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양말짝인고 하니,

오토만 위에 양말들이 구릉처럼 쌓여있다. 드라이어에서 막 꺼내면 뽀송하고 따끈하고 향긋한 유연제냄새가 나지만 일일이 짝을 맞추어 개려면 영락없이 바퀴벌레같이 징글맞아지는 양말들… 빨 때는 괜찮은데 갤 때가 문제이다. 색깔과 모양과 재질이 각각이라 숨은 양말 찾기놀이를 해야하는데 물건을 찾는 재주가 잼병이라 즐겁지 않다. 나는 속옷과 양말과 겉옷을 따로 빠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바구니가 가득 차면 세탁을 한다. 그러면 다른 것들은 적당한 양이 되는데 양말만은 항상 과부하가 된다. 이 버릇은 신혼 초, 남편에게 무좀병이 있을 때 생겼다. 뜨거운 물을 사용하더라도 속옷과 같이 빠는데 저항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항생제를 오랫동안 복용해서 무좀이 나은 지금도 버릇은 여전히 남아있고, 매번 빨래를 갤 때마다, 이유~ 바퀴벌레처럼 우글우글하네~,라고 맥없이 양말을  탓한다.

겨울철엔 까만 양말이, 여름엔 하얀색이 눈에 많이 띄지만 무늬와 모양이 각각 다른 탓에 더딘 짝찾기 노릇은 여전하다. 언젠가부터, 양말에도 입는다는 개념이 생기고 옷과 매치되도록 다양한 모양과 질감과 색상이 연출되면서 패션 트랜드가 두드러졌다. ‘양말은 같은 제품의 같은 색깔들을 사야  짝맞추기도 편하고 한 짝씩 떨어지면 섞어 신기도 좋단다’라고 하셨던 엄마의 지혜가 통용되지 않는 시대이면서 양말마저 할 일 많은 주부들을 쬐금 더 괴롭히는 세상이다.

발목과 발등에 걸쳐 입체무늬가 들어있어 버선처럼 뚱뚱한 양말, 목이 아예 없어 심플한 양말, 줄무늬 양말, 노란 양말…

한 눈에 딱딱 들어맞는 짝도 있고, 색과 모양이 같지만 무늬가 조금 다른 양말도 있고, 분명 같은 짝인데 한 쪽이 심하게 느슨해진 양말도 있고, 언뜻 같아보였지만 색에서 조금 차이가 나는 다른 짝도 있다. 구릉 속을 뒤져 찾아낸 짝들은 한 쪽 발목부분을 살짝 까뒤집어 다른 한 쪽과 함께 고정시킨다. 하나씩 하나씩 양말이 제 짝을 찾는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오로지 두 사람만으로 묶이는 커플이나 부부처럼…

제대로 짝지워진 양말은 서랍장에 잘 들어있다가 곧 주인의 발에 신겨지고 다시 빨래바구니에 담겨지고 또 세탁되기를 반복한다. 한 쪽이 심하게 늘어진 양말은 그 한쪽 때문에 두 짝 다 버려질 수도 있고 성한 한쪽만 남겨졌다가 다른 비슷한 짝과 엮여질 수도 있다. 언뜻 같은 짝인줄 알고 포개져 있다가 다른 짝임이 밝혀지면 각각 제 짝을 찾아 새롭게 묶여지기도 한다. 지구촌 남녀들 짝짓기와 다를바 없다.

나는 어떤 양말인고 하면, 실수로라도 잠시 다른 짝과 나란히 겹쳐진 적 없이, 공장에서 출고된 이후 남편이란 짝과 줄창 같이 묶여진, 천하에 싱겁고 심심하고 밍밍한 양말짝이다. 가끔씩 식구들 몰래 꺼내 들여다보면서 그리움에 가슴 떨 추억의 남자 하나 없다니… 갑자기 결혼 전 이렇다하게 연애 한번 못 해본 내가, 양말짝들을 붙들고 쓸데없는 상념이나 펼치는 내가, 슬픈 바퀴벌레처럼 묘하게 징그러워 한숨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