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4땡 되던 날

산안한는 어마,

산이처가하! 나네머

산안하요!

-김아린-

‘Happy B-day 어마’ 라고 쓰고 하트로 여백을 멋지게 장식한 카드를 펼치자 그 안에 삐뚤빼뚤, 이런 글자들이 들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모으며 다시 한번 읽어보지만 백프로 정확하게 해석을 해내지는 못했다. 대충 이런 내용이지 싶다.

사랑하는 엄마, 생일축하해. 나 너무 사랑해요!

처음,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내 입술은 다물어진 채 으흐흐 하고 맥빠진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지난 1여년동안은 한국학교를 다니지 않았던가. 한글의 과학적 체계는 영특한 아이는 두 시간이면, 우둔하더라도 이틀이면 깨우친다고 들었건만…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에 씁쓸한 기운이 움텄다.

베른하르트의 소설 ‘The Reader’에서 한나가 꼬마에게 보낸 쪽지의 글씨처럼 아린이가 쓴 각각의 글자는 새로이 창출되었다. 높이와 너비와 띄어쓰기가 아린이 식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늙은 한나가 선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고, 글자들을 모아 낱말을 만들기 위해 극복해야 했을 어려움처럼 발음에 맞는 한 글자 한글자를 찾아내기 위해 자음과 모음 속을 헤맸을 아린이의 고심이, 찬찬히 들여다보자,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발음을 재차 옹알거리며 머리 속으로 훈민정음의 한 음 한 음을 선택해 나간 아린이의 진지한 얼굴이 떠올랐고 그래서 허탈한 미소는 금방 숨을 멎었다. 게다가 새로운 발견도 있었다. 제 언어인 영어가 아니라 엄마의 언어인 한글로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것은 평상시 엄마는 영어 모르니까 한국말로 해,라고 했던 나의 능력을 참고하여 자신의 마음을 십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 사려깊음이 서서히 내 마음에 감동의 불을 지폈다. 게다가 제 친구에게도 Yunah라는 이름을 가르쳐주어, 말하자면 여덟살짜리 딸 친구로부터 ‘연아야 생일 축하해!’라는 카드를 받게 했다. 두 카드를 번갈아 보다가 결국 나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웃음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내 생애 4땡 되던 날에 아린이로부터 호쾌한 선물을 받아 아주 오랫동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