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꽃을 들고 들어오던 남편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미소. 십 몇 년을 살 맞대고 살다보니 반들반들 닳아버린 표정이 돼버렸는데, 가끔씩 새신랑 때처럼 두근두근한 향을 맡게 해주는 웃음. 그 미소를 머금은 남편은 화분을 들여놓고 슬그머니 등을 돌리며 딴 청을 피웠다. 세상에서 별보다 반짝이는 꽃이 있다면 바로 이 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젤리아!

“어머나, 이렇게 예쁜 꽃나무가 있냐? 처음 봐, 아젤리아......?”

결혼 전에 꽃다발 딱 한 번 받아봤고, 아기 낳고 한 번, 그 후로 마더스 데이같은 특별한 날에 작은 다발은 받아봤어도 이렇게 큰 무더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연애질하는 동네 아줌마,아저씨를 구경하듯 흘끗흘끗 응큼한 눈길로 쳐다봤다. 나는 어찌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뻔순이가 되기로 했다. 남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뽀뽀를 한다.

“빨리 나으라고…”

어떨 땐 사랑하는 것 같고 어떨 땐 아닌 것 같았던 그 즈음,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애처가도 없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내 몸이 힘들어 신경질도 부리게 되고 그러다보니 서로의 정신이 많이 약해졌다. 그 정신 건강에 최고인 선물은 아마도 ‘꽃보다 사랑’이었으리.

며칠동안 블랙홀처럼 사정없이 내 눈길을 빨아들이던 그 화려한 아젤리아의 한국말 이름이 궁금해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알고보니 철쭉이었다. 그때서야 초 봄이면 우리나라 팔도강산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 철쭉의 기억이 되살아나 눈 앞의 꽃나무에 오버랩 되었다. 철쭉, 맞네! 사랑은 바보같은 것…

내 병이 나은 지금, 철쭉은 제 생명의 기운을 내게 건네주고 곱게, 아주 곱게 잠시 숨을 거두었다.

“엄마, 이거 sign up 꼭 해야 돼. 엄마 꽃 좋아하지? 그래서 꼭 해야 돼.”

마더스 데이 이벤트로 학교에서 꽃화분을 파는가 보았다. 아린이 녀석이 종이를 코 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저번에 아빠가 꽃사왔을 때 엄마 행복했잖아. 나도 살래.”

볼펜까지 찾아와 막무가내로 쥐어준다.

“그래, 그러자!”

아린이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게 바가지를 좀 쓴다. 학교 fund raiser를 위한 물품은 그런 경향이 다분했다. 마더스 데이날, 작은 품에 안긴 앙징맞은 화분은 바이올렛이었다. 신경숙의 소설 ‘바이올렛’에서, 이렇게 작고 못생긴 꽃(?기억이 가물가물~~) 이란 표현이 나왔을 때, 궁금했었다. 바이올렛, 요렇게 생겼구나. 예쁘기만 한걸! 이때껏 우리집 식탁 위에서 잘 살아주고 있어서 더 예쁜 꽃, 울 아린이의 사랑이 담뿍해서 꽃보다 더더 예쁜 꽃!

드디어 수술을 끝내서 잘 회복하라고 남편 교회 속식구들이 전해준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 향기도 맡아보고 한송이 한송이 귀한 마음을 눈에 담는 동안 수술로 인한 통증은 날아간다. 자연의 신비주의에 늘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꽃의 슈퍼울트라 파워에는 언제나 깜짝 놀란다. 지금은 진통제 역할을, 언제나 사랑의 메신저이고, 삶의 고충을 잊게하는 망각제, 타임머신같은 추억머신, 말 한마디 안해도 마음을 전해주는 신비한 연금술사…

백합 닮은 노란꽃 들여다보며 바다엄마, 이 재숙 권사님, 송이엄마, 예람이네 언니, 윤정씨… (혹 제가 잊은 분이 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생각하고

연두색깔꽃 바라보며, 주신 고기, 죽, 빵, 국, 반찬 등 너무 맛있었어요, 인사하고

붉은 장미처럼 사랑스러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분들의 따스한 안부전화와 관심에 감사의 키스를 보냅니다, 쪽쪽……

이 은혜 어찌 갚을까요…?

청초한 튤립을 건네신 후 경쾌하게 차 한잔 하고 가신 장인숙 권사님. 짧은 시간동안의 담소는 재미났고, 평소에 별 친분 없이도 아픈 사람 그냥 지나치지 못해 위로하시는 마음이 꽃보다 인간적이어서 나도 한수 배웠다.

아픈 동안 이렇게 꽃을 많이 받아서 행복했지만 그래도 꽃보다 건강!

미씨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길...

Ps.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나눈다는 사실은

      정말로 마음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행동임을 알기에

      커다란 고마움을 이렇게나마 전하고 싶었습니다.                      

- 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