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디오스 I

따르릉, 소리가 시끄럽게 공기중을 돌아 다녔다. 눈을 떴을 때 흐흑하는 흐느낌이 날숨에 섞여 가슴에서 빠져 나갔다. 거실쪽에서 형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몇 시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뵙죠…”

전화가 끊기는가 싶더니 아비게일의 따다다 소리와 형인의 데데데 소리가 다시 뒤섞이기 시작한다. 나는 휘리릭 몸을 뒤집어 얼굴을 베개에 쳐박는다.  베개 끝을 들어올려 양쪽 귀를 틀어막는다. 오리털사이로 바람이 피융, 소리를 내며 빠져나간다.

“아직 자는 거야?”

어느새 형인이 들어와 있었다. 순간적으로 움찔했으나 나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지금 뭐해?”

“……”

 “그 사이 잠버릇이 이상해졌는걸…”

“……”

“선영, 나와서 좀 봐줄래?”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질투와 시기심에 휩싸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치부였다. 나는 형인의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리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투로 반문한다.

“뭘?”

“인터뷰할 옷을 고르는데 우리 둘이 생각이 달라서 말야. 아비게일이 네 의견을 듣고 싶대.”

‘우리 둘?’

“…… 먼저 나가있어. 곧 갈게.”

어금니를 악문 채 나는 겨우 그렇게 뱉어냈다. 베개에서 얼굴을 떼었을 때 축축한 기운이 뺨에서 귓가로 오소소 퍼졌다. 베개보에 그려진 해바라기가 물기를 머금어 진노랑이 되었다.

아비게일은 백자기같은 자태로 거실에 서 있었다. 하얀 실크천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런 드레이프가 군살없이 매끈한 그녀 몸매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어깨는 날카롭게 각이 지지도 그렇다고 쳐지지도 않은 여성미를 품고, 가슴은 봉긋한 놋사발에서 방금 굳힌 청포묵처럼 만질만질하면서도 찰지고 탱탱하게 솟아있다. 가슴선으로부터 차차 좁혀진 허리선은 22인치 정도나 될까. 허리 밑선에서 서서히 부풀기 시작한 히프는 어느지점에서 급격히 도드라지며 백자기의 완벽한 볼륨라인을 그려내고 있었다.

“뭐가 문젠데?”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균일한 억양으로 말을 뽑아내는데 안간힘을 썼다.

“그렇지? 이건 판타스 칙…… 그 자체지?”

형인은 사탕을 물고 있는 어린애같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하느라 판타스틱을 스칙으로 발음했다. 가슴 밑바닥에서 긴 한숨이 끓어 올랐다. 소파 위에서 황금빛 비즈가 다닥다닥 달린 원피스를 들어보이며 아비게일이 나를 향해 따다다다,거린다.

“whatever!”

나는 부엌쪽을 향하며 그렇게 뱉었다.

‘그걸 입는다고 너의 뭉개버리고 싶은 그 몸매가 가려지랴?’

“데데데데 데데데 … 자자, 시간없어. 빨리나가자. 차 막히면 끝장이야. 첫끝빨이 끝끝빨일 수 있거든…”

형인은 아비게일의 손목을 잡아끌며 현관을 향한다.

“우리 나간다. 회사 갈거지? 이따 연락할게.”

‘우리???’

“바이~”

아비게일의 ‘바이~’소리는 간지럼을 타듯 웃음으로 범벅되어 닫히는 문 뒤로 곧 사라졌다. 대신 우리, 우~리, 우~~리,하는 메아리소리는 꼬리가 잘린듯 문 안쪽에서 계속 아우성 쳐댔다.

17. 아디오스 II

샤워를 끝내고 막 욕실에서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에서 낯선 여자의 여보세요,소리가 낭창낭창하게 들려온다.

“여기 이민자 부동산인데요… 김형인씨 계신가요?”

“지금 없는데요……, 부동산이라니…… 무슨 일 때문에?……”

“오늘 약속때문에… 집을 매입하실 분께서 갑자기 시간을 변경했으면 하셔서요, 혹 김형인씨 핸드폰 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 ”

어느 순간, 뚜뚜뚜뚜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는 느낌이 심해 나는 수화기를 집어 던졌다. 집을 파는 형인, 멕시코에 가는 형인, 아디오스란 타이틀로 노래를 만드는 형인…, 곡이 완성되면 그가 말할 지 모른다.

‘너를 위한 곡이야, 아디오스!’

거실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모서리가 박살난 전화기에서 뚜뚜도 아닌 뚜~~~~~ 소리가 발악적으로 새어나오고 있다. 그 위에 걸린 65인치 벽걸이형 TV에서 어여쁜 여배우 리XX씨가 웃고 있다. 그녀가 진노랑 해바라기처럼 서글프게 웃고 있다.

[지난 새벽, 여배우 리XX씨가 지난 수년여동안 방송국을 견학하는 여행객들이 재미로 던지는 돌에 맞아 괴로워하다가 끝내 자택 화장실에서 압박붕대로 목을 메고 자살했습니다. 리XX씨는 지난밤 여러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한 후, 세상사람들이 왜 상관도 없는 자신한테 자꾸 돌을 던지는 지 모르겠다며 어머니한테 하소연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여배우 리씨의 몸이 크고 작은 멍자국 때문에 울긋불긋 했으며 간혹 뾰족한 돌은 박혀 있기도 했다고 …]

리XX씨가 죽었다…… 나는 납작하고 맨드르한 주걱으로 뺨을 세게 얻어 맞은 듯 귓볼이 얼얼해 왔다. 두 손으로 뺨을 감싸는데 아픔이 가시기는 커녕 손을 통과해 명치까지 퍼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18. 내 앉을 곳 없는 이 세상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걸어다녔고 머리꼭지가 따가와 정신을 차리니 공원 벤치 오른쪽 끝자리에 간당간당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그림자를 따라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다가 종국엔 구석으로 몰린 모양새가 되었나 보다. 벤치 위엔 더 이상 나무 그림자가 남아 있지 않았다. 자외선 알러지가 있는 내게 더 이상 앉을 곳이 없었다. 이상했다. 벤치는 아침의 것과 똑같은데 왜 지금은 앉지 못 할 곳처럼 여겨지는지…  아버지와 경리부장님과 함께 동분서주하며 은행을 돌아다니는 동안, 내가 느꼈던 세상이 꼭 이러했다. 내 앉을 곳 없는 이 세상……

느닷없이 머리 속에 여배우 리XX씨가 떠올랐다. 나는 연약한 베르테르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리XX씨는 선망했다. 형인의 빨간 십자마크가 새겨진 하얀 상자가 떠올랐다. 그 안에 두통약과 감기약… 그리고 압박붕대쯤 들어 있을 것이다. 벤치에서 벌떡 일어난다. 휘청, 눈 옆으로 별들이 반짝인다.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고개를 푹 숙인다. 햇볕 줄기 하나가 오른쪽 관자놀이를 통과해 왼쪽으로 빠져 나가는 것 같다.

 

 

19. 역지사지(易地思之:바꾸어 생각하기)

 

약상자 안에는 예상대로 압박붕대가 들어있었다. 나는 실패모양으로 감겨있는 붕대의 끝을 잡아 푼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멕시코와 한국은 지구상에 맞물려 서서히 돌아가고 있다. 지구가 도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요, 시간은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형인의 마음도 순리에 응한 뿐인 걸… 새삼스러울 것 없는 진리이므로 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다만 나는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울고 싶으면 울 수 있는 자유를 가졌을 뿐.

 

지구가 어지럽게 돈다. 또 하루가 갔으니 이틀 남은 셈이다. ‘이틀 후’란 미래의 정점은 지구가 두번의 자전으로 휘감으면 끌려와 오늘이 될 것이다. 그 날, 어쩌면 아버지가 25년 하고 137일동안 쌓아올렸던 탑이 한 순간에 사라질 지도 모른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이치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음은 없음이 존재함으로써 인식되는 명제이므로 있음과 없음은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상관관계를 가졌다. 내 마음에서 형인의 존재는 없었다가 있었듯이 형인의 마음에 내가 있다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역지사지하니 형인에 대한 증오가 사그라 진다.

 

19. 공존

붕대는 생각보다 길었다. 목을 두서너번 단단히 감고도 40센티정도는 남을 것 같다. 이걸 어디에 묶어야 할까, 욕실 사방을 둘러본다. 그 때였다. 현관이 열리고 듀엣의 따다다, 데데데 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이 있네, 선영, 선영~”

형인이 부른다. 나는 펼쳐진 붕대를 마구잡이로 구겨서 잽싸게 약상자 안에 넣고 뚜껑을 누른다. 허연 붕대가 삐죽 튀어나와 뚜껑이 닫히질 않는다.

“서오너엉~ 서오너엉~”

아비게일의 터무니없이 명랑한 발음과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며 점점 가까이 온다. 나는 그들이 들어오기 전에 나가는 것이 상책이란 생각에 팽창한 뻥튀기처럼 욕실문을 열고 밖으로 퉁겨나간다.

“와, 왔어?”

“으, 으응”

상기된 내 얼굴을 쳐다보는 형인의 볼이 불그레 했다. 아비게일은 한층 반짝이는 얼굴빛을 하고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이젠 대놓고 꽃다발까지…’

정말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나는 가방을 찾아 들고 마지막으로 형인을 쳐다보았다. 형인의 팔뚝에서 비닐봉지 두개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케잌하고 샴페인 사왔어, 먹을래?”

형인은 비닐 봉지를 내게 보이며 말했다. 그걸 지켜보던 아비게일이 살짝 눈을 흘기며 어깨로 형인을 툭 쳤다. 애교인지 교태인지 모를 몸짓이었다. 나는 형인이 내민 비닐봉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묻는다.

“언제 떠나?”

“한달 후쯤. 아비게일이 좀 안정되면... 다행히 오늘 A모델 에이전트하고 1년 계약이 성사됐어. 이 친구, 당분간 한국에서 지내는 건 문제 없을 거야."

“……”

“……”

“그럼…… 아비게일하고 같이 떠나는 거 아니야?”

“??…… 이 친구는 자리만 잡히면 여기서 살 생각인가 보던데… 나처럼 멋진 남자가 있으면 결혼도 하고 싶다나, 크크… 환차가 엄청나서 고국으로 돈을 부치면 부모님께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아주 신나하고 있어. 그리고…… 난 음악여행을 떠나는 거야. 멕시코를 거점으로 라틴의 감을 확실히 잡고 올까해서… 미안해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네가 너무 정신없어 보여서…”

나는 거실 통유리 밖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숨을 살살 들이킨다.

“그런데……그렇다면…… 집은 왜 팔았어?”

“그걸 어떻게……? 그, 그건…… 나중에 알게 될거야… 저기, 선영아…”

그때, 가방에서 라라랄라~ 하늘하늘~ 휴대폰 컬러링이 들려왔다. 김 형인 작사작곡의 내 주제곡, 나의 하늘~ 이었다.

 

“팀장님, 지금 어딥니까?...  경리부장입니다. 얼마나 연락을 했는지 알아요,대체?  휴우~… 일이 잘 마무리 됐습니다. 이번 어음건 뿐 아니라 은행빚이 반은 없어졌어요. 남자친구 한번 멋진 분 두셨습니다. 저번에 점심시간에 늦었다고 하도 화를 내시기에 말을 할까 말까 했지만 일이 잘 마무리될 때까지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신신 당부해서 이제사 말씀드리네요. 그 분 진짜 사나이던걸요…”

전화기의 폴더가 닫힘과 동시에 형인은 뒷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사각통을 꺼낸다. 갑자기 형인과 내 얼굴 위에 신기루들이 둥둥대기 시작한다.

“집도 없어지고, 빈털털이가 됐지만… 너만 죽도록 사랑할 자신은 있어… 우리 매일 아침마다 모닝키스하지 않을래?”

햇볕때문인지 신기루때문인지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나는 물끄러미 신기루 같은 빛을 퉁겨내는 투명한 보석을 응시하다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형인의 눈을 쳐다본다. 언젠가의 기억처럼 푸르스름한 흰자 위에 까맣고 부드러운 동공이 맑다.

“넌 참, 좋은 놈이야.”

나는 4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와 동일한 말을 하고 있었다. 형인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름이 스륵스륵 코 끝으로 몰리면서 자꾸 동공이 촉촉해졌다. 글쎄, 뭐랄까,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형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느낌이다.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은 있는가 보다, 어제 그의 몸에서 풍겨오던 냄새가 4년 전 그의 침대에서 맡았던 냄새와 같은 것처럼……

아비게일이 내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발칙한 그녀는 내 뺨에 어린 물기를 양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러 닦아주며 하얗고 투명한 이빨을 내보인체 자기도 훌쩍거렸다. 그녀의 손바닥이 스칠 때 내 뺨자위에 꺼칠한 느낌이 일었다. 부모님의 농장일을 돕느라 손이 꺼칠해진 아비게일... 갑자기 그녀는 발칙한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형인의 얼굴은 붉은 동자꽃처럼 수줍고, 발칙하지 않은 아비게일은 오뉴월 풋고추처럼 탱탱하고, 창밖에 펼쳐진 나의 하늘~, 미친듯이 찬란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