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체험

꿈에서 저승사자를 본 적이 있다. 저승사자는 TV에 등장하는 것처럼 까만 도포를 입고 챙이 좁은 갓을 쓰고 있었다.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얗고 말이 없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아! 저승사자,하고 생각했다. 곧 그가 내 얼굴에 보자기같은 것을 씌웠다. 그러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호흡이 모자란 탓인지 심장이 마구 날뛰었다. 나는 죽는구나…  와중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자기가 벗겨졌다. 숨통이 트였고 나는 숨을 헐떡이며 꿈에서 깼다. 꿈의 마지막 장면에서 저승사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은연중에 그가 실수였다며 겸연쩍어 하는 것이 느껴졌다. 10여년 전에 꾸었던 꿈이다. 흔히 말하는 가위에 눌린 것이리라.

어느 보고서에의하면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이(지구상에는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설명하는 사후의 세계는 따스한 빛이 가득해서 아주 평화로움을 느낀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 말이 죽음을 앞 둔 환자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고 있다고도 쓰여 있었다. 하지만 사후의 세계만큼 과학이나 기술 등이 아무리 첨단으로 발달한다 하더라도 영원히 미지의 세계로 남을 영역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죽음은 종교와 연관되어 인간의 상상이나 믿음으로 형성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가끔 임종을 맞을 때 숨이 조여오지만 최선을 다해 조금씩 산소를 들이키며 사투를 벌이는 분들을 접할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단 한가지일 것 같다. 마지막으로 꼭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고 싶은 것이다. 토지에서 월선이 용이를 보고 가기위해 몇날 며칠을 그렇게 버티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용이가 알아서 일부러 월선이를 서둘러 찾아가지 않는다. 나는 그 대목에서 유난히도 목이 메였다. 용이가 오자 월선은 그제서야 평안히 눈을 감는다. 토지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대목이다.

십여년 전에 우리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임종에 다다르셨을 때 할아버지는 마지막 숨줄을 안간힘을 다해 붙들고 계셨다. 병상을 지키다가 잠시 외출을 했던 큰아들 내외가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병원에 당도하자 계속 감고계시던 눈을 용트림하듯 힘겹게 떠서 아들 내외를 일견한 후 눈물이 그렁한 그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우리 오는 거 보고 가시려고 견디셨던 것 같다,고 엄마가 말씀하셨을 때, 나는 할아버지의 그 외로운 의지와 고투가 상상이 되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 날 나는 미국에서 따뜻한 국과 밥을 정성껏 차려놓고 할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을 상상하며 애도했다. 우리 가족이 도미할 때, 시골에서 상경하신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정말 꾸깃꾸깃했다, 돈 삼만원을 건네주시며 적지만 여비에 보태거라… 하셨는데 그 모습이 마지막이어서인지 어찌나 그 생각이 나면서 목이 메이던지 며칠동안 나는 눈물을 찔금거리며 기운도 식욕도 없이 지냈다.

며칠 전에 아는 언니의 시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상가에 다녀왔다. 그때 나는 wake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고인의 용안을 마지막으로 뵙고 추모하는 절차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wake를 하는 시간이 돌아오자 두려운 느낌이 엄습했다. 사체라 무서운 모습이면 어쩌나, 숨이 끊어지는 순간의 고통을 엿보게 되면 어찌 하나… 아마도 생전에 한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라서 더욱 그랬을 지 모르겠다. 가족이나 친우, 친척 관계라면 긴 이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는 일이 얼마나 위안이 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국문화가 아니어서 그런지 내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뵙는 마음으로 고인께 진심을 다해 명복을 빌어드리고 싶었다. 용기를 내서 일어섰다. 줄을 따라 조금씩 나아가니 곧 고인의 모습이 보였다. 거무잡잡한 피부, 숫없는 하얀 머리, 단단해 보이는 두 손을 깍지 끼신 채 반듯하게 누워 계시는 풍채가 언뜻 우리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나는 영혼의 눈으로 할아버지를 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얼굴… 꼭 다문 입술에 잔잔한 미소가 어린 자상하고 평안해 보이시는 얼굴… 나는 고개를 숙이고 부디 따스한 빛이 가득하고 평화가 넘치는 저 세상에서 안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 하고 기원했다. 곧 용기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잔잔히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