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차를 타고 미용실 가면서…

띠리리리 띠리리리, 방정맞은 알람소리를 들으며 꿈속과 현실을 물감처럼 뒤섞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이 아침 6시 45분이었다. 물 한 컵을 들이키고 초스피드로 씻고나자 벌써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바나나 하나로 겨우 아침을 대신하고 부랴부랴 현관을 나선다.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남편의 인사에 “엉”이란 대답만 엉성하게 남기고... 바깥은 밤사이 냉동고처럼 얼어붙은 세상. 나는 운전을 하면서 더 춥다고 느낀다. 아파트 건물을 벗어나 실외 주차장까지 걷는 동안은, 파카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두 손을 주머니에 쏙 집어넣으면 그런대로 견딜만 하다. 그런데 싸늘한 운전석에 엉덩이를 대고 맨 손으로 운전대를 잡으면 그야말로 꽁꽁 얼은 냉동차를 몸으로 녹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꼭두새벽(?)에 나가면 이럴 줄 뻔히 알면서 잡은 약속이란 다름아닌 미용실 예약이었다. 쌍방간 일정때문에 이래저래 시간을 맞추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이빨을 덜덜 떨면서 운전하는 동안 문득 회한이 밀려왔다. 뭐, 이러면서 머리를 해야하나… 아무때고 마음 내키면 미용실로 출두하여 기다리는동안 잡지를 읽거나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 말을 섞는 한국식 재미가 그립다!

오늘 그 미용사분과는 두번째 만남이다. 두 달만이고, 나로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일년에 많아야 두어번 미용실에 가는 나. 예전에 일년이 넘도록 머리를 기른 적이 두번 있었다. 한번은 기르다 기르다 싫증나서 혼자서 거울보고 싹둑싹둑 숏커트로 잘랐다. 그렇게 자른다음 또 한참을 버티다가 미용실에 갔더니 헤어디자이너가 내 머리카락을 지렁이 만지듯 들어올리며 ‘이 머리카락들 왜 이래요?’ 했더랬다. 물론, 유학생 와이프시절 이야기이다. 그런 것이 버릇이 되어 요즘도 미용실에 자주 가지 않는다. 그러니 두 달만에 가는 일은 드물 수 밖에…

두달만에 가는 이유는 뻔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가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곳에서 한 머리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 때같으면 다신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예약한 이유는 그 미용사분이 인간적으로 좋아졌기 때문이다. 애로사항이 있으면 전화하라는 친절한 말을 빌미로 일주일만에 전화를 했었다. 아무래도 자르거나 다시 퍼머를 해야할 것 같아요, 하면서. 그러자 선뜻 오라고 했다. 그것이 시원시원하니 마음에 들었는데 하필이면 약속 날짜에 눈이 펑펑 쏟아져서 취소를 해야했다. 미안한 마음에 그냥 버텨야지, 결심했건만 며칠 후라도 꼭 오라는 당부아닌 당부를  거듭하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빛을 갚는다는 것이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가지는 않았지만 다시 해준 것만큼이나 감사했다. 게다가 강한 책임감과 신뢰까지 느끼게 하니 말 한마디란 얼마나 소중한가.

“처음 해 본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용실을 바꾸면 적응할 기회를 잃고 자꾸 이 미용실 저 미용실을 떠돌 수 밖에 없어요. 머리도 모든 관계처럼 적응기간이 필요해요. 처음엔 낯설어서 모발의 성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만 두 번 만나고 세 번 만나면 손에도 익숙해지고 고객 취향도 파악할 수 있으니 훨씬 나아지거든요.”

그 말이 변명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철학이 담겨있어서 좋았다.

 

아무리 시내 유명한 미용실에 같이 가자고 말씀드려도 ‘내 머리는 동네 양씨가 제일 잘 해.’라며 끝내 집근처 미용실을 고집하시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런 역학관계를 나만 모르고 살았다니… 새로운 걸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한번 마음에 안 들면 발길을 돌리고 새로운 곳을 찾아 전전하던 내 고충은 알고보니 생각이 너무 짧았던 탓이었다. 참을성 없이, 넘쳐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였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옳바르고 확고한 철학을 가진 사람은 프로근성도 대단한 법이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므로 내 머리가 그 사람의 손에 익을 때까지 시간을 주자고 쉽게 결정했다. 두번째는 분명 첫번째보다 나을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