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 열도가 말도 안되게 흔들리고 있다. 강진 9.0.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숫자가 무얼 의미하는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대학때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는데 그때 학교에서 field trip으로 지진체험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규모 9까지는 경험도 해보지 못했다. 6이나 7만 되더라도 땅이 요동을 치고 살림들이 쏟아지고 몸이 이리저리 흔들려 결국 넘어지고 만다. 원하는 사람에게는 더 강도를 높여 체험을 하게 해주었지만 나는 그정도에서 그쳐달라고 소리쳤던 것 같다. 흔들림이 멈추자 나비핀으로 고정시켰던 내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있었다. 땅이 어찌 그리 요동을 칠 수 있을까? 나는 그 체험장이 약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왜? 나는 한국사람이니까. 하지만 지진이 일상화 된 일본인들에게는 그 끔찍한 상황이 현실이었다.

지진이 일어난 곳, 즉 진앙지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에따라, 또 지질구조와 구조물의 형태 등에 따라서 같은 규모라도 지역마다 진도(진동이나 피해정도)는 달라지지만 규모의 숫자만 참고삼아 그 영향력을 알아보자면, 규모 3~4 는 대형 트럭이 지날때 느끼는 정도의 흔들림. 4~5는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의 벽이 갈라지는 정도. 6이 되면 내진설계가 안된 건물인 경우 붕괴의 위험이 따르며 7은 지표균열로 축대가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규모의 숫자가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파괴력은 30배가 증가한다고 하니 9.0은 실로 거대한 파괴력을 가지는 괴물인 것이다.

내게는 일본인 친구가 몇 명 있는데 그 중 한 친구는 도쿄주변에 있는 시댁에서 시어머니가 공들여 수집한 예쁜 사기그릇과 찻잔들이 전부 쏟아져 깨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정도의 말을 듣는데도 몸이 오싹거렸다. 고국의 대재해를 생생하게 전하는 일본공영방송뉴스로부터 눈을 못 떼겠다는 그 친구의 목소리는 그녀의 가슴처럼 불안하게 콩닥대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무사하다는 안부를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문득 가슴에서 아주 오래된 지인 한 분이 생생하게 되살아 났다. 20여년 전엔 다케다씨도 도쿄주변에 살고 계셨는데…  이 대란에 무사하실까? 다케다씨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알 방법이 없어서 안타깝다. 다케다씨는 일본에서 1년간 거주하는 동안 내가 어머니처럼 의지했던 분이다. 이제는 예순을 훌쩍 넘기셨을 터인데… 무고하시다면 50년 전의 관동대지진을 직간접으로 경험하셨을 터이니, 생애에 대지진을 두번이나 맞는 그 운명이 평이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일본을 방문하게 되면 그 분을 꼭 찾아보리란 생각을 품고 사는 중이다. “제가 다케다상을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란 말을 전했을 때 “난 그런 훌륭한 위인이 아니어서 내게 기대면 쓰러지고 말아요.”라고 대답하시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셨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다케다씨는 내가 아르바이트 했던 대형 슈퍼마켓에서 만난 직속 상관이었다. 유일한 외국인 직원이었던 내게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느라 수고하시면서도 격려와 배려를 아끼지 않아서 정말 마음속으로부터 의지가 되던 분이셨다. 한국에대한 정보를 많이 아셔서 대화도 잘 통했는데, 이웃나라이므로 일본인 모두가 한국에대해 잘 알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것이 착각이었고 다케다씨야말로 드문 경우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친근함을 느꼈더랬다. 지금이야 한일간 문화교류가 활발하고 한류열풍으로 한국이 일본에 많이 알려진 상황이지만 20여년 전만해도 한국까지 비행기로 12시간정도 걸리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기성세대들은 이웃나라에대해 무관심한 편이었다. 아예, 한국이 어디에 있는 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으니 아마도 다케다씨는 나를 만난 후 한국에 관한 기사를 더욱 관심있게 읽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케다씨는 항상 뛰어다니던 나를 보며 “김상도 자전거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하며 안타까워 하셨는데 직원 중에 자전거를 새로 마련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헌자전거를 내게 건네주도록 알선하셨다. 젊은 친구들을 소개해 주면서 친구하면 김상이 덜 외롭지 않겠냐며 벙긋 웃으셨다. 일본을 떠날 때, 당신 집으로 초대해 주시며 딸을 보내는 것처럼 서운해 하셨더랬다. 그 때 다케다씨가 일본에 대한 나의 인상을 진지하게 물으셨을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다가, 지점장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실에 대해 털어놓았다. 급료책정시 일본인과 동등하게 지급한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적게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케다씨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지점장님의 잘못이라고 노여워하셨다. 이후 나는 마지막 월급이 들어올 통장을 친구에게 맡기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나중에 생각지도 않은 목돈을 받았다. 다케다씨가 지점장님께 말씀드려 나머지 금액을 입금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그 때 나는 절실하게 깨달았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인해 그 국가의 이미지가 외국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지를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내가 한국을 대표한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산다. 나로인해 한국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어머니같은 다케다씨가 건네주신 값진 인생의 선물덕에 말이다.

지진과 쓰나미, 게다가 원전폭발이란 엄청난 재해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되돌아 보지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질서정연하며, 서로 협력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으로인해 세계속 일본의 위상이 더욱 높아진다. 타산지석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고 인지상정으로 이웃의 불행에 도움주러 팔 걷고 나선 내 조국 한국이 자랑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나마 간절히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의 이웃이 더욱 힘을 내주었으면… 다케다씨가 무사하시기를, 그래서 훗날 꼭 만나뵙고 다께다씨 덕분에 가슴이 따뜻했어요,하고 말씀드릴 수 있기를 두 손모아 간절하게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