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는 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모르겠다.

반숙으로 알맞게 익은 노른자를 탐스럽게 껴안은 흰자 두 알. 계란 프라이를 그 언니처럼 맛있고 정갈하게 부쳐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큰 외삼촌댁 둘째 언니. 나는 세째언니와 친해서 자주 외삼촌댁에 놀러가곤 했다. 그때는 시험기간이었다. 공부한답시고 한 방에 모인 세째 언니와 막내 오빠와 나는 서로 키득거리면서 공부 한번, 장난 한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빠가 큰 소리를 땅땅 쳐댔다. “오늘, 밤 샌다.” 언니도 덩달아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그 모양새들이 우스워 여전히 키득댔다. 12시가 지나자 슬슬 졸음이 쏟아졌고 옆에서 찔러대고 간지럼을 태워도 감기는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하고 머리를 상 위에 박았다. 그러다 눈을 떠보니 언니, 오빠가 모두 널부러진 책 옆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둘째 언니는 우리 모습을 올려다보며 흐뭇이 웃다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다. 벼락치기 명수인 나는 혼자서 공부를 시작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한새벽에 둘째 언니가 눈을 떴는지 부시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휴, 연아 혼자서 공부하고 있네. 장하다. 배고프지?”하면서 부엌으로 갔다. 잠시후 접시에 담아온 계란 프라이. 동그랗고 맛갈스럽게 부쳐온 그 계란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나이 차이가 꽤 있어서일까, 언니에 대한 추억은 그것뿐이다. 그 둘째 언니가 죽었다.

나이 마흔쯤 되면 할 수 없이 많은 죽음을 접하게 된다. 조부모님들이 너무 연로하시니 차례차례 세상 뜨시는 모습을 보게 되고, 불의의 사고나 몹쓸병 등으로 주위 지인들을 잃는다. 죽음을 접하면 이제 세상에서 망자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때문에 슬프다. 멀리 살기에 자주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포기는 확연히 다르다.

둘째 언니의 사인(死因)은 심장마비라고 했다. 언니의 명복을 두 손 모아 간절하게 빈다. 죽은 언니가 망자의 휴거로 들어간 이후, 내가 이토록 가슴이 찢어지는 이유는 외숙모님과 셋째 언니때문이다. 소식을 전해듣는 순간, 나는 외숙모님부터 생각이 났다. 꽤 오래 전에 큰 딸과 남편을 먼저 보내고 2년 전 큰 아들을 폐암으로 잃게 되자, ‘앞으로 죽기 전까지 좋은 일만 보다가 가야겠다.’라고 못박 듯 말씀하셨다는데… 외숙모님의 가슴에 봉분 세 개가 들어서게 되었다. 세상에, 세상에… 자식 다섯중에 셋을 앞세우다니… 그 가슴이 온전하실까? 위로 두 자식을 잃고 맏이처럼 의지하며 살아오셨을 딸이건만… 우리 외숙모 어떻하나, 이걸 어쩌나… 아무 보탬도 못 드리고 안타까운 마음에 어떤 일도 손에 안 잡혀 들었다 놓았다만 했다. 외숙모님께는 아직 비보를 알려드리지 않았단다. 이상타 여기시고 캐물으면 그때나 식구대로 몰려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전해야지… 하는 셋째 언니의 말이 또한번 가슴을 찢는다. 셋째 언니는 하나 남은 친언니를 그토록 든든하게 의지하면서 양 지팡이가 되어 외숙모 봉양하는 일에 열정을 태웠더랬는데… 그런 딸들을 두고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이 나오리라, 생각하곤 했었다. ‘가고나니 못 해준 것만 생각나니, 이를 어째… 더 잘 해줄걸, 살았을 때 더 잘 해줄걸… ’ 셋째 언니의 한탄소리가 가슴에 오래토록 남을 것 같다. 조카들한테 어미노릇 해야겠다는 셋째 언니. 쾡하니 더 커졌을 눈에 눈물을 달고 살지나 않을는지…

잔뜩 구름낀 음산한 한 낮, 부시시 가지를 부딪는 나무에 바람이 잦아들지 않는다. 하필이면 이런 날, 둘째 언니의 부음을 전해듣고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 저 나무가 외숙모님같아 안쓰럽기 한이 없다. 이럴 땐 한국서 살아야 하는데… 둘째 언니 마지막 가는 길도 지켜봐주고 힘든 가족들 위로도 하며 사람노릇 해야는데…… 넋나간 듯 세상에, 세상에…만 중얼대고 앉아있는 내가 이토록 한심스러울 수 없다. 이젠 계란 프라이를 먹을 때마다 문득문득 허망한 생각이 들 것 같다. 살았을 때 더 잘해줄 걸… 살았을 때 더 잘 해주어야 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눈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