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치적치적 내린다. 참 오래도…, 이제 7월인데 4월부터 꾸준히…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아파트 복도에서 쾌쾌한 냄새가 피어오른 지도 꽤 됐지 싶다. 지구에게 변이 생겼을까? 울음이 끝없어 땅 마를 날이 없네. 카펫이 눅눅해져 쌀쌀하다 싶으면 히터를 틀고 후텁지근하면 에어컨을 켠다.

사방이 고요하다. 창문을 닫아서 차소리도 안 들리고 집 안에서 아이들 부산떠는 소리도 없고…

아이들이 한국으로 떠난지 하루가 지났다. 결국 나는 가지 못하고 말았다.

첫 날, 남편은 아이들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다가 잠이 든 듯 보였다. 아이들 체취를 들이키며 아이들 꿈을 꾸고 있는지…? 공항 가는 차 안에서 작은 녀석이 “나, 코리아 안 갈래…” 라고 숨을 들썩이며 말했을 때 나는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 눈시울이 진달래빛으로 변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별은 언제나 슬픔을 동반한다. 말하는 품새가 한참동안 울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조그만 녀석이 창문 쳐다보면서 울고 있더라구…” 라고 남편이 중얼거렸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니 두렵기도 했겠다. 큰 녀석은 조금 긴장된다 하면서도 신나 보였다.

이번에 큰 녀석이 만 12세가 되어 성인 항공표를 사야했다. 그리고 um(unattended minor어린이 혼자 여행) service를 신청하지 않았다. 직항이니 어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혼자 힘으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갔다오면 성취감과 자신감도 생기고 더불어 정신적인 성장도 이룰 것 같다. 게다가 동생도 돌봐야하니 책임감도 강해지지 않을까? 은근한 엄마의 바램이다. 아이들에게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은 내 교육철학이다. 어렸을 때 직접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다보면 그 자양분을 바탕으로 세상 변화에 대한 정확한 추리력과 판단력, 자신감과 실행력을 겸비하게 될 것 같다. 어렸을 때 1만큼 어려운 일에 도전해 보았다면 조금 더 커서는 2만큼 힘든 일도 해낼 수 있고 점점 수준이 높아지면서 성인이 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거라고 기대한다. 맥가이버같은 사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축나게 되는 생활비가 아깝지 않다. 오히려 작은 것을 투자해 큰 것을 취하는 거라 생각한다.

미국 항공은 14세까지 의무적으로 um service를 신청해야 하지만 한국 항공사는 그런 규정이 없다. 하지만 막상 공항에서 check in하다보니 family service라는 것이 있어 공항에서 비행기까지 안내해 주는 친절을 받게 되었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미국법에 12세와 6세 아동의 공항내 단독 행보가 가능한 일일라나?...,했던 염려는 사라져 안심하고 비행기 못 탈 일은 없겠다, 했다.

둘째날인 오늘, 한 달 반동안 내가 살아야 할 공간의 이런 느낌에 빨리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자! 아자아자!

먼저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독일인 의사가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앉아 왼쪽과 오른쪽으로 유태인을 가르고 그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했다던 감독관… … 책상 위 산더미같은 잡동사니더미에서 우리집에 머물 것과 쓰레기통행을 판별해 낸다. 특히나 작은 녀석은 살림차리기를 좋아해서 오만 잡동사니가 곳곳에 널려있다. 나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버리길 좋아한다. 그런데 두 녀석은 무언가를 버리면 꿈속에서 그 물건의 원귀(한을 품은 귀신)라도 볼 듯이 버리는 일을 두려워한다. 특히나 자근자근 잘 따지는 작은 녀석은 때때로 내게 달려와 추궁하듯 묻는다. 엄마, 그거 또 버렸어? 진짜 버렸을 땐 미안,하고 꼬리를 내리지만 아닌 경우는 역전의 기세로 몰아간다. 거 봐, 그러니까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고 했잖아!

이 건 따질 물건, 이 건 잊혀질 물건… 속으로 뇌까리며 비닐 봉지에 담는다. 산더미에서 살아남은 것이 겨우 한주먹.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집 전체가 쓰레기통이 돼버릴 터이니 용서해 주길…

비닐봉지를 내놓으면서, 아이들이 이번 여행을 통해 제 영혼 안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릴 줄 아는 사람으로 훌쩍 커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제 것의 작은 틀을 깨고 사회 전체와 세계를 보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꾀하기 보다는 사회에 봉사하고 지구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한국행 때엔 특기인 영어를 활용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감과 봉사정신, 두 가지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마음이 부푼다.

그나저나 녀석들, 돌아올 때 너무 성숙해져서 못 알아보면 어쩌지?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