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려오는 전화는 일단 받는 것이 내 버릇이다. 전화창에 unknown caller라고 찍혀 있어도 받는다. 한국에서 오는 전화도 그렇게 표시돼 있고, 어쨌거나 받아야 누군지 알테니 받을밖에… 그러다보니 정크콜에 대고 말해야 할 때도 많다. 되도록 절도있게 끊는 편이지만 거절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을 한다. 그 사람들도 삶을 위한 궁여지책이지 일부러 나를 못살게 굴려고 전화 한 건 아닐테니까.

그런데 그런 선심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화로 사기 치는 사람들 말이다. 직접 경험한 일은 없지만 종종 뉴스거리가 되니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부탁하는 청을 들어준 일이 있다. 이후로 그런 전화가 가끔 걸려온다. 오늘도 또 한번... 남자는 차분하게 자신의 용건에 대해 말했다. 미국내에도 비록 푸드 스탬프로 연명을 하기는 하지만 영양결핍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사람 마음을 제일 흔들어 놓는 멘트이다. 나는 불쌍한 아이들 이야기에는 정말 맥을 못춘다. 전화 건 남자 역시 몇 끼를 굶은 듯 힘없는 목소리여서 안스러웠지만 이번엔 정중히 거절했다. 이제부터는 확실한 단체에만 기부하기로 했기에… 그런데 남자는 전화 끊을 생각을 않고 100불에서 50불에서 25불까지 흥정하듯 금액을 낮춘다. 요령 없는 사람이다. 기부는 그렇게 구질하게 구걸을 해서는 안된다. 신뢰를 주어야하고 마음을 사야하는 것을… 어쩌면 그 남자도 피해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정말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사람들이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 사회의 피해자… 나는 누구나 믿고 싶은데 골라가며 믿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가끔, 착실히 설명을 하는데 상대방이 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땐 기분이 몹시 상한다. 내 자랑 같지만 나는 거짓말을 안 하려고 정말 노력한다. 하얀 거짓말도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한다. 조금 둘러대면 매끄럽게 넘어갈 일이라 마음 속에서 갈등을 일으킬 때도 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하리라. ‘있는대로 이야기하자’ 와 ‘조금만 꾸며대자’가 마음 속에서 업치락 뒤치락한다. 이것도 버릇같은 것이라 한번 하게되면 그 쪽으로 점점 익숙해진다. 그러다보면 한 쪽 길이 잘 닦여져서 그 길로 마구 달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인 걸 생각하면 거짓을 말해서 무엇하나,란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도 그런 의미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작은 것부터 솔직해지는 습관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누가 무슨말을 해도 믿게 되는 세상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참 간단한 원리이다. 한사람 한사람인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줍시다,라고 걸려온 전화에 선뜻 그러마,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신뢰의 철학은 참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양심과 윤리가 살아있어야 신뢰가 생긴다. 사악한 유혹을 물리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이것을 지킬수 있다. 요즘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도요타 사태를 보면서 3대를 이어온 거대 기업의 안타까운 운명이 타산지석으로 주는 교훈을  뼈저리게 얻는다. 비윤리와 거짓과 양심불량은 끝내 재앙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