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난 일

한밤중에 자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배뇨..., JYP처럼 자기 전에 꼬박꼬박 챙기는데 말이다. 이것도 나이 드는 증거중 하나란 생각과 자기 전에 되도록 수분섭취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과 장기능의 쇠락이 어디까지 이어질까란 궁금증과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뒤섞인다.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물 내릴 때까지만해도 살포시 덮여있던 잠의 한자락은 손을 씻고나면 쾌청히 걷혀버린다. 에잇, 손 씻지 말까?란 유혹을 느끼지만 아이들한테 매섭게 잔소리하는 엄마의 양심으로서 감히 그러지는 못하고 슬쩍 비누를 묻혀 흉내만 내는데도 청량한 물줄기가 피부를 타고 흐르면 비눗기와 함께 잠이 씻겨버린다.

새벽에 잠을 깨더라도 계속 자려한다. 주로 그 시간즈음 화장실에 가버릇해서인지 새벽 3,4시경 눈이 절로 떠지는 일이 몇 번 있었고 버릇이 들 것 같은 위기를 느꼈다. 내 주제로는 새벽을 설치면 틀림없이 아침나절이 엉망이 되므로 그런 낯설은 신체리듬을 안고 이방인처럼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가족공동체 생활에서 벗어나고싶지 않은 갈망때문이리~~). 또 내 얄팍한 계산으로는 세월을 흡수하면서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몸과 마음을 악착같이 과거와 현재의 습성에 묶어둠으로서 늙음으로인해 발생되는 변화를 애써 무시하고 싶은 마음때문이기도 하리라. 하지만 인간이 마음 먹은대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면 인간이라는 과,속,종으로 분류되었겠는가? 그러니 하는데까지 노력하겠지만 안 되는 것은 그것을 또 받아들여 사는 수밖에...

오늘은 2012년 7월 25일. 새벽 4시 조금 넘어서 당연하게 일어났다. 동일자 12시 30분, 잠들기 바로 전에, 갈등하다 마신 물이 신체의 구불구불한 관들을 모두 통과하여 마지막 관문 안에 꽉꽉 들어찬 기운을 세차게 받은 탓이다. 침대로 돌아왔을 땐 잠이 확 달아난 후였다. 잠을 전달하는 신경물질인 멜라토닌이 내 경우에는 엎드려 있을 때 원활히 분비되는 듯해 배를 깔고 한 팔을 위로 뻗어 옆 얼굴을 받치는 자세를 취한다. 팔이 저리기도 전에 고개가 불편해지니 이도 새로운 증상이다. 내 나이 4땡. 정말 늙는구나,란 생각을 거부하지 못할 진리로 품어 안는데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킁킁, 개 코인 내 코가 금새 진원지를 찾아낸다. 비누향에 섞인 마늘과 참기름 내음은 내 왼손에서 풀풀거렸다. 때는 새벽나절, 공복인 탓에 꼴깍, 군침이 넘어간다.

어제, 낮부터 음식 준비를 했다. 팥을 삶고 잡곡을 듬뿍 넣은 현미를 깨끗이 씻어 불리고 오이, 파프리카, 배 등을 채썰고… 필요한 재료에 소금간 식초간 등을 해놓고… 그리고 시간이 되어 해파리 냉채를 무치고 지인으로부터 얻은 묵을 아껴두었다가 샐러드를 깔고 양념장을 끼얹었다. 오곡밥을 앉히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가지를 쪄서 들깨가루와 참기름, 간장, 마늘, 고춧가루등을 넣어 조물거리고 굴비를 굽고 불고기를 볶았다. 상추를 곁들이자 식탁에는 더 이상의 공간이 보이지 않아서 작은 종지에 김치 한사발만 더 냈다.  이 양념, 저 양념을 조물락대던 왼손에 음식냄새가 밴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나는 낼모레 이사가는 친구네를 위해 최후의 만찬을 준비했다. 친정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친정엘 가도 누구 하나 따뜻하게 밥지어 주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자신이 봉양해야하는 처지인 친구는 내가 지어준 밥을 먹을 때마다 감격에 젖곤 한다. 어제도 맛나게 먹어줄 친구 가족을 상상하면서 더 감칠나게 만들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다. 샤샥, 조물조물, 간을 보고, 다시 지지직… 에어컨도 없는 공간에서 뜨거운 여름날의 열기와 화덕의 불기가 합해지니 얼굴은 달궈지고 몸 속까지 뜨거워졌다. 더워서 미치겠다는 표현은 이런 환경에 최적합한 단어였다. 미친다는 말은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고 그건 머리속이 뒤죽박죽이 된다는 의미… 그래서일까, 난데없이 이 얼굴 저 얼굴들이 뇌속에서 퐁퐁 떠올랐다. 내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기만 했지 생전 내가 지은 밥 한번 먹여본 적 없는 테네시의 E, 4땡된 나이에 아기 낳고 젖먹이 키우느라 수고하는 JH, 한국 갔을 때 맛있는 스파케티 많이 사줬던 JS, 눈에서 멀어진 지 오래지만 언제나 마음속에 있는 M… 그립고 정겨운 친구들의 얼굴이 속속들이 떠올랐고 그들에게 언젠가 이렇게 정성들여 차린 밥상을 선물하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하게 일었다. 모두들 너무 멀리 있어서 참 오랫동안 못 보면서 살고 있다. 풋풋했던 우리들이 모두 4땡의 아줌마가 되었건만… 인간이라 백년 천년 살지 못하는데 너무 못 보고들 산다. 그래도 한번 친구는 영원히 친구란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덥긴 더웠던 모양이다. 더위를 먹었는지 그런 생각들과 더불어 자꾸자꾸 눈에서 짠물이 올라왔었다.

새벽 어스름이 블라인드 틈으로 들어와 방안의 어둠을 벗겨내니 크렁크렁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이 보인다. 이제는 이 친구만 매일 보고 사는구나… 이 친구라고 백년 천년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잘해주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스르륵 잠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