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늘~

 

7. 나의 불타는 내 사랑 언제나

 

형인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건 내가 성토대회를 마치고 어색하게 전화를 끊은 지 다섯달째 되는 어느 날이었다. 2004년 12월, 그동안 나는 건강이 안 좋아지신 아버지 대신 오파상에 전념을 쏟고 있었다. 아버지는 일본 미쯔비시 상사로부터 모터와 드라이브를 수입해서 국내 업체에 납품하는 사업을 했다. 남 밑에서 일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내 적성에 맞았다. 기질이 맞으니 능률이 올랐고 아버지도 기뻐했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내게 전화를 한 형인은 만나자고 했다.

우리는 가끔 들르곤 했던 B카페에서 만났다. 실내에선 랩으로 유명한 가수 D의 새 앨범에 수록된 ‘나의, 불타는, 내 사랑, 언제나’가 흐르고 있었다.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형인과 나는 침묵 속에 있었다. 노래는 끝나는가 싶더니 처음부터 다시 돌아갔다. 참다못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

“응, 덕분에”

덕분? 뜨아한 마음으로 형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웃고 있었다. 가수 D는 순간 ‘너의 웃음소리, 그 놈 신음소리, 내 심장에 새된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지금 흐르는 이 곡… 내 거야.”

“… … .”

“너하고 싸운 날, 아니 우리의 첫날밤에 쓴 곡이야. 가사도 그렇고”

“그랬구나…, 진짜…… 축하해”

형인이 드디어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형인이 빈정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놈 신음소리라니… 그 때 상황과는 맞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 놈은 욕정을 참느라고 죽을 뻔 했을꺼야. 그래서 신음소리를 흘린거지…”

나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형인이 해명했다. 창작의 세계란… 나는 너른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오래된 연인은 화해를 했고 틈 날 때마다 그 잘난 강사새끼와는 비교도 안되게 형인이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려 나는 심신을 다해 부단히 노력했다. 우리는 그의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그는 내 옆에 누워 새로 떠오르는 악상이나 가사를 흥얼거리다가 악보에 옮겨 적거나 기분이 내키면 키보드로 연주했다. 어느날 그가 발라드 곡을 연주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를 위한 곡이야, 나의 하늘~”

그때는 그가 정말 하늘처럼 나를 세상의 전부로 여기는 줄 알았다.

 

형인의 음악은 사랑을 나눈 직후 자주 탄생되곤 했는데 새로운 쟝르로의 전환을 꾀할 때마다 새로운 체위를 고집하는 실험정신을 동반하기도 했다. R&;B, 댄스, 랩, 발라드, 힙합, 재즈, 뉴에이지, 소프트락, 퓨전 등을 망라하는 작곡계의 신예로 등극하면서 형인은 아파트를 늘려갔고 집 안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였다. 그 중 가장 애착을 가지고 들여놓은 것이, 먹거리를 중요시하는 그답게, 앤틱풍 오펠로식탁이었는데 음악관계자들을 포함해 집안을 들락거리는 모든 이들은 식탁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식탁 자체라기 보다 선택의 안목에 대해 예찬한 것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내 여자친구가 골라준거야.”

라고 대답하는 예의를 잊지 않았다.

 

8. behind story – my concept

 

그러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달랐다. 끊임없이 추구되는 다양한 장르와 악상에 대한 신비로움이 거론될 때마다 그 재능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만 남았다. 어찌보면 형인도 그렇게 믿고 있는 듯 했다. 핵심 모티프를 제공한 자의 숨은 공로가 계속 비하인드 스토리로 묻히자 나는 어느날 회의가 일었다. 중국 G사에서 새로 개발한 고성능 저가의 제품들로 인해 회사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처지에 놓이던 어느날의 깨달음이었다.

일정한 리듬이 동반되는 섹스가 음악처럼 다가와서인지 나는 자주 사랑행위가 끝나면 연장선상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모습은 볼만했다. 알몸인 체 엎드려 턱을 괴고 종아리를 공중에서 흔들며 가끔은 박자에 맞춰 두 발을 부딛치기도, 그러다 복숭아뼈를 다치기도 했다. 그날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멜로디와 리듬은 제각각이었는데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었기에 그 자리에서조차 똑같은 반복은 불가능했다. 형인은 나의 흥얼거림에서 놀라운 동기를 발견해 내고는 오선지에 그려넣는 작업을 시도했다. 물론 두마디도 채 않되는 짧은 모티프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는 놀랍도록 악상을 진행시켜 나갔다. 그의 재능은 충분히 인정받을만 했다. 하지만 특히 음악에 있어 모티프란 핵심이며 축이지 않은가. 그걸 제공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그가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심술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심통을 부리기 시작했다.

 

9. 고전(苦戰)

 

나는 일체의 모티프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본의아니게 회사의 고전이 지속되는 형편인지라 콧노래따위는 나오지도 않았다. 게다가 시간도 여의치 않아 형인과의 만남이 가뭄에 콩나듯 이어졌다. 그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잘나가는 여가수들과의 잦은 회동도 이유에 한 몫을 차지했다.

그 때 나는 중국 G사로부터 한국에서의 판매전담권을 따내려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공황을 타개하기위해선 일제품과 중국제품을 동시에 취급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수많은 경쟁사들의 치열한 로비공방전이 시작됐다. 이렇게까지 일이 치닫게 된 것은 중국G사의 선진도약을 위한 전략때문이었다. 그들은 수준이하의 가격하락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가격경쟁을 피할 수 있는 묘책으로서 전담권을 주는 정책을 채택했던 것이다. 음악과 창작의 세계와 한참 동떨어지기도 했지만 잘 나가는 형인의 나에 대한 무심함에 은근한 서운함과 심술이 일자 나는 일부러 자세한 이야기를 회피했다.

그런데 정말로 형인의 작곡세계에 고전이 일기 시작했다. 유명가수 A의 5집앨범에 참여중인 그는 마지막 두곡이 채워지지 않아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넘쳐나던 창작의욕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슬럼프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투덜댔다.  내 개념대로라면 당연한 결과였다. 핵심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기회에 형인에게 큰 깨달음이 있기를 바랬다. 내 모티프들이 바로 그의 음악의 근원이였음을 말이다. 보고싶으니 만나자는 그에게 나는 오래된 연인의 특권처럼, 바쁜 일 끝나면 그 때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도 만나기까지 한참동안 시간을 끌었다. 우연히 거리에서 유명 섹시 여가수와 함께 있는 그를 발견한 후 결심한 일이었다. ‘그들은 내 친구고 비지니스 파트너일 뿐이야.’란 그의 말이 진심으로만 여겨지지 않은 지는 한참 된 일이기도 했다. 정신의 순결을 상봉하는 그라서 육체따윈 아무렇게나 굴러가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나날이 윤을 내는 것 같았다.

 

10. 오래된 연인들의 위기

 

그런데 형인이 또 대박을 터뜨렸다. 막판에 작곡한 두 곡이 앨범의 타이틀곡과 서브타이틀곡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작업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들었지만 그 곡들이 날개를 달 줄은 생각도 못했다. 라틴풍의 타이틀 곡은 내가 듣기에도 센세이셔널했다. 나의 믿음은 커다란 붕괴를 맞이했다. 은근히 형인의 홀로서기란 불가능임을 기대했다고 할까. 그런데 그는 해내고 말았다.

“도대체 어디서 영감을 받은거야?”

어느날 나는 추궁하듯 물어봤다. 그 때 그는 아비게일이란 이름을 들먹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때 우연히 잡지책에서 본 친구야. 그 때 중학교 1학년이었지. 앳되고 상큼한 모습이 어찌나 신선하던지. 더군다나  어려운 환경에서 그렇게 밝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어.”

12년 전, 아비게일의 아버지는 멕시코 시티에서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가족들을 데리고 모하카라는 시골로 피신을 해야했다. 멕시코 시골에선 아직도 빈 땅에다 아무 건자재를 사용해 직접 내 집을 짓고 살 수 있다고 했다. 주로 멕시코 원주민들이 모여사는 그 곳에서 스페인 혈통을 가진 아비게일의 가족이 자연을 토대삼아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아비게일은 또래 원주민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며 농장일을 돕기도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 곳에 들른 한국 잡지기자의 눈에 띄어 기획중인 멕시코 특집의 여주인공으로 발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사연에다 농장에서 부모님을 도우며 살았던 소녀란 소리를 듣고 그래서?란 반문을 했을 때였다.

“슬럼프때문에 허덕일 때, 마침 아비게일로부터 편지를 받았어. 그 안엔 최근 찍은 사진이 동봉되어 있었는데 사진속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응시하자 갑자기 악상이 떠오르는 거야.”

“난 남의 몸이나 훑어대는 그런 품위없는 인간은 딱 질색이야.”

괜히 부풀어 오른 심통을 자제하지 못하고 그렇게 쏘아부쳤다. 분명히 뱉은 것은 말이었음에도 그에게로 튀어가 박힌 것은 자잘히 부서진 면도칼이나 되었던 듯 형인은 쓰라려했다.

“젠장, 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내가 힘들다는데 넌…… 위로는 커녕 만나주지도 않았잖아…”

형인이 폭발했다. 처음있는 일이었다. 오래된 연인들에게 위기가 닥친 순간이었다.

 

11. Chaotic(혼란, 혼동)

 

아마도 나는 형인으로부터 아비게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당시부터 그녀에 대해 질투심을 억누르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불필요한 발언으로 형인을 아프게 한 일도 평상심을 유지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형인의 뜻하지 않은 리액션을 보면서 나는 우리사이에 놓인 다리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있는 풍경의 퍼즐맞추기처럼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나는 그와 나 사이에 하나씩 조각을 끼워넣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업부진으로 인한 스트레스, 형인의 승승장구에 대한 부러움,  내 오만과 착각에 대한 현실, 난데 없이 등장한 아비게일… 머리속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12. 난항- in my life

 

형인과는 서로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갖기로 합의했다. 자숙하는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지만 나는 쉽사리 안정을 찾지 못했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중국 G사로부터는 최종 후보단에 올랐다는 보고를 받았다. 긴급대책팀의 팀장인 입장으로 각종 대책안을 수렴하고 기획하는 한편 일본 미쯔비시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연막전을 피워야 했다. 자연히 자금에 대한 압박이 생겨났다.  회사는 창립이래로 가장 많은 어음을 발행했고 내 마음은 비례적으로 벼랑 끝으로 몰려갔다. 아버지는 이번 사활을 전적으로 내게 맡기고 계셨기에 그 책임감에 대한 압박은 내 삶 여기저기서 분출되었다. 꿈에서는 항상 쫓겼으며, 소화불량으로 꺽꺽대기 일수였고, 나만 바라보는 듯한 다른 팀원들에게 히스테리의 화살이 날아가곤 했다.

하루는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 돌아온 아버지뻘 연배의 경리부장님한테 되먹지 않게 화를 내는 바람에 사내 분위기가 험악해진 적이 있었다. 무언가 변명을 할 듯 말 듯 하는 그의 태도에 더욱 화가 치밀어 ‘그렇게 물러터졌으니 은행돈 하나 못 끌어대지 않느냐’며 면박을 준 것이다.

그날 아버지한테 머리털이 쭈삣거리도록 혼이 나고 기분이 영 풀리지 않아 결국 형인에게 전화를 했다. 다짜고짜 술 사달라는 요구에 형인은 쉽사리 오케이라고 대답했다.

 

13. 형인의 초대

 

그날 저녁, 나는 형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계속 술을 들이켰다. 4년 전, 6개월의 방황 끝에 그를 찾아가 보인 내 눈물을 닦아주었었 듯 형인은 냅킨을 고이 접어 술방울이 흐르는 내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 때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고향같은 형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흐르는 음률을 경청했다. 오랜만에 평화가 나를 다독여 주니 가슴이 울컥거렸다. 그 때 형인이 말을 꺼냈다.

“그 멕시컨 펜팔친구를 초대했어… ”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랬냐는 대답을 대신했다. 형인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모처럼만의 평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서히 나에게 있어 ‘형인’이란 존재가치가 부풀어 올라 그 부력덕에 모든 잡념이 붕붕 날아가고 있었다.

 

14. More than expected (II)

 

나흘 전 오후 3시경, 은색의 키폰전화기가 울리자마자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은행에 간 경리부장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어음마감 건때문에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일주일 후까지 어음을 막지 못하면 말로만 듣던 부도라는 걸 맞게 된다. 25년간 아버지가 쌓아오신 탑을 한 순간에 말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스물네시간 겨자가루를 들이마신 것처럼 속을 매케하게 만들었다.

“나야”

형인이었다.

“지금 공항에서 막 아비게일을 픽업했어. 오늘 저녁에 볼래?”

“아니, 오늘은 곤란한데… ”

“그럼, 내일 볼까?”

“아무래도 지금 정하기는 무리일 것 같은데… 빠른 시간 안에 자리를 만들어 볼께. 미안.”

“…… “

“오랜 친구를 만나서 정말 반갑겠다. 성심껏 잘 해줘.”

“오케이”

“근데… 그 친구, 직접 본 첫인상은 어때?”

“more than expected!”

 

15. 별침(別寢)

 

모든 사생활을 접고 있다고 해서 공적인 일이 더 잘 진행되지는 않는다. 나는 형인과의 약속도 지키고 기분도 풀고 싶어 만날 건수를 만들었었다.

그치만 기분이 풀리긴 커녕 혼자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말로만 듣던 삼재가 끼었나? 푸닥거리라도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미쳤을즈음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자는줄 알았던 형인이 까만 눈동자를 껌벅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왜 안자고 나와 있어?”

“왜 들어와서 자지 않고?”

 “음, 악상이 떠올라서 … ”

“……”

형인은 다리를 번쩍 들어올린 반동을 이용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이 했던거야?”

“… 옛날 생각이 났어… 6개월만에 자기 자취집에 찾아 갔었던 그 때 생각…”

“새삼스럽게…… 그만 자자.”

형인은 악보를 정리해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내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누워!”

“자기는?”

“난 소파에서 잘께. 같이 누우면…… 참지 못할 것 같아서…”

“안 참으면 되잖아. 뭐가 문젠데?”

“너 소리지르잖아. 아비게일이 깰거야.”

“…… ”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들으면 어때,라고 하겠는가. 소리 안 지를게, 라고 하겠는가. 머릿속으로 아비게일을 떠올리며 내 몸을 파고드는 기만보담 차라리 나았다. 갑자기 힘이 빠져 서있기도 힘겨워진다. 나는 침대 위에 올라가 형인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누웠다. 형인은 잘 자,라는 짧은 인사를 마치고 방문을 닫으려다 다시 문을 빼꼼이 연다.

“나, 조만간 멕시코에 갈 거 같아.”

철걱, 방문 닫히는 소리를 기점으로 갑자기 4년 전 어느 순간이 오버랩되면서 내 몸은 막 가동된 환풍기에 매달린 노끈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 미국 가게 됐다… 그 잘난 강사새끼도 그렇게 말하고 떠나갔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