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그녀의 웹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

아름다운 그녀!

‘지선아 사랑해’란 책을 막 읽고난 참이다. 이제서야 읽어보았다. 가슴이 에인다, 온 가슴이 쓰라려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흐른다. 나도 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그녀가 원하는 것은 눈물 대신 미소일테고, 아픔 대신 감동일테고, 특별한 호기심 대신 친근한 눈길일테니까.

이 지선이란 이름의 그녀, 스물 셋에 교통사고로 전신의 55%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의료진이 포기했던 사람. 스무번 이후로는 세지 않기로 한 수술 이력을 가지고… 오빠마저 동생을 구한 일이 과연 잘 한 짓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할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세월들… 홀라당 탔다는 농담을 건네면서도 가끔은 칠흙의 어둠 속에 묻힐 수 밖에 없었던 그녀. 너무 곱고, 너무 밝고, 너무 평이했던 과거의 기억을 수렁처럼 헤매는 대신 그녀의 하나님으로부터 ‘덤’인 삶을 선물로 받고 마음의 평안과 용서와 희망을 끌어 안은 사람…

2000년 7월. 그녀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에 재학중이었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오빠와 함께 돌아오는 길이었다. 끼이익~ 요란한 타이어 마찰음이 들리고 어디선가 사고가 나겠다는 예감을 한 순간, 만취한 운전자가 신호 대기중이던 앞 차를 들이 받는다. 그녀와 오빠가 탄 차였다. 연료통에서 불길이 솟고 기절한 그녀의 얼굴과 몸에도 붙이 붙는다 . 그녀 몸에 붙은 불을 잡느라 오빠의 팔에 불길이 옮아간다. 곧 병원에 실려가지만, 소생될 기미가 없다는 의사의 판단때문에 그녀는 죽음을 향한 마지막 문턱을 넘을 뻔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녀 몸에서 흘러나오는 한줄기 생명의 기운을 감지했다. 그리고 이후로 길고 고통스러운 치료와 수술이 반복된다. 마약 성분의 진통제 없이는 견딜수 없어 한 때 마약중독을 의심받으며 속상한 적도 있었다. 눈꺼풀이 닫히지 않는 눈에 날벌레가 내려앉은 후로 날벌레를 보면 소리를 질러대곤 했던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는 7개월이 소요되었다. 7개월만에 그녀의 삶은 성숙하고 능동적이던 스물 셋에서 타인의 보살핌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세 살로 변해 있었다. 통원치료와 거듭된 수술, 재활치료를 반복해야 했던 시간을 그녀는 하나님 덕에 견디어 낸다.  그녀의 사고를 생생히 지켜보아야했던 오빠, 그저 살아서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에 감사하시는 엄마와 아빠, 사랑과 평안을 내려주시는 그녀의 하나님, 그리고 많은 친구들을 보물로 간직하며 그녀는 지금 씩씩하고 용감하게 제 2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녀는 참 고운 치열을 가졌다. 그리고 단아한 몸매와 선한 눈빛, 세련된 분위기, 풍성한 머리, 그리고 꿈을 위해 맹진하는 지구력과 희망… 장애인들의 심리치료를 돕는 것이 그녀의 꿈이란다. 보스톤에서 살다가 뉴욕 콜롬비아대학원에 다시 진학했다는 최근 소식을 그녀의 홈페이지(www.ezsun.net)에서 보게 되었다. 아, 잠시동안이나마 나와 아주 가까운 지구상에서 살았었구나……

나는 책 속에 실린 그녀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본다. 화상 입기 전의 어여쁜 얼굴과 사고 후의 변한 얼굴때문에 만감이 교차한다. 10여년 전이 떠올랐다. 아들이 신부되기를 바라실만큼 신실한 캐톨릭신자였던 이웃집 아주머니는 누가 보아도 남부러울 것 없는 분이셨다. 교양있고 온화한 몸가짐, 가진 자의 여유와,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는 모습에선 평화가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날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다행히 긴 잠에선 깨어났지만 아주머니의 머리칼은 횟가루빛이 되었고 반신불수에다 반 만 움직이는 입때문에 말씀조차 어눌하게 하셨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놀래서 도망가요.” 엄마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나는 둑 터지듯 뿜어져 나오는 울음을 억누르지 못해 어깨를 들썩였다. 이 세상에서 제일 기구한 삶을 목격한 듯한 충격때문에 한동안 아주머니의 하나님과 마리아에대한 불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주머니와 그녀, 과연 그 두 사람은 충만하게 가진자였다가 한순간에 많은 것을 잃은자가 된 것 뿐일까? 핑크빛 삶에서 잿빛 인생으로 퇴색해 버린 주인공일 뿐일까? 그렇지 않을 거라는 어렴풋한 추측에 대해 ‘지선’이란 당사자가 확실한 답을 준다. ‘지선아 사랑해’를 통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새삼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이식한 피부는 자꾸 오그라드는 성질이 있다는 것, 목에 있는 주름들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그녀는 한때 목피부가 수축해서 고개가 숙여지고 턱이 당겨져 침을 흘렸다), 장애는 불행이 아니라 불편일 뿐이라는 것, 특별한 경우엔 정중한 무관심이 위안이 된다는 것, 가족의 사랑이 참인간을 형성시킨다는 것, 종교가 주는 커다란 힘과 위무…

이 책엔, 그녀와 엄마가 뽀뽀하는 사진이 실려있다. 입술을 다물수 있게 되었을 때, 사고 후 서서히 진행되던 치아변형을 막을 수 있어서도 기뻤겠지만 엄마와 다시 뽀뽀할 수 있어서 더 행복했을까? 그녀는 삶이 스물셋에서 세 살로 거슬러 되돌아 간 바람에 엄마와 뽀뽀를 한 걸까, 아님 스물셋이 될 때까지 그렇게 뽀뽀하며 살아왔을까?

그녀가 졸업앨범 찍느라 예쁘게 꾸민 모습의 사진을 보면서 아름다운 평범한 여대생이란 생각을 했다. 익숙한 풍경처럼 혹은 잘 어울리는 한 쌍(캠퍼스와 여대생)처럼 그 곳에 가면 흐드러지게 만날 수 있는 빛나는 젊음이다. 그런데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진이 있었다. 그녀가 동그란 안경을 쓴 채 오빠 등에 업혀있는 사진. 사고후 긴 고난의 극복이 없었다면 그토록 평화로운 미소를 머금은 오빠의 등에 업힌 사랑스러운 스물 네댓살의 동생이 있었을까? 세상에 하나뿐인,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오누이의 모습에 감동이 밀려들었다. 사진 속 그녀의 얼굴이 혐오스럽다는 표현을 한 네티즌이 있었다기에 마음의 눈을 갖지 못한 그 사람에게도 곧 심미안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힘겹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이기고 나면 주어지는 보물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열매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저는 이제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값진 체험의 진리를 곱씹으며 건강한 마음만큼 빛나는 건 세상에 없다고 중얼거려본다. 그리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아 주리라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