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과 할머니

동백꽃은 잎새로 지지 않고 봉우리째 떨어진다. 작열하듯 붉은 한 세월을 보내고 송이째 떨구는 그 생(生)이 처연하여 시가 되고 노래도 된다. 겨울에 피어 봄에 지는 그 꽃은 그래서 해 쨍쨍한 어느 여름날에 다녀온 내 선운사 추억 안엔 들어있지 않다. 대신 절 문 앞에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너른 그림자를 펼치고 서있었다. 그 그늘 아래에는 내 할머니가 계신다.

“얼른 다녀올게요, 여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신혼시절 남편과 함께 시골집에 놀러 갔을 때, 할아버지는 손주사위 왔응께 하랍씨가 선운사 귀경 시켜줄란다, 하셨다. 지독히도 차멀미를 하는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가는 일이 맘에 걸려 갈까말까, 망설이는데 그 마음을 눈치 챈 할머니는 나도 갈란다,며 서둘러 채비를 차리셨다. 임자는 잘 걷지도 못하면서…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농섞인 퉁박을 지르셨다. 지금 안 가면 언제 또 우리 연아 내외랑 같이 갈랑가 모릉께… 선운사가 있는 선운산까지 달리는 내내 훤히 열어 놓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해바라기를 하던 할머니는 설원개화(雪園開花) 한 동백꽃처럼 어여쁜 자태를 품은 여인이었다.

천상 양반댁 규수셨다. 얌전한 그늘 바닥 위에서 한쪽 무릎을 세우고 오롯이 앉은 할머니는 우리가 절문으로 다시 나올 때까지 자세를 바꾸지않은 채 그대로 계셨다. 바람은 불었을까, 바람이 아름드리 나뭇잎을 부비고 그 나뭇잎들은 할머니한테 재미난 이야기라도 속닥여 주었을까… 돗자리를 펴서 판판히 고르고 할머니를 모셔놓긴 했지만 마음이 급해서 인심 넉넉한 보살님이 권해주던 점심도 물리치고 쌩하니 돌아 나왔다.

할머니는 그날 손주사위 팔에 의지해 허리를 일으키면서 동백꽃보다 환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 안에서 나는 감회와 평안을 보았다. 무릎 위에 밤톨만한 머리를 뉘이고 발꼬락을 꼼지락거리던 작은 나. 한올한올 머리카락을 젖히고 뽑아낸 서캐를 손톱으로 꾹 눌러 보이면 또 해줘, 또 해주어, 하던 어린 장손녀가 자라서 이렇게 듬직한 제 짝을 만났고나… 할머니의 웃음은 그런 안도감 때문에 속이 꽉 차 보였다. 그 미소를 나는 겨울이면 선운사 뒷뜰에 가득 핀다는 동백꽃 향인양 들이켰다. 한번도 맡아보지 못한 동백꽃향을 그래서 나는 할머니 냄새로 기억한다.

그 옛날, 동백 열매로 짠 기름은 어두운 밤 등불을 밝히고 옛 여인들의 쪽진 머리에 윤기를 흐르게 해주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참빗으로 정성스레 빗어 한 묶음으로 모아 돌돌 말아 쪽을 지고 동백기름 두세방울 덜어 손바닥으로 살살 비빈 후 가운데 가르마 태워진 머리 위를 미끄러지듯 쓰다듬으면 할머니 머리에서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그래서 내 상상속의 동백꽃 내음은 할머니 머리기름 냄새이기도 하다.

동백나무는 무성한 열매를 맺는 까닭에 다산의 상징이란다. 일곱남매나 낳았으니 할머니는 다산의 복을 가지셨다. 아기들 젖먹여 키울 적엔 풍성했을 할머니의 가슴일테지만 내 눈이 기억하는 할머니 쭈쭈는 마냥 쭈글쭈글했다. 기차를 타고 하는 나들이라도 서울 우리집에 당도하실 즈음이면 할머니는 초죽음을 앓으셨다. 할머니에게 상경은 입덧같은 거였다. 일곱자식을 가졌을 때처럼 구토증이 일지만 그렇게라도 서울에 오면 큰 아들 내외도 보고 작은 딸들도 만나고 그 자식의 자식들도 보니 꼭 입덧같았다. 답답한 가슴끈을 풀어헤치고 이부자리 위에 드러누우면 하얀 속치마 위로 할머니 가슴이 드러났다. 아주 납작하고 늘어진 젖가슴… 메스꺼운 속을 가라 앉히려고 사이다를 마시고 끄윽~ 끄윽~ 트림소리를 내도 나는 우리 할머니가 좋았다.

“할머니 할머니, 어디를 젤로 구경가고 싶어요?”

할머니 오신 것이 신이 나 내가 물으면 할머니는 한결같이 “연탄 맹그는 공장에 젤로 가보고 싶어야. 연탄도 신기하고 그 신기한 걸 어떻게 맹그는 지도 보고잡고…” 하셨다. 커다란 놋쇠솥이 걸려있는 황토아궁이 앞에서 머리수건을 쓰고 앉아 능숙하게 짚단을 던져 부지깽이로 휘저어 불을 키울 때면 할머니는 더할나위없이 늠름한 시골 마님이었다. 한 시절엔 부리던 어멈, 아범이 있었지만 그들이 세월따라 등천하자 할머니는 당당히 그 부엌을 혼자서 지켜내셨다. 나는 할머니처럼 멋지게 해내고 싶어서 짚단을 뭉터기로 던져 보지만 불꽃을 고만 꺼뜨리기 일쑤여서 그럴 때면 할머니가 능란한 손놀림으로 죽어가던 불씨를 멋지게 되살려 냈다. 불꽃을 호령조리할 줄 알았지만 불쏘시개로 한번만 불을 붙이면 활활 제 몸을 태우는 신식연료가 한없이 신기하셨나 보다. “차도 못 타시는데 기왕에 가려면 창경원, 덕수궁이 낫지…” 자식들이 그렇게 욕심을 부려서 할머니는 삼표연탄공장 대신 고궁과 동물구경을 하기 일쑤였다. 이제와 생각하니 나라도 고집을 부릴걸… 후회가 밀려온다.

일본에서는 춘수락(椿首落)이라 불리우는 꽃, 봉우리 채 떨궈지는 모습이 일본 무사의 머리 떨어지는 모양과 같다하여 불길함의 상징이기도 한 동백꽃. 여인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도, 암탉이 울어도 집 안이 망한다던 시대, 여인네들에게 강퍅했던 한 많던 시절에 태어나 일생을 음전한 양반댁 마님으로 살다가신 할머니...

어느해 겨울이 될는지 모르지만 한국에 가면 동백꽃 보러 선운사로 나는 가련다. 간 김에 설밭 위 아름드리 나무 아래 앉아서, 할머니가 남긴 체취 위에 다소곳이 앉아서, 바람아, 불어서 나뭇잎아, 할머니께 들려 준 이야기 내게도 전해주렴…… 나는 눈을 감고 한 무릎을 세운 채 가만 가만히 그 이야기에 귀기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