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착한 날 – 공항에서
한국에 도착한 날은 더웠다. 그냥 더운 정도가 아니라 아주 푹푹푹푹… 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있는 대중탕 안에서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쌀가마니를 메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실감이 났다. 드디어 한국에 왔고나!
14년 전, 조지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가 7월 말, 막무가내로 뜨거웠다. 두살바기 큰 딸은 햇볕이 나~ 햇볕이 나~ 하면서 눈을 감고 울었다. 그런데 태양은 살갗을 태울 것처럼 지글댔지만 그늘 아래에 들어서고 마침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시원하거나 상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날 그 경험을 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신기했을 뿐이지만 민감한 내 피부는 9개월여동안 그 질기고 무지막지한 신기함때문에길게길게 시달려야 했다. 습기… 사막에서 낮이면 발바닥을 벗겨낼 듯 뜨거웠던 모래가 밤만 되면 으스스한 냉기를 품는 원리도 바로 습기가 적은 탓! 세수를 할 때면 얼굴에 나무껍질을 덧대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는 내가 낯선 타국에 있음을 증빙하는데 한 몫을 담당했다. 아파트 안은 말하자면 중앙냉방 시스템으로서 화장실까지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가동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기후 탓에 에어컨 바람은 밤동안만 잠을 잤고, 쇼핑센터나 도서관, 관공서 등을 방문할 때면 스웨터를 걸치지 않고서는 얼어버릴 정도로 추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겨울이면 에어컨 바람이 나왔던 송풍구에서 히팅 바람이 나오는 통에 얇고 허술한 피부는 수분을 잃고 생기도 잃었다. 그러니 얼굴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피폐해 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으리(내 피부가 쫌 극성이다). 이런 당혹은 이듬해 봄에야 냉풍도 온풍도 쐴 일이 없게 되자 비로소 멈추었고 차차 진정되기 시작했다. 모든 생물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도록 창조되었 듯 한바탕 진통을 겪고 난 이후로는 선인장마냥 건조한 환경에서 잘 버텨낼 수 있도록 모드 전환이 된 것이다.
그랬던 것이 14년 후, 섭씨 38도라는 믿기지 않는 고온과 습습한 바람을 재회하니 온 몸이 유,수분으로 범벅이 될밖에… 선인장에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썪 듯 습하지 않은 곳에서 자라난 두 딸의 모습 역시 소스를 잔뜩 묻힌 깐풍새우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게다가 미국의 어느 공향에서도 보지 못했던 무수한 인파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차량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진 듯도 보였다.
“어메리칸들은 안 그러는데 코리안은 막 푸시push해. Good manners 안 해.”
딸들이 성이 나서 투덜대는데 나로서는 겨우,
“아, 그 사람들, 한국 사람 아니고 중국인 visitor들이었어.”
라는 보잘것 없는 변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사실이었다지만 나는 딸들이 한국에 대한 선입견을 나쁘게 가지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젠 딸들의 나라가 되어야 하는 한국을 처음부터 보잘것 없는 이미지로 새겨 놓는 일만은 막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 치사한 말을 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비루하게 변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하철역이었는데 출입문이 열리자 서너명의 외국인들이 내리려고 했다. 그들은 여행중같았다. 그런데 몇몇 승객이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는 통에 그들은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말았다. 그들중 덩치가 큰 한 남자가 손사레를 치며 저리 비켜서지 못해(Get out of my way!)라고 소리를 질렀다. 대낮의 한가한 전철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 나로서는 더 뜨끔했다. 다행히 그들은 내렸지만 한참동안 고개를 저으며 놀란 듯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 장면이 참으로 안타깝고 창피하기도 했다. 그때만해도 서방국가를 가 본 적이 없어 그들 나라의 국민의식은 모른다지만 적어도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 소개하는 광고를 보고 그들이 가질 반감은 예상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이 대표하는 만인의 이미지’에대해 확신을 가지는 편이다. 미국에 살면서 최대한 좋은 예절을 갖추려고 노력했던 점도 바로 내 자신이 한국의 이미지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선입견이란 깨질 수도 있지만 그대로 고착화 될 수 있는 위험한 의식이므로 어떤 일에서든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미국땅에서 14년동안 한국인이란 이름으로 살아왔고 나로인해 한국은 좋은 나라도, 하찮은 나라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책임감을 잔뜩 부여안았던 것 같다.
그런 이치로 공항에서의 풍경은, 그렇지 않아도 끌려오다시피한 내 딸들에게 한국에대한 이미지를 성급히 결정짓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조바심이 났다. 생각해보면 거기엔 은근한 피해의식이 존재했다. 소위 타인의 권리와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선진 문화의 본거지를 체험한 후 직시하게 되는 내 나라 풍토에 자신이 없어진 까닭이라고 할까. 정과 인심이 살아있고 무엇보다 내 그리운 고향이기에 나는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지만 미국의 상식선에서 자라난 내 딸들에게는 이해보다는 비정상으로 보일 모습들에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짐을 찾는 곳에서 카트를 콘베어 벨트 바로 앞에 두어 다른 사람은 접근조차 할 수 없게 한다거나, 휴대폰을 마지못해 빌려주고는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받지 않고 빼앗 듯 돌아선다거나, 길을 묻는 손님에게 고개를 들지도 않고 휴대폰을 응시하며 대답한다거나, 어린 아이가 있든 없든 상관도 없이 마구 밀치고 앞서간다거나… 하는 일들이 시정되면 얼마나 좋을까란 염원을 하게 된 공항에서의 하루…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 일이 꿈만 같았으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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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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