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만약 3층에 위치한 약 1300sqf.의 이 아담한 end unit이 어째 너희 집이냐, 한다면 할 말은 없겠다. 우스갯소리를 좀 하자면, 우리 집은 영어로 my house인데 이 곳은 하우스 아닌 아파트이며 등기부를 떼어봐도 우리 명의로 등록되어 있지 않을테니 말이다. 친정엄마는 언제나 걱정이시다. “나이도 있고 애들도 커가는데 내 집 한 칸 없이 월세를 주고 살아서 어쩐다냐…” 미국식 주거지 시스템을 아시지만 한국식 잣대를 버릴 수 없는 모양이시니 이를 어쩌랴, 나는 매 번 허허 웃고 만다. 그런 ‘내 집 한 칸’의 의미로 본다면 분명 이 곳은 우리 집(house)이라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내 가족이 주거하는 곳이라면 천막이라도 우리집(home)이 되리니 중요한 것은 공간(house)이 아니라 개념(home)인 것이다.

내가 말하고싶은 것은 내가 우리 집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아담해서 좋고(넓으면 더 좋겠지만^^), 렌트비 싸서 좋고, 가을 창 밖 단풍이 환상이라 좋고, 겨울이면 따스한 햇살이 집 안 깊숙이 늘어져서 좋다. 그리고 그 중 최고의 이유는 내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살아가는 공간이라서 좋다.

우리가 한국에 살던 시절, 남편이 올 시각이면 유진이와 마중을 나갔다. 찬거리도 살겸 마켓을 들리고 제과점 빵 하나 어린 딸이랑 나눠 먹으며 오가는 차를 살피는 일은 흥겨웠다. 가족의 2/3인 유진이와 내가 나머지 1/3인 남편을 맞아 완벽한 1이 되는 순간이니 왜 안 그러겠는가. 그런데 그냥 일상처럼 해오던 그 일이 큰 기쁨임을 깨닫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날따라 남편은 늦어지고 마냥 기다리다가는 저녁 때를 놓칠 것 같아 유진이와 나는 뒷걸음질 치며 집 쪽을 향하고 있었다. 목을 길게 빼고 슬슬 뒷걸음치는 우리의 모습이 누구의 눈엔들 정상으로 보였을까. 택시에서 막 내린 이웃집 언니가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언니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결혼 3년차라서 그런가 보네요, 우리는 6년차라 오든 말든 상관 안하는데… “라고 했다. 그때는 통성명한 지 얼마 되지않아 그냥 그려려니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혼을 고려중이라 했다. 그 당시 막연히 정말 결혼 6년차가 되면 그만 기다려지려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 아린이까지 합세하여 3/4이 1/4을 기다리는 마음 여전하니 그건 세월에 비례하는 문제는 아닌듯 하다. 하늘이 어둑해지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아빠 언제와요?’ 하고 묻는다. 그렇게 가족간 그리움이 드리워진 우리집이라 나는 좋다.

우리집에선 아빠도 설거지하고, 어린 아린이 빨래를 개고, 언니가 여섯살 차이나는 동생한테 맞아서 울기도 하고, 6년 차이 무색하게 자매간 싸움소리 피어나고, 엄마는 퀸이고 퀸이 운전사도 겸하고 식순이 노릇도 한다.

우리집엔 남녀불평등이 없고, 나이차 엄격한 구분도 없고, 큰 소파가 없어 서로 엉덩이 부딪혀 끼어 앉고, 층간 방음벽이 없고, 큰 물욕 가진 사람이 없고, 거만한 킹도 없다.

우리집엔 책읽는 목소리 있고, 엄마 컴퓨터과제 도와주는 딸이 있고, 아이들 노래소리 있고, 아래집 아저씨가 막대기로 천장 쳐대는 소리 있고, 몇 년째 끌고 다니는 런모어(lawn mower)도 있다.

우리집엔 남의 집에 있는 것이 없기도 하고 남의 집에 없는 것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아무 문제없이 피스(peace)하다. 서로 비교하지 않고 아둥대지 않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미국에선 시티은행이 대단위 구조조정을 단행해 떠들썩하고 비상걸린 자동차업계는 정부지원에 목을 맨다. 한국에선 정부산하 공기업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예상되고 월소득 천만원 이상의 쌀직불금 수령자가 1400명에 달한단다. 투자회사 대표가 자살을 하고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폐지에 대한 논란때문에 남편하고도 언쟁을 한다. 뭄바이 테러로 국가간 긴장이 조성되고 콩고의 내전으로 죽어가는 아이들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이 세상, 정말 시끌시끌하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제일 큰 집을 지구라 한다면 너무 거시적일까? 글로벌시대의 주인의식이라면 지구는 내 땅이요, 내 집이란 생각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큰 집이 평화로우려면 어찌 해야하나, 곰곰히 생각해 본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루므로 작은 집들이 제각기 평화로우면 큰 세상은 저절로 화평해 지려나… 너무 내 것만 챙기려들지 않고 가족처럼 서로 상대를 배려한다면 세상은 덜 시끄러울텐데… 내가 우리집을 좋아하는 이유가 결코 물질적 풍요에 있지 아니한 것처럼 지구의 피스도 물질과 권력에만 연관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버렸을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지 않으려나… 거만한 킹과 사치스런 퀸이 사는 집엔 평화와 사랑이 도래하지 않는다.

회사란 이익창출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지만 때론 위기에 처한 ‘구성원’의 협동심이 극한 상황을 극복시킬 수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은 살리고 재고를 줄이고 불필요한 자산매각 등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LG그룹의 사업계획에 진정한 응원을 보낸다. GM과 포드사 CEO들의 연봉 1달러 제안에 박수를 보낸다.

나 살자고 남 내몰고, 내 권력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사라지면 좋겠다. 내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옹색한 사고를 버리면 좋겠다. 작은 우리집들이 모두 피스하여 지구촌 큰 집이 평화만 스러우면 좋겠다, 정말로!

*그림은 우드힐 중학교 6학년 김유진양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