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토지’ 예찬

“고전들에 비하면 현대 소설들은 후,하고 불면 푸드득 날라갈 것 같아요.”

누군가가 말한 현대소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들으면서 처음엔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알고보니 ‘chick-lit소설’을 현대소설이라고 착각한 데서 온 소리였다.

‘chick-lit’이라는 금세기 주요한 문화현상이 있다. 젊은 여자를 은유한 chick과 문학의 literature를 합성한 용어로서 20,30대 여성을 겨냥한 성과 사랑, 일 등의 일상 이야기들을 수다떨듯이 써낸 소설류를 의미한다.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시작한 소설장르이며 브리짓존슨의 일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sex and the city, 스타일(백영옥 작)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유행처럼 퍼진 새로운 장르가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면서 불황인 출판업계를 유혹하여 만연하다보니 그것들이 현대문학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한국문학에서는 19세기까지를 고전문학, 20세기 이후를 현대문학으로 규정짓고 있다. 그러므로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에 걸쳐 3만장이 넘는 원고지 위에 그려진 장편 대하소설인 ‘토지’는 엄연히 현대소설인 것이다. 한국 현대문학의 거대산맥인 고 박경리님은 한 산문에서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두루마리 같은 시간을 쓰고 싶었다’고 밝힌바 있다고 한다.(블로그 골든모티브 참조) 구한말부터 해방기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의 터치는 작가의 그러한 소망으로 시작해 뼈를 깍는 인내로 완성을 이루게 된 그야말로 작가의 분신이란 생각이 든다.

토지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프랑스영화에서 느끼곤 했던 생소함을 맛보았다. 미니멀리즘, 생략법 혹은 소설미학을 매력으로 여기고 있던 취향 탓인지, 구체적이다 못해 독자의 상상에 맡기기 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감정을 일일이 작가가 설명에 의해 다 풀어내 버리고, 실제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서희의 이야기보다는 주변의 인물들로 채워져 버린 방만한 전개가 꽤 갈증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이름보다는 캐릭터로 인물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토지에 나오는 수많은 등장인물을 상기시키는 일이 버겁기까지 했다. 하지만 약 450페이지에 달하는 단행본이 총 16권으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책봉우리를 한개씩 넘으면서 대작가의 역량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과연… 이란 단어 이외엔 뱉을 말이 없었다. 사실 누가 대하소설 ‘토지’에 대해 쓰라고 숙제를 낸 것도 아니고 뚜렷이 무엇을 언급해야 할 지도 모른 채 마법에 걸린 듯 이 글을 쓰면서 그 감동만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이 우스워 실없는 웃음이 터진다. 솔직히 내 작은 재주로는 그걸 풀어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여러분께 꼭 직접 읽어보시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한 지인께서 황석영씨 작 ‘바리데기’를 읽고 난 후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좋겠어요!” 토지를 읽으면서 생긴 나의 바램을 대신하는 말이다. 그러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한없이 크다. 노벨문학상은 살아있는 작가에게 주어지며 사실 토지의 전 5편중 1편의 1권 정도만 번역이 된 상태를 감안하면 이루어지지 못할 희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상따윈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 독자의 마음에 황금책으로 길이 남을 이 명작은 상업주의의 팽대로인해 가벼운 소설이 판을 칠수록, 세월이 거듭되어 옛 것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묵묵히 그 빛을 더해가리란 믿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