 운전자들을 빼면 한국 생활에 별 불만이 없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한국화된 사람이니 말이다. 큰 딸은 말했다.

"한국 친구들은 예쁜 것에 너무 집착을 해요. 모두들 졸업을 하면 변신할 거라고 해요. plastic surgery 를 로망처럼 생각하고… 또 먹는걸 진짜루 좋아하는데 먹을 때는 신나게 먹다가 먹고 나서는 큰일 났다고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모두들 착하고 또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주로 화제로 삼으니 좀 어리둥절해요. 미국 친구들은 그런 화제들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공부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던가, 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은 다이어트를 신경쓰지 않는다던가, 뭐 그렇게 나뉘는 편이었는데…”

큰 아이의 말을 정리해보면 너무 멀티여서 개성이 없어보인다는 의미이다. 하나의 가치관이 진리처럼 만연화 되었다는 소리이다. 나는 그것이 네게 어떤 영향을 주더냐고 물었다.

"미국 살 때는 내 외모에 전혀 불만이 없었는데 지금은 쌍꺼풀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요…”

크크... 이건 당연한 동화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양악수술을 하고 코를 높이고 가슴을 키우고… 라고 하지는 않았지 않은가.

“그래, 대학 들어가면 해줄게, 엄마가 했으니 딸도 해도 되지 뭐…”

대답을 하면서 나는 내가 더 잘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쌍꺼풀 수술은 어쩔 수 없다지만 딸들이 잘 못 한국화 되는 것이 엄마의 전철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복지관에서도 플륫 앙상블에서도 봉사하는 일이 즐거운 우리 큰 딸, 생각해보면 많이 미안할 수도 있었는데 한국에 데려오길 잘 했다고 위안을 받는 이유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느껴지는 밝은 기운때문이다. 큰 딸 때문에 귀국 전 고심이 심했던 나를 지켜 본 한 언니가 물었다. 1년을 보내고 난 소감은 어때?

“응 , 잘 한 일 같아요…”

세상의 가치관과는 다른 의미겠지만... 1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