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맛

지난 주 우리 집에서는 냉이 된장국이 이슈로 떠올랐다. 난데없이 냉이 된장국에대한 관심이 높아진 두 딸들로부터 갖가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냉이가 영어로 무엇이냐에서부터 냉이는 어떻게 생겼는가, 냉이 된장국 맛은 어떠한가. 왜 봄에만 먹는가…

한국에 있는 남편과 대화하던 중 냉이 된장국을 먹고 싶다고 한마디 했더니 그 말을 엿들은 딸들이 그때부터 저희들도 냉이 된장국 타령을 했다. 난데없이 냉이 된장국을 먹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된 자로서 새끼들이 먹고싶어하는 것을 공수해야할 의무를 띄고 한국 마켓에 날아갔지만 냉이,라고 씌여진 태그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나도 냉이가 어찌 생겼는 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긴 뿌리같은 것이 있다는 기억이 있지만(구글 이미지에서 보니 그 기억이 맞았다) 향도 맛도 생김새도 익숙한 식재료는 아니었다. 시원할까? 구수할까? 혀에 휘감기는 감미로운 맛일까? 생각해 보려해도 향긋한 달래 맛만 떠올랐다.

미국서 사는 14년동안 봄이 되었다고 봄나물 찾아와 밥상에 올리는 살뜰한 주부짓을 해 본 적 없는 내가 왜 갑자기 딸내미들까지 휩쓸어 냉이 된장국 식탐에 빠졌는지…  어쨌거나 봄 맛일거야… 사방천지에 흐드러진 봄풍경에 취해 나는 봉지에 냉이 된장국이라고 쓰인 제품을 사다가 쑥과 함께 넣어 끓여 먹고 그렇게 결론지었다. 대체 먹고 싶다면서 무슨 맛인 지도 모르는 이 난해한 시츄에이션은 무엇이란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안엔 고향의 봄 맛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들어있었던 듯 하다.

내 고향의 봄 맛은 미아리 삼양동이란 곳에 흠뻑 피어있다. 봄 맛 뿐이랴, 겨울의 군밤 맛, 여름날의 수박 맛, 가을의 홍시 맛까지 떠올리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여 눈시울까지 흥건해지는 향취가 그곳엔 그득그득하다. 학교 갔다와서 숙제를 마칠무렵이면 집 앞 골목은 어김없이 동네 아이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야구와 고무줄과 술래잡기의 진한 맛이 숨어있는 곳. 여름날이면 돗자리를 깔고 향과 부채로 모기를 쫓으면서 황도와 백도와 청포도와 흑포도의 단즙내가 흥건하던 곳,  해거름에는 여지없이 저녁 먹으라고 부르던 엄마들의 젊은 목소리가 퍼져 있는 곳… 그 곳에서 피어나던 철쭉과 개나리가 그래서 내게는 가장 어여쁜 봄 꽃이 되었다. 한국 가면 미아리 삼양동에 내 딸들을 데리고 가, 엄마의 어린 시절 사계절 맛을 생생하고 세세하게 그려주어야 겠다고 꽃 핀 봄날에 나는 다짐한다.

70년대에 절정을 이루던 엄마의 소박한 봄 맛과는 사뭇 다르게 2013년의 봄 날을 맞이하는 우리 딸들은 훗날 색깔도 모양도 휘황찬란한 봄 맛을 간직하며 살게 될 듯 하다. sweet 16이 되는 큰 딸은 학교에서 sophomore를 위해 개최하는 선상 위의 댄스파티와 선배들의 프롬파티, 멋진 드레스와 꽃다발 등을 봄의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리라. 그러면 배 위에서 제공하는 파스타, 샐러드, 롤, 캔소다, 웃음과 수다… 등이 sweet 16의 봄 맛으로 남게 되겠지… 이제 10살 된 작은 딸내미는 이번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레모네이드 스탠드를 계획하고 있는데 거기서 얻은 수익금은 소아암에 걸린 친구들을 위해 쓸 예정이란다. 그 하루, 해님이 반짝여 주면 준만큼 밝고 따스한 기억을 간직하게 될 둘째의 봄 맛은 그래서 시큼 달콤한 레모네이드 향이 되지 않을까,한다.

2013년도를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내 딸들에게는 파스타, 샐러드, 레모네이드와 더불어 냉이향이 밴 쑥된장국 역시 봄 맛으로 남게 되리라. 동서양이 잘 어루어진 봄 맛, 이것을 나는 ‘퓨전 봄 맛’이라 이름 지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