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을 시작하며

제 바램

땅, 하늘을 서로 뒤집어 놓을 것처럼 바람이 붑니다. 발코니 앞 나무들이 무서운 기세로 잎새를 부비며 토해내는 소리가 창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가만, 가만, 이건 또 무슨 넋두리인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소리는 들리지만, 바람이 불면 더 잘 들리는 소리들이 있습니다. 꽃잎 소리, 파도 소리, 잎새 소리, 꽃잎 소리, 창공에 우뚝 선 깃발 소리, 꽃잎 소리… 내 마음에 꽃이 피었나? 내 안에 바람이 불고 꽃들이 몸을 부비나?

부비는 몸짓에서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수다는 어디에든 있고 그리고 때로 정겹습니다. 정겹지 않은 수다는 피해가렵니다. 제 작은 이야기가 예쁘게 피어나도록 두손 모으고 빌면서요……

혼자 간직해 온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제 안에 부는 바람이 거짓이 아니듯 제 이야기가 허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따스한 가슴 안에서요.

제 소개

제 이름은 김 연아입니다. 많이 들으셨다구요? 네~ 저도 압니당. 피겨의 요정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훨씬 더 그 이름을 오랫동안 사용했거던요.^^  그치만 혜택을 받는 건 제 쪽입니다. 요정 덕분에 오랜 지인들로부터 가끔씩 추억의 얼굴로 떠오르기도 하는 감사한 일 말이죠.

저희 가족은 9년 전, 조지아에 처음 둥지를 틀고 미국이란 나라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 전엔 발도 디뎌보지 않았던 땅이었으니 얼마나 낯설었겠습니까. 이후 남편의 공부가 끝나고 캘리포니아의 몬트레이란 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환상적인 곳이라서 저는 ‘999국’ 이라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을 충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천국에서 1이 모자라는 곳이라 하셨지요. 그리고 지금은 보스톤으로 더 유명한 메사츄세츠주에 살고 있습니다. 겨울이 참말로 길더구먼요. 7년만에 맞이하는, 진짜 겨울을 겪는 첫 해동안은 몸부림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맞는 매가 덜 아프더라고 이듬해의 겨울은 나수 고통이 덜 했습니다.

‘두번째 맞는 매가 덜 아프다!’

크크, 남편의 말입니다. 첫 프로포즈에서 리젝당하고 몇 년 뒤, 두번째 구애를 하면서 서두를 그리 꺼내던걸요. 아마도 또 거절 당할지 모른단 생각을 했던가 봅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첫번째 보다 더 당당해 보였습니다.

주근깨 소녀 첫째 딸은 열 한살. 둘째 딸, 말라깽이는 이제 다섯살이 되어 킨더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가끔씩 제 이야기 속에서 이 아이들을 만나보실 겁니다.

      제 이야기들

소설가의 꿈을 간직한 건 아마도 소녀시절이었을 거예요. 그치만 ‘무언가 내 안에 그득 차, 그것이 저절로 흘러나올 때’ 쓰고프단 소리를 버릇처럼 해왔었죠. 그렇다고 지금 그런 상황이 되었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그냥……, 인생은 마냥 기다린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혹은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을까요. 아무튼 어느 날인가부터 제 마음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심심해 방바닥을 긁으며 ‘학교’를 외쳐대던 작은 딸이 킨더에 가면서 저는 자유부인이 되었고 자유부인이니 바람이 날 수 밖에요. 네, 저는 바람났습니다.

지금껏 써 놓은 글들은 꽁꽁꽁 형태도 보이지 않는 곳에 박혀있더랬습니다. 그것들 역시 내 분신이건만 그동안 너무 소홀히 다루어 온 느낌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먼지를 털고 조금씩 정성들여 보살펴 주렵니다. 그렇게 햇볕을 보게 될 제 이야기들입니다. 주절주절이 마음에 있는 이야기도 풀어 보고, 상상속 인물에게 이 옷 저 옷을 입혀 보겠습니다. 바람났으니...

저의 이야기들이 여러분들께 작은 기쁨으로 남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히 중얼거려 보는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