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와 강남스타일
나는 가수다,라는 한국 TV쇼가 있다. 취지가 좋다. 비쥬얼 풍 아이돌가수들에 밀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실력파 기성가수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위해 기획되었다. 12명의 가수가 배틀을 벌여 1등은 연말 경합을 기약하여 떠나고, 꼴등은 탈락해서 떠난다. 그 빈 자리를 새로운 얼굴들이 메꾸어 다시 배틀을 벌이는 이 프로는 서바이벌식 콘서트장이다.
프로가수끼리의 치열한 경쟁구도가 이 프로그램의 구동력이다. 그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스트레스가 된다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그만한 감동이 없다. 노래 실력이 발군인 가수들이 세상에 남겨진 명곡들을 최선의 경지로 열창을 하니 그보다 나은 산 좋고 물 좋은 형세가 없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종종 소름이 돋고 감동으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귀가 정화되고 가슴이 행복해져서 자꾸 듣고 또 들을 때도 있다. 노래가 끝나도 곧바로 현실의 자신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가수들을 보면 마음에 파문이 인다. 어떤 가수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어떤 가수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가수는 마취에서 깨어난 듯 눈을 번쩍 뜨고 휘청거리며 무대를 빠져나온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노래와 혼연일체를 이룬다. 가사속 주인공이 되어 짧은 시간동안 새로운 영혼을 살다가 노래가 끝나는 순간 현실로 돌아오면서 그런 혼란을 겪는가 보다. 배역에 빠져 자아를 망각하곤 한다는 연기자들의 환각이 가수들에겐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멋지다. 매우 부럽고 나도 저렇게 살고싶다는 열의를 가지게 한다. 대상과 혼연일체가 되는 것만큼 진심을 전달하는 좋은 수단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글이라고, 혹은 연설이라고, 또 눈빛, 행동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래서 진심은 통한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까.
음악이란 보는 예술이 아니라 듣는 예술이라는 생각을 가진 나는 그래서 그 프로에 감사할 지경이다. 미니 스커트를 입고 다리를 흔들거나 잘생긴 얼굴들이 화면을 장악해서 여심을 녹이는 현 대중음악은 그 현란함때문에 노래가 묻힌다. 그럴수밖에 없다. 오감이 분산되지 않고 하나로 모이면 초월적인 힘이 발휘되지 않는가. 그래서 노래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으면 눈을 감는다. 비쥬얼에 치중하다보면 어떤 가수들은 노래보다는 화면의 잔상만 남는다. 보는 음악을 즐기는 세태가 현 주소라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음악과 춤은 엄연히 구분되는 쟝르인 것을 그 둘을 합한 세계만이 만연된 현실은 그래서 조금 안타깝다.
그래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나는 시답지 않았다. 하도 유명세를 타기에, 또 조그만 아이들까지 화제에 올리기에 유튜브를 통해 뮤직비디오를 보긴 보았다. 그런데 이런… 쯔~읏... 첫인상은 그랬다. 장면마다 유치빵빵이요, 가사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예술성이라거나 뮤직 밸류면에서 깊은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유튜브 클릭 多로 기네스북 기록? 요즘 젊은이들 취미 독특하네. 미국의 이런저런 쇼에 출현? 미국애들 취향 싱겁네… 한국이 잘 되는 일이라면 쌍코피를 터뜨리며 흥분하고 마는 내가 강남스타일의 고공행진 앞에서는 왜그리 시니컬한지… 게다가 빌보드 메인 챠트 2위란 헤프닝에는 빌보드 챠트가 생각보다 별 것 아니란 결론까지 내리고 말았으니 싸이씨한테 원수진 일도, 게다가 내 사촌도 아닌데 대체 무얼 잘못 먹고 고약한 심보를 부리는 것인지… 뒷걸음치다 우연히 밟은 것이든 어쩌든 세계인의 취향을 꿰뚫은 싸이가 대단한거지 어찌 빌보드 챠트에대한 리뷰가 그리 전락되누? 남편은 진기한 와이프 발언에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대체 뭐야? 나만 모르는 강남스타일의 진수가 진짜 있다는 거야? 아무리 마카레나류의 One time hit이라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혼자만 음맹인(음악의 문외한^^)처럼 게다가 한국 가수의 화려한 세계 축제를 즐기긴 커녕 안티처럼 대립선에 서있는 것이 꺼림직 하긴 했다(나는 주옥같은 국내가요를 제치고 이 음악이 뜬다는 사실이 불만인 것이다). 그래서 속는셈치고 한번 더 강남스타일을 살펴보기로 했다.
다시 본 뮤비는 처음보다는 거부감이 덜했고 덜 유치했으며 흥겹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별 기대 없이 보기 때문일거야, 그런 생각을 했다. 미셀 박의 티토리얼에서 싸이는 말춤 추는 법을 설명해주었다. 말을 타고 있다는 상상을 할 것. 하체는 선 채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왼발. 이런 식으로 4스텝을 밟고, 팔은 길게 뻗어 손목을 교차시켜 부드럽게 흔들어주고 채찍도 휘휘… 그러나 표정은 매우 진지하게… 그렇게 쉽게 설명을 해주자 왠지 따라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벌떡 일어나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치며 스텝을 밟아보았다. 으쌰 으쌰, 이상히도 흥이 났다. 어라? 재밌네. 나는 뮤비를 다시 틀어 말춤 추는 부분을 신나게 따라했다. 오호호, 제법 즐거웠다. 별 생각 없이 따라만 하는데 환각제라도 들이킨 듯 신명이났다. 그러다 땀을 삐질거리며 들썩이는 내 모습이 너무 웃겨서 으하하하,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자려고 들어갔던 아린이가 엄마 뭐해?하며 쪼르륵 내려왔다. 엄마 왜 그 춤 춰?라고 묻는데 그냥이라고 대답하며 춤을 멈추지 않자 아니나 다를까 아린이가 저도 따라 다리를 마구 들썩대며 팔을 휘두른다. 재밌지? 재밌어… 이러면서 우리 모녀는 쿵쾅댔다. 고고한 사춘기 큰 딸은 내다볼 생각도 안 하고 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늦은 밤. 옆 집에 들릴 것이 틀림없는 소란이 너무 오래 지속됐다는 자각이 들었을 땐 숨이 찼다. 그제야 늦었으니 어서 자라며 아린이를 올려 보내고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조선일보에 스트레스가 많은 정신과 환자들이 이 음악을 틀어주자 평소와 다르게 자유롭게 웃고 흔들더라,는 기사도 떴다. 정말 그럴만 하다고 느꼈다. 굳이 환자가 아니더라도 보통인도 그렇게 되더라, 이건 내 경험담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엘렌 쇼를 보았다. 초대손님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독설가 사이먼이 나왔다. 그들은 강남스타일 뮤비중 말춤부분을 감상하며 웃었는데 그 순간 깜짝 손님으로 싸이가 나왔다. 통통한 30대 중반의 몸이 흐물흐물 춤을 추었다. 엘렌이 싸이에게 말춤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러자 싸이가 말했다. 내 소개를 좀 해도 되요? 그러더니 관중을 향해 난 한국에서 온 싸이예요,라고 외쳤다. 소개를 하고싶다더니 딱 한 문장?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는 Psy come on out,이란 소개로 그 자리에 섰거늘… 엘렌이 다시 한번 반복했다. Psy from Korea! 그때서야 나는 그가 꼭 ‘한국’을 언급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아, 코 끝이 시큰해 졌다. NBC today 뉴스에서는 그의 특집을 갖고 아나운서는 안녕하십니까를 말하고 인터뷰 도중 싸이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바로 이런 거구나, 나라를 알리고 빛낸다는게… 비로소 나도 그가 자랑스러워졌다.
강남스타일은 파괴의 문법, 혁신의 기획을 오롯이 담았다고 뮤즈어라이브의 대표는 분석했다. 고비용의 화려한 뮤비의 틀을 깨고, 한두사람의 전문 안무가의 아이디어에만 의존하지 않고 상금을 걸어 전국의 안무가들의 아이디어를 참고한 결과 보다 창의적이고 신선한 컨텐츠가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저작권을 빌미로 패러디를 금하는 관행을 버리고 각종 패러디를 허용함으로써 후광효과도 거두었다. 제일기획의 연구에 따르면 불황기의 소비자 심리에는 다섯가지의 독특한 구매행동이 나타나는데 그 첫번째가 ‘더 강한 원초적 자극’이라고 했다. 섹시코드, 감각적인 유머에 말춤을 곁들여 오감을 자극한 것이 그 성공 포인트가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 세계 강타는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서, 내가 좀 구닥다리라 몰랐을 뿐, 현시대 사람들과 너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밸류 높은 비주얼 뮤직이었다.
미국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은 강남스타일 뮤비를 놀랄만큼 훌륭하다고 칭송했고 미국의 톱가수 저스틴 비버를 키운 스쿠터 브라운은 이제 싸이의 매니저로서 재미있는 강남스타일 이벤트를 발굴해 낸다. 그 중심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아로새겨지고 있다.
나처럼 강남스타일을 시답잖게만 여겼던 미씨 여러분이 계시다면 강남스타일 말춤을 직접 한번 따라해 보시면 어떨까. 슬슬 흥이 나면서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신비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이다. 또 나는 가수다,를 모르셨던 분들께는 그 프로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정수와 향수를 동시에 느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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