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Yoojin Kim

아이들이 돌아왔다! (1)

한 달반만에 만나는 딸내미들을 마중가는 길은 트래픽이 심했다. 내 머릿속처럼 복잡복잡… 아이들이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 햇살이 짱짱해서 졸음이 자꾸 눈꺼풀에 들러붙었다. 일개미들의 행진같이 늘어선 차량틈에 끼어있기보다는 집 근처 비치에서 돗자리 깔고 한량놀음을 하기에 알맞은 날씨였다.

내 머릿속에선 두가지 마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보고싶은 마음과 서운한 마음. 짝사랑하던 남자와 데이트에 나서는 것처럼 가슴이 쿵쾅대면서 스륵스륵 소름이 끼치도록 흥분되는 마음이 한켠에. 반대편엔, 13년만에 맛 본 황홀한 휴가가 끝난다는 아쉬움 한가득.

남편과 단 둘이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은 깨하고 꿀하고 섞은 송편같았다. 고소하고 달콤하고… 신혼같은 무드, 피곤하지 않으니 얼굴은 덜 푸석푸석해 보였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정진할 수 있었던 알찬 시간들… 사실, 아이들 떠나고 남편과 둘만 남으면 어떨까, 처음엔 예측이 어려웠다. 밍숭맹숭 할까봐, 심심하고 지겨워 질까봐 두렵기도 했다. 큰 아이가 태어난 이후, 특히 미국에 온 10년동안 꼬리표처럼 아이들을 달고 살았으니 둘만 있는 시간이란 생뚱맞을만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분산될 사랑과 관심까지 한 사람에게로 모이니 주는 이도 받는 이도 황홀해 했다. 사랑은 나뉘는 게 아니라 배(倍)가되어 언제나 온전한 하나이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경험해 보시라. 신이 아닌 인간이라 결코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니…

아무튼 간사한 마음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동안 공항에 도착했고 곧 두 딸아이를 만난 순간, 왠 서운함? 그런 마음이 언제 있었냐는 듯, 눈물 펑펑나게 반가웠다. 게다가 와우, 아이들이 예뻐졌다! 뽀얘진 피부와 한국의 유행이 그대로 느껴지는 세련미(1주일만에 도루묵이 되었지만, 시커멓고 촌스럽고…). 게다가 사랑이 만땅으로 채워진 아이들이 내뿜을 수 있는 해맑고 찬란한 빛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삼촌, 외숙모로부터 어루만져지고 채워진 사랑은 아이들 몸에 광채를 보태었다. 미국에 사는 나홀로 가족들에게 부족할 수 밖에 없는 부분, 그 부분이 늘 안타까웠었는데…

카트를 밀고 가는 아빠는 자꾸 뒤돌아보며 하트가 박힌 두 눈으로 딸들을 쳐다보느라 앞 사람과 부딛치고 말았다. 양 손에 보들보들한 아이들 손을 그러잡고 걷는데 피터팬의 손을 잡은 웬디처럼 몸이 붕붕 뜨는 착각이 일었다. 부자가 느끼는 만복감이야, 약간 간사했던 엄마는 잘못을 뉘우치며 절실하게 그런 행복에 젖어들었다. 그 보다 배부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뉴욕에서 매사츄세츠까지 한달음처럼 달려와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는데 키득키득 심술궂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당신의 한여름밤의 휴가도 끝이 났구려, 히스테리컬한 아랫집 아저씨에게 미안한 알림을 고한다. 부자가 된 느낌으로 실컷 보상받을 수 있는 엄마라지만 그는 무엇으로써 보상받을 것인가? 단란하고 시끌시끌한 우리 가족을 머리에 이고사는 댓가로 자극받아 새장가?라도 가시면 좋으련만…

아! 나의 한달반간의 휴가는 완전히 끝나부렀다. 아이들 그리워하지 않고, 허송세월 하지 않았으며, 나름 알차게 보냈던 행복의 시간들이여, 이제는 안녕!

그런데 이건 무슨 사단? 단 이틀이 지나기 전에 나는 모든 실체를 파악하고 말았으니…

(2부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