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Yoojin Kim (Woodhill 6th)

세밑과 덴파레

갸냘픈 꽃대에 매달린 하얀꽃이 애잔해 덴파레에게 말을 걸었다, 너 참 예쁘다. 우리집에 갈래? 화분을 두 팔에 안고 집 문턱을 넘어설 때는 ‘welcome to my home’이라 인사했고 눈길이 닿을 때마다 잘 자라주라~는 기원을 간곡히 한다. 덴파레란 이름의 양란은 섭씨18~27도 사이에서 가장 행복해 한다기에 가끔 먼발치서 적외선 난로볓도 쬐어준다. 밝은 햇살이 집안에 들 때는 창가 옆에 가져다 놓는다. 물을 너무 많이 주었는가, 흙을 만져보니 며칠째 축축해서 걱정이다. 물에 영양제도 섞어주었는데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겨울철에는 비료를 주지 말란다. 그래서 염려가 시작되었다.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나는 오늘도 속삭인다. 사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걸맞는 꽃은 포인세티아 쟎은가. 포인세티아는 한창 인기일테니 나는 덴파레를 사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아이 학교에서 연일 드라이브 안내문이 날아든다. 땡스기빙 때는 터키 드라이브, 통조림이나 야채 드라이브, 장난감 드라이브. 이제는 성탄시즌, 어제 받은 파자마 드라이브 쪽지를 시작으로 더 많은 이웃사랑 안내가 펼쳐질 것이다. 그 사랑에 적극 동참하면서 아이들이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나누는 큰 기쁨을 경험하고 세상에대해 다정한 사람으로 커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람들이 여러 축제일을 만들어 놓고 혼자만 즐거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여 다행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특별한 날에 더욱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컷 울었던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생각난다. 애인이 없던 나, 친구들 연애 행보에 혹처럼 끼어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조용히 보내리라, 결심하고 도서관에 갔다. 절대 모범생파도 아니고 대학 때 미팅을 하기도100번, 시켜주기도 100번 넘게 한 마당발이었지만 틈날 때 책읽기를 좋아하는 것도 나였다. 그래서 도서관은 갈 곳이 없어진 날의 내게 가장 친근한 장소였다. 그 날, 하필이면 김윤희씨의 수기소설 ‘잃어버린 너’란 책을 골랐다. 가슴 저미는 사랑 이야기였다. 책 뚜껑을 덮으며 그냥저냥 성탄전야를 뜻깊게 보냈다고 자위를 했다.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휴지와 흘끔거리며 내게 꽂히던 주위의 많은 시선들이 그건 진실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남들처럼 시험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좋은 날, 도서관에 쳐박혀 눈물콧물 쏟아내며 책을 읽는 여자라…… 그 날이 특별한 날만 아니었다면 이상할 것도 없는 모양새였으리라.

서울 사는 내 친구중에 지방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아이가 있었다. 연고자가 없는 그 곳으로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그 친구는 해가 쨍쨍한 날이 싫어졌다고 말했다. 남들이 즐겁고 흥겨워 하는 날, 자신은 더욱 외로움을 느낀다는 소리였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그 친구가 외롭지 않게 자주 전화도 걸고 편지와 학보를 열심히 보내주었다. 햇볕 쨍쨍한 날은 명절이나 성탄절에 비하면 극히 평범한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즈음은 외롭거나 추운 사람들에게 마음이 더 가는 시기인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란 같아서 널리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최근 충북 도지사 정우택씨가 익명으로 매달 월급을 쪼개어 500만원씩 어린이 재단에 기부해 온 것이 밝혀졌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어려운 여건의 학생을 도와주는 것이 사회에 보답하는 길이란 생각을 했단다. 요즘같은 때 한국사회에서 드물게 선행으로 매스컴에 이름이 오른 정치인이라 더욱 눈에 띈다. 또 영화배우 성룡씨가 자신의 총 자산인 2억위안, 우리 돈으로 4천억원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외아들이 있지만 능력이 있다면 재산이 필요하지 않고 능력이 없다면 재산을 탕진할 것이라 재산을 물려줄 수 없다.”

고 한 그의 말이 어떤 명언보다 감동적이며 값진 교훈으로 와 닿는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내 것, 내 자식만 귀히 여기는 세태에서 귀감이 되는 선행이다. 가난했지만 타인의 따스한 도움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던 성룡씨야말로 우리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이즈음 되새겨볼 만한 인물이다. 언제부턴가 몇 천만원 보증금의 셋집에 살면서 수십억대의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김장훈씨가 참 좋아졌다. 세상엔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살만하다! 날이 갈수록 그런 미덕이 진심으로 가슴에 와닿는 건 어제보다 오늘 더 너른 세상을 걸어가는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들어 묻지마 범행이 횡행천하하고 있다.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어진다. 불특정다수를 향한 그들의 분노는 무엇에서 연유했을까. 남편의 말대로 ‘개인의 문제같지만 알고보면 사회가 그들을 화나게 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들에겐 단 한가지 약 밖엔 없어 보인다. 사랑과 포용! 작은 사람들의 작은 나눔이 큰 평화와 행복을 이루어내리!

붉은 잎사귀 더더귀더더귀 달린 포인세티아 아닌, 외로운 듯 하얀 꽃대 하나 올라온 덴파레에 끌린 건 이 계절이 세밑을 품었기 때문일지도… 나의 한 해를 잘 마감하는 일, 어려운 일이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