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혼인의 중요성

베트남에서는 혼사를 치룰 때 문당호대(門堂戶對)를 매우 중시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문당호대란 집안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비슷한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비단 베트남뿐이랴. 사회적 신분이 철저하게 구분되던 중세 이전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끼리끼리 혼인하는 풍토가 불문율처럼 자행되었다. 한국에서도 역시 비슷한 집안끼리 결혼해야 잘 산다는 옛말이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옛말치고 틀린 말 하나 없다’고 하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그 의미를 통감한다. 어른들로부터 무심코 듣고 자랐던 옛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후세의 입에서 내림처럼 흘러나오게 마련인데 곰곰히 되새김질하면 그 안에는 꼼싹없는 진리가 들어있는 것이다.

단, 10여년 전의 삐삐가 10년 후엔 구석기 낡은 유물로 변해버리는 시대조류에 맞추어 옛말들도 다각적으로 해석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예전에는 부부가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맞아야 잘 살 수 있었다지만 요즈음은 성격과 가치관과 교육과 취미 등이 비슷한 커플들이 장수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초고속 변화의 시대에서 ‘문당호대 혼인’은 어떻게 재해석되어야 할 것인가…

여담 하나 할까한다. 나는 오늘, 그간에 참아왔던 이웃에대한 분통을 두 딸 앞에서 볼썽사납게 터뜨리고 말았다. 그 화의 근원은 이웃의 무책임과 예의 바르지 않은 태도에서 기인하였다. 우리는 학기 초부터 아이들 통학 카풀을 하고 있는데 나는 등교 당번, 이웃은 하교 당번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관계로 날씨가 허락하는 한 걸어다닌다. 그러므로 날씨를 잘 파악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라이드를 주는 일이 각자의 책임인 것이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 날에도 픽업하러 가지 않는 경우가 수차례 발생하자 하교마저 늘 신경 쓰이는 실정이 되었다. 생일 초대를 했는데 답변도 없이 참석하지 않고, 집에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가 마음대로 우리집에 놀러오는 경우가 빈번해지자 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하교했을 때 문이 잠겨있고 열쇠를 잃어버려서 집에 들어갈 수 없다며 그 아이가 우리집에 왔다. 나는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이야기를 전하고 우리집에 데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분통은 이후에 터졌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데리러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세 살짜리 동생이 신발 신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누나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경우를 당하자 나는 슬슬 이마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안 왔다지만 제 일상을 제치고 3시간 동안 아이를 데리고 있어준 이웃에게 아빠라도 와서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범절 아니런가… 그렇다고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도 아니기에 나는 내 상식하고 맞지 않는 이웃의 행동이 그간의 불만의 틈에서 발촉제가 되어 끝내 펑!!하고 폭발을 한 것이다.

일단 화를 터뜨리고 나면 그 일을 잊는 것이 내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그 메카니즘은 슬슬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쪽으로 사고가 진전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역지사지가 되겠다. 그 나라 상식으로는 이 곳의 보살핌이 과보호처럼 여겨질지도… 이웃에서 3시간쯤 아이들을 봐주는 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할지도… 문화가 다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은 없어진다. 내가 모르는 그들의 문화와 사고를 내 상식선으로 측정하려 할 때에 문제는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일화가 있었다. 

20여년 전, 한 일본인 친구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한국 남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 간 그 한국 남자는 그녀의 옷장이며 벽장 등을 허락도 없이 열어본 모양이다. 그런데 그것이 일본인의 사고방식으로는 터무니 없이 몰상식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20여년 전의 나는 ‘여자친구에대해 알고싶은 털털한 남자의 허물없는 귀요미 짓’으로 봐줄 수 있다고 말해 주었고 이후로 그들은 자잘한 문화차를 극복하면서 사랑을 키워 결혼에 성공해서 지금껏 잘 살고 있다. 그런데 혹 지금 그 질문을 받는다면 나로서도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젊잖치 못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릴 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론은 내 상식이 변했다는 소리이다. 시대 탓인지 환경 탓인지 혹은 나이 탓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시대와 문화는 이렇게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일화도 있다. 30여년 전에 도미하신 이 권사님 말씀에 의하면 그때 많은 한국 남성분들이 경찰서에 끌려가셨다고 한다. 가게에 들른 귀여운 여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마무리로 엉덩이를 툭툭, 뚜드려주고나면 조금 있다가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죄명하야, 아동성추행! 끌려가는 남편이나 넋놓고 당하는 부인이나 도대체 자신들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한탄할 밖엔 없었을 것이다. 억울하지 않겠는가. 아이가 귀여워서 엉덩이를 두드려준 것뿐인데…

모계사회인 왐파노그 인디안들은 어느날 아침 티피 밖으로 남편의 신발과 보따리가 내어져 있으면 그것이 바로 이혼을 의미하는 풍습이라고 했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이라면 아니, 왜 내 신발하고 옷가지들을 집 밖으로 내놓은 거야, 하면서 탈탈 먼지를 털어 다시 집 안으로 들여놓지 않겠는가… 이런 것이 바로 문화 차이에의한 몰이해와 갈등일 것이다.

이런 원리를 인지하고 다시 처음 화두로 돌아가보자. 계급사회가 붕괴된 이후의 문당호대 혼인이란 같은 문화와 환경에 처한 커플의 결합으로 이해하면 될 것같다. 문화와 환경이 유사하면 상식과 교육, 사고방식 등이 비슷해지고, 즉 형식과 제도가 아닌 정신과 내면의 조우, 그런 사람들끼리는 상호간 이해상충이 덜 발생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에 문당호대 혼인 풍습은 아직까지 통용되는 지혜가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끼리끼리 혼인의 중요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