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가을이 왔노라 지절대주는 새는 없어도, 겨울이 온다하여 날개짓 멀리하는 새들 있으니 하늘이 높아 천고(天高)라, 말처럼 내가 살이쪄서 아비(我肥)의 계절이다!

산도 좋고 물도 좋은데 산과 물이 어우러지면 더욱 좋고

사시 푸른 소철이 좋은데 계절마다 모양 바꾸는 은단풍도 좋고

노랑잎, 갈색잎, 적색잎, 진홍빛 낙엽이 아름답다

좁은 길가에 촘촘히 들러붙은 색바랜 나뭇가지도 좋고

사방 탁트인 개벽천지같이 광활한 산정상도 좋다

흐드러진 낙엽이 우수수 내려앉은 그루터기도 좋고

아직은 옅고 짙은 색이 어우러진 설익은 복자기잎도 좋고

산 아래 집들이 아담하고 그 집 창문에서 고개 내미는 꼬맹이가 천진하고 집 뒤에 졸졸 흐르는 도랑이 시원하다

차 안을 흐르는 피아노 소곡이 맑은데

용이와 월선의 사랑의 테마를 연주하는 아쟁소리 가슴 저리고

앞 차는 뒷 차를, 뒷 사람들은 앞 분들을 배려하는 마음 따스하여

준비해 온 김밥, 딸기, 고구마를 나누는 인심 정겹다

잔디밭에 드러누운 연인이 사랑을 하고

음메~ 소리내는 젖소가 평안하다

우리는 산 안에 있어도 좋고

너른 들녘에 서서 누룩 핀 브록콜리같이 알록달록 펼쳐진 산자락을 바라보아도 좋고

November, Griffith같은 피아노 선율이 낙엽과 함께 길바닥을 뒹구니

영화속 붉은 수수밭과 테마음악이 빚어내는 조화가 생각난다.

맑고 풍요로운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