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부부싸움을 하고서 아침에 눈을 떴는데 마치 감옥에 갖힌 듯한 괴기스런 느낌이 밀려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살면서 가장 먹먹해지는 순간이 바로 남편과 싸워서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낼 때이다. 점점 그런 순간을 참기 어려워하면서 그런 순간을 맞이하는 빈도는 많아지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 주위에 일가친척 하나 없는 탓에 남편과의 단절이 모든 가족관계로부터의 일탈이 되는 착각도 인다. 이것도 타국생활의 애환인가 한다.

만사가 귀찮았지만 참고 아침식탁을 차렸다. 늦잠 자고 일어나 눈꼽도 떼지 않은 채 식탁에 앉은 큰 아이, 따라준 우유가 너무 많아서 못 마신다며 도망가는 말라깽이 작은 놈,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서 놀다가 소파에 쓰러져 자는 남편(드문 일이지만~~),을 보는데 가슴에서 확 열이 나면서 고함대신 울컥 울음이 솟았다. 순간 제풀에 놀랐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엄마도 엄마 인생을 살아야하니 각자가 알아서 제대로 굴러가자고 그토록 힘주어 외치건만 제대로 되는 것이 없어 보여서 일까. 그렇더라도 이런 해괴한 모습은 처음이다. 이게 다 겨울 탓이려나?

자연을 찾아다니며 그 한없는 아름다움과 신비로부터 삶의 활력과 희열을 보충하는 나는 겨울이면 옴싹달싹 못한다는 느낌을 갖곤 한다. MA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꽃술이요, 향기요, 갈매기요, 단풍이다. 이토록 형형색색인 대자연을 품은 땅도 드물 것이다. 추운 겨울을 보듬는 아량을 가지고 하얀 눈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999국이라고 표현하는 CA의 몬트레이보다 하나 더 많은 천국을 이 땅에서 느낄지도 모르겠다. 내 고국 한국이 금수강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뚜렷한 사계절로 인해 철따라 새로이 피어나는 자연의 정기를 품은 때문이리라. 한국인의 두뇌가 좋은 것도 그 덕이라고 생각한다. 뇌세포가 빠르게 발달하는 영유아기의 아이에게 다채로운 볼꺼리, 만질꺼리, 들을꺼리만큼 좋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없는데 한국땅은 대자연적으로 그것이 충만하다. 예로부터 유태인들이 다색(多色)이 포함된 의상을 입고 시시때때로 아기의 눈을 자극시키는 것도 그 맥락을 꿰뚫은 때문이다.

그러니 사계가 뚜렷하면 감사할 혜택이련만 유독 겨울을 꺼려하니 그건 아마도 MA의 겨울 횡포가 지나치다고 느끼기 때문이리라. 4개월동안은 허연 서리 같은 세상. 오후 4시면 어둑지는 세상. 게다가 눈이 오면 생활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데 잠마저 설치는 세상… 도로에서 제설차가 돌아다니며 내는 소음도 그렇거니와 새벽같이 일어나 직접 눈을 치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게중엔 그런 삶을 향유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런 분께 존경을 표한다. 추위에 유독 약한 체질인 탓에 지병까지 생기니 칼바람과 눈보라가 밉달밖에… 그래서 MA의 겨울은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포함한다.

거기에 인화(人譁)가 겹치면 스트레스 수위는 걷잡을 수 없는 상승곡선을 그린다. 꺼떡하면 천장을 쳐대는 밑의 집 아자씨. 부쩍 미운 일곱살 짓을 하는 막내, 사춘기 꼬장을 부리는 큰 애. 거기다 남편과 다투기까지 했으니…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일상에 울컥 울음이 솟았던 이유는… 나는 말없이 나갈 채비를 했다. 조금 멀리 떠나 혼자 여행이라도 해볼까란 생각을 했지만 이 추위에 딱히 갈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도서관이나 가자,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폭설경보 탓에 문이 닫혀있었다. 머피의 법칙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밀려오던 바로 그 느낌이 또다시 덮쳐왔다.

폭설경보만 없었어도 기어이 차를 내달리고 말았을 것이다. 아무 준비도 없이 낯 선 곳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이성적인 계산이 충동의 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다행히 남편이 부재중인 지인이 방황하는 나를 받아주었다. 그 댁에서 수다를 잔뜩 떨었다. 역시 스트레스 해소에 수다는 명약이었다. 창밖은 예보대로 눈이 쌓여갔다. 저녁까지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차가 눈 속에 파묻혀 버렸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나도 참 그렇고 그런 여편네란 자조가 일었다. 자신이 그토록 무력해 보일수가 없었다. 문득 나이가 의식되고 과연 이런식으로 살면서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란 위기의식이 밀려들었다. 내게는 꿈이 있다. 그런데 나의 건강과 에너지와 기력은 너무도 제한적이어서 금방 소진되기 일쑤다.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란 이런 것일까? 난생처음 나는 내가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웠다.

집에 돌아와보니 잔뜩 군기가 든 식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흔적이 보였다. 바로 이것인데… 내 잔소리 없이 그저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을 알아서 해주길 바랄 뿐인걸… 그 일상의 제대로 된 루틴이 참으로 어려운 작업임을 깨닫는다. 방으로 들어갔을 때 꽃다발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런데 내가 꽤 화가 나긴 났었나보다. 예뻐라!라는 감탄대신 느닷없이 ‘병주고 약주시네…’란 소리가 마음에서 퉁겨 나왔다. 그래도 그 어여쁨이 어디 가랴, 한참동안 꽃을 바라본다. 부처께서 그러셨다. ‘계속 화를 내는 것은 누군가에게 던지려고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그것에 데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천번 만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결국 화를 내면 얻는 것보다는 화상을 입듯 잃는 것이 더 많을 지 모르겠다. 나도 화를 내다 의욕을 잃고 제풀에 지친 꼴이 되지 않았던가. 꽃을 보다가 내음을 맡자니 향기테라피 덕인지 피식 웃음이 터진다. 소리치고 잔소리 해대는 일도 삶의 의욕과 에너지가 있어야 되는 일인가 보다. 올 한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힘을 좀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