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는... 인생이다.

눈물나게 매우니까. 딱딱하고.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문드러져 있기도 하고. 아기가 커서 어른이 되고 또 노인이 되는 세월의 트랙을 겹겹이 간직한 모습. 이것만으로도 양파는 인생과 닮았다.

그런데 여기 또 한가지.

인생을 살다보면 몸에 병이 나든 마음이 괴롭든 어쨌거나 통증이란 것이 찾아온다. 통증은 양파의 속알맹이처럼 작을 수도, 제일 겉에 있는 켜처럼 클 수도 있다. 안으로는 작은 통증이 켜켜이 들어차 있지만 사람들은  제일 바깥에 드러난 통증에 초점을 맞추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나,란 생각을 해봤다.

예를 들어 대장절제수술을 했다고 한다면, 마취에서 깼을 때, 어떤이는 생살을 가르고 꿰맨 피부가 아프다고 느끼거나 혹자는 잘라낸 대장 부근에서 열이 나고 욱신욱신 쑤신다고 느낄 것이다. 그때 누군가 어디가 제일 아프냐고 묻는다면 ‘배’라고 대답하게 된다. 그 순간엔 배만 나으면 통증이 사라질 것 같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배의 통증은 서서히 완화된다. 순간적으로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도래한다. 그런데 이번엔 숨을 쉴 때마다 어깨의 심줄이 심하게 눌리거나 꼬이는 것처럼 아파온다. 수술할 때 흘러나온 피가 횡경막에 고여 생긴 현상이란다. 심호흡은 절대 금물이다. 숨을 크게 쉴수록 통증이 가중되니까. 고인 피가 서서히 피부와 내장에 흡수되면서 어깨의 통증은 줄어든다. 기특한 몸의 회복기능! 시간이 약이다. 이젠 침상에서 일어나 이것저것 세상사에 참견할 만큼 에너지도 축적된다. 그런데 이번엔 두통이 느껴진다. 숨을 가쁘게 쉴 때 충분한 공기가 뇌로 공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자 두통이 완화된다. 그러자 수술 전에 있었던 통증이 아슴한 추억처럼 조금씩 되살아난다.

언뜻 보면 이런 일련의 증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 생겨난 것 같지만 통증의 조건들은 처음부터 존재했으므로 모든 통증은 한꺼번에 발생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양파의 겉살에 가려 속살이 안 보이는 것처럼 더 큰 통증으로 인해 작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간혹가다 양파를 반으로 툭 잘라놓고 안에 켜켜이 들은 속살의 고통을 한꺼번에 늘어놓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만사가 괴롭고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무리 자기 인생은 자기 거라지만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은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웃으면서 살기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겐 정말 아무런 고충이 없는 걸까? 모기지 걱정도 없고 건강 걱정도 없고 부부간에 다툴 일도 없으며 자식들은 천사이고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아 본 적 없고 5년 후의 미래가 불투명하지도 않고 수입은 줄었는데 좋은 차로 바꾸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는 걸까?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걱정이 없는 모양이다. 양파에는 노랗거나 하얗거나 혹은 자주색의 겉껍질이 있다. 매운 속살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때로는 맨질맨질 윤기도 흐른다. 그 사람들은 바로 이 껍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작에 욕심을 버렸거나, 혹은 부처나 간디처럼 인생에 대한 도를 깨우쳤을 수도 있겠다. 혹은 그들에겐 신이란 존재가 있어서 그 고충을 덮어주는 지도 모르겠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든, 진정한 종교인으로서 살아가든 한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걱정을 잊고 행복한 생각만 하더라도 시간은 빨리 흐른다는 것.

양파의 어느 부분을 취하는 가는 각자의 몫이다. 어떤 이들은 드러난 속살을 나열해 놓고 괴로워하는동안 어떤 이들은 모양도 좋은 겉껍질 덕에 웃으면서 생명력있게 살아간다. 모두가 자기 할 나름이다.

다양한 삶의 모양이 반추되니 양파는 인생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