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싶은 그녀

트래드밀 두 대가 돌아간다. 하나는 빨리, 하나는 천천히. 빠른 것은 높게, 느린 것은 편평하게. 쌩쌩 돌아가는 벨트 위를 달리는 한 여인, 드륵드륵 돌아가는 벨트 위에서 숨을 고르며 걷는 나. 여인의 길고 쭉 뻗은 다리 그리고 약간 휘기도 휘고 짧고 통통한 내 다리. 여인은 하얀색 탱크 탑에 스포츠용 레깅스를 입고 하얀 조깅화를 신었다. 나는 무릎이 튀어나온 칠부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걸쳤다. 여인의 짧은 머리처럼 뛰는 포즈가 단정하다. 기왕에 팔뚝살도 빼고 싶어 다리 스텝에 맞추어 좌우로 팔을 흔들어 대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40대 아줌씨. 나란히 놓인 두 대의 트래드밀처럼 여인과 나의 삶은 이제껏 만날 일 없었던 평행선인 듯...

모터와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 발자국 소리, 약간의 거친 숨소리로만 채워진 아파트내 작은 피트니스룸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여인이 뛰기를 멈추지 않고 헬로우,한다. 달리기에 달인이 아니고선 취하기 어려운 액션. 여인의 말소리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바이,소리와 함께 끊기자 전화를 받기 전엔 심상했던 침묵이 돌연 어색해 진다. 원래 있다가 없어지면 난자리가 느껴지는 법이다. 어색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내가 흘끗 여인을 쳐다본다. 여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말을 건넨다. 농담을 알아듣지 못한 나는 멍한 표정으로 여인의 웃음소리만 듣는다. 여인이 다시 말한다.

“당신, 영어를 할 수 있습니까?”

“조금요.”

10여년간 미국 땅에 살다보니 이런 경우의 대처법을 알게 되었다. 다시 어색한 침묵 속에 빠지지 않으려면 broken English라도 열심히 말을 해야한다. 나는 생각하고 있던 느낌을 건넨다.   

“당신은 운동을 열심히 하는 분같군요. 아주 건강해 보여요.”

“그래요,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꾸준히 운동하면 건강을 지킬수 있지요. 난 66세인데 그 덕에 아직까진 건강에 자신이 있다우.”

“예? 66세라고요?...... 와우!”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연거푸 와우!만 외쳤다. 엉덩이와 장딴지 나이로만 따진다면 내쪽이 연상이어야 할 것 같았다.

“삶은 좋은 거라우.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하면 다른 사람도 내게 선행을 베풀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나쁜 행동을 하면 그대로 앙갚음을 당하는 것이 인생이니까, 내가 잘 하면 되거든. 건강도 마찬가지라우…”

“당신의 말씀이 옳아요!”

몸을 돌보지 않은 죄가를 톡톡히 치르고 난 후라 그 말이 코끝에 찡하니 와닿았다.

“난 적당한 내 몸매가 아주 마음에 든다우. 너무 뚱뚱해도 싫고 너무 마른 것도 별로야. 이 정도 똥배를 가지면 어떤 옷을 입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거든. 운동도 운동이지만 음식이 중요하지. 평상시 야채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고 고기는 가끔씩만 먹는게 좋아요, 그것도 주로 닭고기로…”

66세 여인의 건강법이 공개되었다. 첫째는 건강식, 둘째는 운동, 셋째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란다.

“가끔은 내 몸이 외친다우. 사탕을 좀 다오! 스파게티를 좀 줘! 호호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데 줘야지. 그리고 조금 더 운동을 하면 되거든. 몸이 외치는 소리를 잘 들어주는 것이 고단수 비법이야.”

“맞아요. 저도 몸의 외침을 들은 적이 있어요. 운동 좀 하렴! 몸을 좀 움직여… 그런데 밖은 엄동설한이라 나가서 뛸 엄두가 나질 않더라구요. 따스한 집 안에서만 웅크리고 있다가 그만 병이 났어요…”(내가 의도하는 뜻은 대충 이러했다.)

“이 트래드밀과 친해져봐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까.”

그 말에 우쭐대듯이 트래드밀의 벨트가 조금씩 꿈틀대더니 서로를 향해 각각 좌우로 방향을 틀었다. 그 위를 66세 여인은 달리고 내가 열심히 걷는다.

“그런데 나에게 문제가 있어요. 해를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이지. 좋아 미치지.”

갈색 피부의 66세 여인이 말한다.

“햇볕은 당신에게 vitamin D를 공급해 주니 적당한 일광욕은 좋지만 너무 과하면 문제를 일으키지요. 피부를 늙게하고 피부암의 원인이 되고…”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햇볕만 나면 그 아래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어쩔수 없다오. 너무 큰 욕망은 자제해야 하는데 말이야. 노력은 하고 있어. 적당히, 적당히 하자 하고 말이야.”

여인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몸의 외침에는 세심히 귀를 기울이고 마음은 잘 다스려야 한다는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왔고 여인이 이탈리안이라는 사실을 주고 받다가 우리의 화제는 인종의 외양으로 옮겨졌다.

“우리 이탈리안은 코가 크지요. 피부는 가무잡잡하고. 나는 척하면 척으로 이탈리안을 구분할 수 있어. 독일인들은 하얀 피부에 라이트 블루 눈동자를 가졌지. 스위스인들은 유난히 피부가 창백해 보이고… 당신은 아몬드형의 눈매를 가졌군… 아시안들의 특징이겠지?”

내 눈때문에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많은 아시안들이 그 특징을 잃는다. 서양인들에게 동북아시안들은 가늘고 눈꼬리가 길게 올라간 눈을 가졌다는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사람을 볼 때는 외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을 봐야해. 그러면 각자의 개성과 성격이 보이지요. 어쩜 하나같이 그렇게 다른지…  각자의 모습 그대로 모두가 소중하고 사랑스럽지.“

그렇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자신의 개성을 간직하며 영혼을 끊임없이 매만지고 주어진 외모에 만족하며 산다면 이 여인처럼 매력 풀풀 넘치는 사람이 될텐데… 나는 여인같은 노인이 되고 싶다. 이렇게 계속 걷다가 조금씩 머리를 튼 두 대의 트레드밀이 만나는 날, 갈색 피부는 아닐 지라도, 얼굴에 기미가 조금 끼어있을 지라도, 66세의 건강한 여인이 되어 또 다른 젊은이에게 작지만 커다란 삶의 지혜를 건네어 줄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