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과 양심은 통할까, 망할까?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말은 비단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의료보험도 마찬가지였다. 보험이 있을 때는 그 감사함이나 편리함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는데 남편따라 의료보험도 한국으로 자리를 옮겨앉아 멀어도 꽤 먼 당신이 되버린 이후, 내 마음의 불안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의료수가가 터무니없이 비싼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없는 삶은 때때로 찾아오는 신체적 고통을 앉아서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딸들은 1 년에 딱 한번 정기검진 때만 병원을 찾는게 고작이지만 보험이란 그런 것 아니던가, ‘만약의 사태’를 위한 심리적 안정 기제인 것이다. 나쁜 예를 들자면, 보스톤 폭발사건을 보아도 그렇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수술을 받은 부상자들중에는 터무니없는 의료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 해서 마치 두 번의 폭탄을 맞는것과 같은 고통에 빠진 분들도 있었다. 그러니 두 아이를 가진 어미로서 내게 의료보험은 남편보다 더 절실히 곁에 두고픈 당신일밖에…

이래저래 알아봤지만 기존의 보험을 유지하려면 매달 1000불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하고 아이들만이라도 학생보험을 들으려하니 이제는 없어져버린 제도가 되어 있었다. 사보험보다 저렴한 오바마 케어는 2014년부터 시행예정이라 2013년을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뻔한 월급에 두 집 살림을 하는 입장에서 소용이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데 그 비싼 의료보험료를 지불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타운의 상담센터 같은 곳에 문의도 하고 주변에 자문을 구했다. 그러자 많은 분들이 일정 보험을 추천해 주셨다. 알아보니 그건 저소득층을위한 주정부 보조 보험, 즉 메디 케이드였다. 처음엔 저소득층이 아닌데 신청을 한다는 사실이 양심에 걸렸다. 지인분께 그런 심중을 털어놓으니 지금껏 세금을 성실히 냈고, 또 본인처럼 안팎으로 엄청난 세금을 낸 동족이 있으니 사정이 아쉬울 땐 그냥 신청해보라는 적극적인 권유를 받았다. 이후로도 내 고민은 지속되었으나 아무리 알아봐도 뾰족한 수가 없고 당장 마음이 급해 일단 신청해 보자는 쪽으로 심정이 기울어졌다. 단 모든 항목은 빠짐없이 정직하게 쓰기로 했다. 영주권, 막내 시민권, 운전면허증 등도 복사해서 함께 보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나는 해당국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고 요구된 증빙서류를 다시 보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아무래도 기다리다보니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수여불가 편지를 받았다. 아, 그렇구나. 우리는 해당이 안 되는구나… 그닥 실망이 크진 않았지만 무작정 정직하게만 행동하는 것은 때론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현실은 진하게 다가왔다.

해당국에선 친절하게 fair hearing request form도 첨부해 주었지만 뭘 그렇게까지 할까,하여 그만두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불안은 처음보다 묽게 희석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의료보험 없는 좌불안석이 완전히 치료되지는 않았다. 그러던중 해당국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내 신청유효가 마감이 된다는 최종 통보였다. 그런데 제출하라는 서류를 구비하지 않았다는 석연찮은 사유가 적혀 있었다. 나는 내라는 서류를 모두 보냈다. 그래서 어쨌거나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화를 걸었다. 해당국 직원들은 친절했다. 그 사유의 원인도 곧 밝혀졌다. 나는 적은 소득이지만 세금보고를 하고 있었기에 고용현황을 보고해야했는데 거기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의료보험이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오기도 있었다. 그래서 모든 서류작업에서는 꼼꼼한 재확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꽤 제한적이지만 해당국은 도움을 허락했다. 시민권자인 막내에게는 후한 플랜이, 청소년인 첫째에게는 중간급으로, 내게는 life death emergency plan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보험이 주어졌다. 생명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만 병원비가 지불되는 보험이라 했다. 그런 거라도 없는 것보다 나았다.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정직하게 해도 될만큼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서 기뻤다. 물론 미국에 머물고 있는 나만 두고 보면 저소득층이 확실하지만 그래도 상징적인 숫자보다는 인지상정으로 사람을 돌보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져 좋았다. 곤란한 사람을 박하게 대하지 않는 주정부의 따스함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요즈음 한국의 새정부 행보도 나쁘지 않다. 더운 여름날, 정부 각료들은 넥타이를 매지 않고 양복 상의도 벗었다. 기준 온도(섭씨 28도)에 다다르지 않으면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여성대통령은 칭찬을 했다.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냐에따라 한 나라의 국성(國性)은 선량하거나 악날해진다.

정직과 양심이 통하는 사회,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짐작컨대, 한국과 미국, 둘 다 잘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