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아이스링크의 마술사!

지금 LA스테이플스 센터의 아이스링크 위에선 마술쇼가 펼쳐지고 있다. 한마리 학이 흑장미로 탈바꿈 하는가 하면 바람개비가 되었다가  절색 흡혈기로 변신하여그 요염한 눈빛으로 보는 이들의 심장을 빨아들인다. 혼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가 마법에 걸린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쑥쑥 뻗어 올라 지칠줄 모르고 가지를 흔들어 댄다. 냉기로 뒤덮혀 있던 차가운 공간은 열꽃 핀 아이의 얼굴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고 꽃과 인형들이 새처럼 공중을 날아다닌다.

김연아 선수의 열연이 끝났다. 배경음악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였다. 그녀는 관중들의 장대한 기립박수에 청초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로 길게 화답한다.  아.름.다.움.이란 추상의 의미가 생생하게 형상화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녀의 화려한 몸짓이 멈추고 음악이 칼끝에 베인 듯 사라졌을때, 내 가슴에서 소용돌이치던 감격이 눈으로 밀려나왔다. 어린 그녀는 내겐 고국이다. 아름다운 한국이어서 눈물이 흐른다.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보며-

어제의 흑장미가 오늘은 정열의 플라밍고로 변신했다. 붉게 변한 그녀의 믿기지않는 마술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녀는 돌고 또 돈다. 기다란 다리를 활처럼 휘어서 돌고 회오리 바람에 휘둘리는 동백꽃잎처럼 돌고 소용돌이에 퍼져가는 물여울처럼 돈다. 하염없이 도는데 흔들리지도 쓰러지지도 않는다. 넛크래커의 병정같은다리모양을 했다가는 백조의 호수를 열연하는 발레리나의 아라베스크 자세를 취한다. 두 손을 모아 뺨에 갖다 댈때는 사랑을 갈구하는 소녀가 되고 젖은 빨래를 털듯 상체를 숙였다 힘차게 들어 올릴 적에는 운명을 거부하는 몸짓의 여인이기도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놀랍게 아리랑의 곡선이 피어오른다. 갸냘픈 팔이 그려내는 숨죽인 한민족 고전의 춤은 역설적이게도 어느 몸짓보다 화려하다. 나는 부러음악이 없는 그녀의 동선을 몇 번에 걸쳐 꼼꼼히 되돌려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서서히 아쟁 소리와 가야금 성률이 들려 오는 듯 했다.

키스앤크라이존에 앉은 그녀는 세계신기록이 되어버린 자신의 점수를 보고도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곧 들고 있던 물병을 자신의 분신처럼 들여다 보며 속으로 되뇌는 듯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건 현실이야. 정신을 차리고…그리고 감사하자’ 물론 나의 상상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 그녀가 그 순간 자신에대한 자랑스러움을 느끼기 보다는 많은 존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주기 바랬다.

-프리스타일이 끝나고-

아이스 링크 위엔 꽃다발과 메달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고 세개의 단상이 놓여있다. 이름이 호명되자 김연아선수가 힘차게 날을 차며 단상을 향해 오른다. 가운데 제일 높은 단상이다. 곧이어 캐나다의 조애니 로셰티와 일본의 안도 미키가뒤따른다. ISU회장이 금메달을 그녀의 목에 걸어준다. 18세의 그녀, 찔금찔금 터지는 웃음을 갈무리 하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그녀, 2009년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싱글부분의 챔피언이 된 그녀, 애국가가 흐르자 눈물을 연신 닦아낸다.  나도눈물이 흐른다.

-시상식을 보면서-

순백의 농염!

-갈라쇼-

김연아선수는 7세때부터 스케이트를 탔다고 한다. 그 당시 피겨 관계자들은 신동이 나타났다고 했다. 그녀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습을 했고 그녀의 곁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었다. 2003년 처음 최연소의 나이로 태극마크를 단 김연아는2004년 ISU주니어그랑프리에서 한국 피겨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따내면서 국민들의영웅으로 떠올랐다. 이후 여러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국민요정으로자리매김을 하였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선수와 라이벌관계로 구축되며 세인들의입방아에 많이도 오르내렸다. 지난 2년간 심한 허리부상으로 고전을 했지만 꾸준한 각투끝에 200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마의 200점이라는 점수대를 훌쩍 넘어선 세계신기록을 기록하고 말았다. 2010년 벤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게 될 피겨의 여왕,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와 정신과 노력에 기립 갈채를 보내며 끊임없는성원을 약속한다. 그리고 설령 금메달을 못 따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워야할 것이다.

부라보, 아이스링크의 마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