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는…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아바타를 보러갔다. 우리집 주변에는 3D 영화관이 많지 않아서 극장에 사람들이 우글우글했다. 낮에 갔는데 밤 표만 있단다. 그래서 밤에 다시 갔다. 미국 극장은 좌석제가 아니니 좋은 자리를 맡기위해 일찌감치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그 틈에 끼어 줄줄이 줄줄이 이동을 했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는 주유를 위해 3시간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자동차들이 있다. 구호 식량을 나눠주는 긴 줄 끝에서 주린 배를 두드리며 목숨줄을 연명하려고 인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근 고등학교로 눈썰매를 타러 갔다. 여름엔 초록 잔디와 노란 민들레로 뒤덮이는 언덕이 눈만 오면 썰매장으로 변한다. 고무 튜브, 플라스틱 썰매, 스노우보드… 가지각색의 장비로 신나게 눈언덕을 미끄럼 타는 아이들. 썰매를 탄 채 빙글빙글 도는 아이들, 내려오다가 고꾸라지는 아이들, 둔턱에 받혀 튕겨나가는 아이들… 방수천 스노우팬츠 덕에 눈에 뒹군들 젖을턱이 있을까. 두툼한 자켓은 알록달록 색깔도 곱다. 아이들 입에서 하얀 김이 터지고 가끔은 비명소리도 새어나오지만 신나고 재미나서 눈동자가 세상없이 반짝인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는 팔이 부러진 아이, 집과 가족을 잃은 아이, 배고픈 아이, 그래서 상점을 강탈하는 아이들이 있다.

겨울이 되니 발뒤꿈치도 까칠한 것 같고 샤워 후 피부가 따끔거려서 레몬스틱이 들어있다는 샤워헤드를 주문했다. 마침 프로모션을 한다기에 부담도 적고 그래서 어디한번 써보자,하고 샀다. 우리 아파트는 물세가 렌트비에 포함되어 있어서 그것도 좋다. 목욕을 좋아하는 나는 이제 아주 신이 났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는 수도관이 파괴되서 목욕은 커녕 목마른 사람들이 수두룩 있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인근에서 규모 7.0 강진이 일어나 지반이 갈라지고 건물들이 무너졌다. 이는 이미 예정된 재난이었고 앞으로도 또 일어날 일이란다. 이번 아이티지진은 카리브판이 북아메리카판에 대해 해마다 20밀리미터씩 동쪽으로 이동하는 지점에서 생긴 것이다. 그래서 예측도 가능했다. 지표면은 여러개의 판으로 갈라져있고 지구 내부에 축적된 에너지가 분출하면서 지진파가 전달되면 판이 움직여 그 부근이 심하게 타격을 받게 된다.

 집과 건물이 파괴되는 1차 재해가 끝났어도, 수도, 전기 , 가스, 통신망이 심하게 파괴된 2차 재해로 인해, 게다가 썪어가는 시체들로 인해 그곳은 지금 아비규환이다. 세계로부터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채가 탕감되니 불행중 다행이지만, 속수무책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비통은 무엇으로 달래줄 것인가. 왜 그들은 최빈국에서 태어나 재난까지 입으며 살아야 하는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게 있어 신(神)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시는지...

아이티 사람들 소식을 들으면서 내가 현재의 삶에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면 그건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모른 척한다면 그건 사람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돈이 모여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란 사실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상이 결국 공평하다고 믿었던 내 발등에 생긴 심한 상처는 영원히 자국을 남길 것 같다.

( 2010년 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