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유전에 대한 개똥철학

우리 두 딸은 나를 많이 닮았다. 큰 딸은 외양을 닮았고 작은 딸은 내면마저 닮았다. 참 유전이라는 것이 신기하다고 어느날, 남편은 중얼거렸다. 유진이가 하는 모양새를 보면 영락없이 소시적 내 모습이거든… 대체 여자애가 왜 저럴까? 유진이에대한 의아함이 잔뜩 부풀어 올랐던 나날들, 나는 남편의 그 한마디로 해답을 얻고 평온도 얻었다. 남편 닮아 저러는구나…

반면 둘째인 아린이는 행동거지며 성격의 면면이 참으로 이해가 가고 공감도 잘 형성됐다. 모든 반응이 내 상식선에서 펼쳐지니 이건 마치 내 자신이 행동하는 듯한 착각이 일 때도 있었다. 물론 엄연히 다른 개체들이니 딸들은 남편이 아니고 내가 아니다. 부와 모가 섞인 면면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의 자식일 뿐이다. 허나 유전학적으로 꽤 구분되는 여러 형질은 남편의 피와 내 피가 각각 흐르고 있음을 알게 해주고, 오묘하면서 신기하면서 아쉽기도 다행이기도 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감상에 젖을 때면 나는 하나님을 본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해하기도 벅차고 도무지 신비로워 가슴이 울렁이는데, 창조주의 재주가 아니라면 어떠한 근사치의 답도 도출해낼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고 열 달동안 인간의 모습을 갖추고 세상에 나와서는 수십년 후에 그 아가를 닮은 또다른 아가를 탄생시키는 신비… 그저 당연한 일로 여기면 신기할 것 하나 없지만 생각을 깊게 하고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심증을 거기서 찾을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런 신비를 작은 즐거움으로 맞닥뜨린 적이 있다. 아린이 학교 선생님과 면담이 있던 날이었는데 아린이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선생님이 글짓기에 관한 화제를 꺼내셨다. 아린이가 글짓기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글짓기에 소질이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으므로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심상하게 물었다. 선생님은 아린이 작품을 보여주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미국선생님들의 일반적인 과잉칭찬이라고만 여겼다. 선생님은 내년 학생들에게 보여주기위해 작품을 카피해두었으며 아린이가 쓴 표현들은 확실히 그 또래의 수준을 넘는다고 덧붙였다. 나와 남편은 그때서야 작품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영어인지라 빨리빨리 눈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겨우 앞의 두서너문단만 읽어보았지만 칭찬의 후광 덕인지 꽤 그럴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은 선생님 말씀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준을 성인인 내게 두면 안 되고 4학년 또래집단에 두어야 했던 것을… 집에 돌아와 두 장짜리 작문을 차분하게 읽어 보았다. 10여년을 키운 딸이지만 새로운 발견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랬구나… 우리 애들은 글짓기에 별로 소질이 없어요,라고 말해 온 내 말이 낯설고 수줍었다. 어쨌거나 내가 가진 작은 재능을 딸이 물려받았다는 사실의 자각은 뭐랄까, 정말 끈끈하면서 기특하면서 든든하면서 감동적이면서… 그런 감정을 마구 샘솟게 했다.

그 일이 작은 즐거움의 발견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주 큰 선물을 받았다.

아린이 반에서는 마지막 날, 모든 학생들에게 자신에대한 자랑을 말할 수 있는 써클 타임을 가졌다. 학교내에서의 자랑거리와 학교 밖 활동에서의 자랑거리를 이야기하는 기회였다. 많은 친구들이 에세이를 잘 끝낼 수 있어서, 멕시코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쳐서, 수학을 잘해서, 글짓기를 잘해서,라고 하거나 축구를 잘해서, 야구를 잘해서,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타서, 체조 기술을 마스터할 수 있어서 등등을 발표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동들이 느낄 수 있는 순수하고 멋스러운 자랑이었다. 반면 아린이의 대답은 조금 달랐다. 첫번째는 새로운 친구를 잘 사귈 수 있는 것이 자랑거리였고, 두번째는 떨어질줄 알면서도 체조 테스트에 응했던 것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린이의 대답은 내게 깊은 감회를 주었다.

아린이는 세상의 일반적인 善이 되어버린 공부와 운동, 무언가 남보다 앞서고 잘하기때문에 뿌듯한 외면의 기준을 탈피해, 보다 인간적이고 인성적인 내면에서 접근했다. 뭐, 딸이라고 해석이 거창하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한다면 어쩔 수 없겠다. 하지만 내 선(善)의 기준이 그러하니 나는 그런 면에 민감해진다. 엄마가 노력하는 세상살이 기준을 닮아가는 것이 반가웠고 어린 나이의 잣대가 의젓해서 기뻤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선한 면을 닮아준 자식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일지니 하나님의 선함을 닮으면 닮을 수록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실까… 하나님의 자식은 하나님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진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닮지 않은 우리들은 과연 무엇인가… 돌연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