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 참 대단하다
우리 남편 참 대단하다. 홀로 청청 기독교인이던 그가 지난 한 해동안 자신의 최측근에서 꿈쩍도 않던 세사람을 한꺼번에 하나님 품으로 투하시켰다. 그것도 말 한마디 없이, 강권 한번 없이 세사람의 자유의지를 일으켜서… 그 세사람이란 바로 그의 부모님과 아내, 즉 내겐 시부모님과 나 자신이 된다. 남편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 일인데 그동안 일요일이면 꿋꿋하게 집을 지키던 아내와 70평생 무종교인으로 살아오신 부모님을 일석(一石)에 삼조(三鳥) 잡 듯 하나님을 찾게 만든 걸 생각하면 남편이 한 일은 대단한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그 일석(一石)은 강렬한 한 방이었다. 바로 실직!!
사실 남편 직장에서는 진작부터 실직에대한 경고를 공표했다. 남편의 직업은 교수인데 미국 대학에서는 조교수동안 업적을 심사해 통과하면 부교수가 되고 정년도 보장받지만 통과하지 못하면 그 학교를 떠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름하여 tenure review (종신제 심사)라 한다. 그 과정에 있는 사람을 tenure track에 있다하고 통과한 사람을 tenured되었다고 한다. tenure를 받으려면 정해진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그 기준은 학교마다 다르고 학과마다 다르다. 실력, 노력, 인맥, 현시대의 경제 상황, 운 등등이 성패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큰 학교일수록 정해진 통과 기준에 엄격하고 작은 학교로 가면 인지상정도 통하는 듯 하다. 심사는 1차로 부,정교수들에의해 논의되고 그 결과를 대학정부에 상정하여 2차 심사를 받는다. 1,2차에서 모두 통과하면 비로소 정년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후 늙어 꼬부라질때까지 lay-off에대한 걱정없이 살 수 있으니, 젊어 고생 사서 한다는 한국 속담이 빛을 발하는 시스템이다. 남편은 그 tenure review에서 가로막혔고 이제 몇 개월 후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
우리 남편 참 대단하다. 종신제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했다는 통고를 받은 후에도 밤이면 어김없이 크릉크릉 코를 곯고 때 되면 우걱우걱 밥도 잘 먹었다. 그 뿐인가, 시간 나면 바다에도 가고, 퍼레이드 구경도 하고,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때면 고개를 젖히고 하늘로 웃음을 날렸다.
부창부수라,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심사 전에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한숨이 새어나왔는데 결과를 알고나니 오히려 속이 시원해졌다. 지난 1년여간 우리 부부는 마치 내일과는 상관없이 오늘만 사는 인류처럼 그렇게 지냈다. 한 몸이 된 우리 부부의 몸 어딘가엔 나쁜 운명쯤 맞짱 뜨자는 근성이 쌍으로 배어 있는가 보다. 좋게 말하면 옵티미스트 커플이고 천박하게 표현하자면 푼수형 인간들이 된다.
우리 남편 참 대단하다. 젊어 고생 사서 하라는 말은 귓등으로 듣더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에 열빠(열라 빠짐^^)한다. 이제 젊음도 체력도 한물 간 이제, ‘인류를 복되게 하는 논문’을 쓰겠다는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리 깔아줬을 때는 하늘 보고 별을 세더니 그 자리를 돌돌 말아 세우고 맨 땅이 드러나자 헤딩을 하겠단다. 허나 better than nothing,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지금이라도 원대한 꿈을 꾸니 나쁠 것은 없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복이 되겠다지 않는가. 이렇게 큰 꿈을 꾸라고 낙방의 관문을 뚫고가게 하셨는지…^^ 반복해서 말하다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말뿐이면 안 되겠지만, 당근!!). 남편의 직업과는 별세계에 사는 내가 남편을 도울 방법이 있다면 바로 인류를 복되게 하는 논문을 쓴다,란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 남편 참 대단하다. 그녀의 남편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아내와 자식을 행복하게 해준다. 그녀의 남편은 지난 해 직장을 잃고 집에 머물고 있다. 막 집을 산 사람들이라 모기지 걱정도 태산이다. 나는 빨리 직장을 구해서 다시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진심어린 덕담을 건넸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행복, 그보다 더한 걸 바랄 순 없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지금도 행복해요. 남편이 집에 있으니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침에 졸린 아이 억지로 깨워서 프리스쿨 안 보내도 되고(프리스쿨 그만 두어서), 남편이 생일 케잌도 구워주고, 하루종일 말동무 되주니 심심하지 않고… 그녀는 이런게 행복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왜 아니겠어요… 나는 하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타당했고, 참행복을 아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처럼 우리 남편도 친절한 사람이어서 나는 시계추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갤갤 웃었다.
우리 남편 참 대단히다. 이 나이에 새 기차로 갈아타고 낯 선 여행을 꿈꾸게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앉아 남편의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오래오래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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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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