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신혼의 단꿈에 빠져 살아서일까, 새댁은 첫아이 임신 사실을 12주째 알게 되었다. 연신 하품을 하며 졸립단 말을 입버릇처럼 하게되고 쓰레기 냄새때문에 난생처음 헛구역질을 일으켰을 때, 별꼴이네, 튼튼한 비위 하나 복으로 타고 났거늘… 이라고 중얼거렸다. (밥먹을 때, 온갖 오물스러운 이야기가 오가도 끄떡없는 새댁…… 나름, 비법이 있다면 말을 그냥 단어로만 받아들이고 형태나 냄새따위를 애써 상상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기가 생긴 것 아닐까?” “내 와이프랑 증상이 같은걸, 임신이 틀림없어!” “밤에 이상한 짓하면 당연히 몸에 이상이 생기지, 테스트를 해봐!...” 등등 들려줄 이야기가 많아 탈이었다.

끝끝내 결혼해서 몸이 이상해졌단 말만 해대던 철없던 새댁은 어느날 사람들 말이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어안이 벙벙하였다. 신혼이 날아가버렸어! 멍한 눈빛으로 남편의, 역시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그의 이마를 부여안고 근심겨운 숨을 내뱉던 새댁. 그뿐인가?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시어머님 “난 아직 할머니되고 싶지 않은데…” 하시는데 그 말을 들은 새댁, 드라마 '엄뿔'에서‘미쎄스 문~’ 불러대는 고상한 장미희가 많은 걸 망가뜨려 놓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거나 나이 젊으신 시어머님께 몹쓸짓을 한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나이 지긋하신 친정 엄마께 하소연한다. “네 나이 서른 셋인데 젊지도 않은 나이에 어려움없이 첫 아기를 가진 것만해도 다행이지… 아무 걱정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뱃속의 아기 잘 보살펴라…” 하셔서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다.

신랑보다 여덟살 연상인 새댁. 다행히 정신연령은 엇비슷하여 둘이 주거니 받는 대화간 세대차이는 나지 않으나 스물다섯을 고비로 급격히 진행되는 피부노화에는 속수무책이라 외부인으로부터 신랑의 누님이니 이모님이니 하는 말을 듣는 수모는 면치 못하였다. 이런 상황일진데 그나마 잘룩한 허리와 빵빵한 히프가 이루어내는 S라인으로 밀고나갔던 바디자존심마저 망가진다면 그 모욕을 어찌 감당하랴… 새로운 고민이 솟았다. 뱃속에 자리잡은 어린 생명에 대한 삼고초려는 왠 얼어죽을… 삼초고려도 없이 바디실루엣 삼종세트를 구입하고 애지중지하던 현란한 장식벨트를 모두 수납장에 쑤셔넣고 대신 점점 부풀어가는 가슴에 포인트를 주기위한 펜던트나 브로치, 단추 두세개쯤 풀어젖힐 수 있는 앞트임 셔츠를 몇 벌 구입하고 그에 걸맞는 파리지엔느 패션을 떠올리며 단정한 매직스트레이트를 풀고 부시시 파마를 한다.

‘작게 낳아 크게 키우자’란 현자의 지혜를 흠모하며 평상시보다 다이어트에 힘을 주고 살아가던 어느날, 새댁은 모처럼 다니러 온 시댁의 부엌에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아니, 어머 얘, 이게 왠일이라니. 현중아, 아들~” 시어머니가 소리친다. 그 와중에도 아들~ 이라니, 몇 년전 방영했던 드라마에서 배우 이혜영이 만들어낸 유행어. 시어머니는 드라마를 당신의 생활에 너무 흡수하시며 사는 게 흠이었다. 아무튼 아들~ 소리가 거푸 이어지고 그 분의 아들과 따님과 남편이 동시에 뛰쳐들어왔다. “어머, 이 언니, 아니 올케 왜 이래?” 남동생의 와이프가 자신의 고등학교 6년 선배인 경우, 무엇보다 난처한 것은 알고보니 호칭이었다. 다행히 본과 1년차인 시누이는(대학을 졸업하고 제 길을 찾았다며 다시 의대에 입학했다) 응급처치법을 알았다. 눈꺼풀을 까뒤집어보고 가슴에 귀를 대어 심장박동을 확인하고 호흡곤란이 있는지 살피더니 방석을 가져와 머리와 어깨에 댄다. 그러는 와중에 “이게 다 뭐야?” 라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시어머님과 시아버님, 젊은 남편은 들추어진 셔츠 아래로 시선이 집중된다. 몸통을 덮은 수영복 형태의 거들과 허리를 강력하게 옥죄고 있는 스판텍스 복대. “어머머, 이 언니 아니 이 올케 미쳤나봐!!” 시누이는 찢다시피 복대를 걷어내고 남동생의 힘을 빌어 여성의 중요부위를 감싸고 있는 거들을 벗긴다. 정말 민망해 어쩔줄 몰라하시는 시아버님을 시어머님이 팔꿈치로 쳐서 막 내보냈을 때, 새댁의 S라인 바디에 남은 것이라곤 팬티 한장뿐이었다. 푸르르, 이스트로 부푼 밀가루 반죽을 젓가락으로 깊숙이 찔렀을 때처럼 누렇게 뜬 새댁의 얼굴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담요를 가져와 부엌바닥에 늘어져 있는 새댁의 몸을 꼼꼼히 가려준 시누이, 남편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친다. “이봐 어린 신랑, 너 나좀 봐!”

그 헤프닝이 벌어진 이후 시누이로부터 톡톡히 교육을 받은 젊은 남편은 틈이 생길 때마다 새댁의 겉 옷을 들추고 그 안을 확인한다. 시도때도 없이 삼겹살과 우유를 먹이고 자기는 입도 안 대는 컬리플라워나 아보카도, 건포도를 들이밀며 먹으라고 강요했다. 비싸게 주고 산 최고급 거들과 복대세트는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경건한 새 생명의 안녕을 위해 압수하겠다며 시누이가 가져갔다. 그런 환경이 그녀에게 헌사한 것은 다행히도 무럭무럭 커가는 배속의 아기와 두리뭉실 펑퍼짐해지는 몸통과 볼살이었다. 반면 시누이의 실루엣과 옷태는 나날이 폼이 나기 시작했다. 그다지 비관적인 성격이 아닌 새댁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기는 딱 하나만 낳고 열심히 운동해서 살빼면 되지 무어!’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새댁은 생전 처음 몸 속에서 무언가 자신의 몸과는 분리된 별도의 개체를 느꼈다. 태아, 작은 생명체의 용틀임, 시나브로 자란 다리가 어느새 엄마 자궁 속이 좁다하여 걷어차는 느낌!

‘내 몸에서 어린 생명이 진짜루 자라고 있어!’

새댁은 어리둥절한 감정이 곧 생명의 신비에대한 감동으로 바뀌는 자신을 보았고 그 감동이 소나기처럼 정신없이 쏟아져 온 몸을 적셔버리는 신비를 체험했다. 그날로부터 새댁은 사실상 방치하고 살던 태아에게 속죄하는 뜻으로 태교에 좋다하는 세상의 물질문화를 사려깊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태교음악이라 이름 붙여진 모짜르트와 슈베르트 클래식을 듣고, 남편 몰래 살짝살짝 버리던 우유를 기꺼이 마시고, 호두와 과일을 먹고, 숲을 찾아 산책을 하기도 하면서 끝없이 태아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갔다. 사람들은 그러한 그녀를 만날 때마다 말했다. “어찌된 일이야, 불노초라도 구했어? 10년은 젊어보이네.” “피부가 뽀얗게 피어뿐졌네!” “언니, 얼굴 이리 대봐, 혹 피부 필링한 거 아녀? 여드름 자국도 없어진 것 같구, 눈 밑 기미도 싹 벗겨진 것이 쬐까 수상혀?” 그런데 결정적으로 새댁의 몸에 엔돌핀을 볼케노처럼 뿜어대게 한 한마디가 있으니, “어머머, 신랑보다 어려보여요!” 새댁은 괜찮다는 이웃집 돌이 엄마를 끌고가 팥빙수랑 치즈무스를 사 대령하였다. 돌이 것도 ‘투고’하자고 따로 주문을 했다. 새댁은 생애 최대의 행복을 느끼며 전엔 눈가의 주름때문에 삼가했던 함박만한 웃음을 방긋방긋 뱉어댔다.

아기는 엄마의 뱃속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아홉달 2주를 채우도록 세상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루만 더 지나면 과태아라 명명될 위기에 처할뻔 한 아기는 분만 촉진제를 두 병이나 맞고 겨우 다음 세계로의 이동을 채비하였다. 이미 14시간동안 서서히 진통이 진행된 이후 7시간동안이나 막판 휴지기없는 진통이 이어지자 새댁은 ‘애기고 뭐고 다 필요없다, 제발 살려줘~’를 외쳐댔다. “거참, 나올랑 말랑 애기가 장난하자네. 머리꼭지는 진작에 보이는데 왜 진행이 안되는지…”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 한 남자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남자는 남편보다 더 상세하게 새댁의 몸뚱아리를 보아버린 사람이 되었다.

아기가 태어났다. 이마끝에서 머리 뒷꼭지까지의 길이가 20센티는 되어보였고 그것도 외계인 형상으로 뒤로 갈수록 서서히 좁혀지며 높이 솟아 있었다. 아기는 두 발을 붙잡고 거꾸로 세워 엉덩이를 쳐도 울지 않았다. “이 애기가 왜이래?” 한 본때없는 인턴 계집애가 그렇게 뱉으며 제 히스테리를 부려댔다. 새댁은 그에 대꾸조차 못했다. 말이 되려면 혀끝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너, 이 싸가지, 감히 내 아기한테…’ 그때 그 말을 못한 것이 새댁의 한이 되어 가끔 꿈을 꾸었다. ‘세상의 분진 한 톨 묻지 않은 천사에게 그리 막말을 하다니 당신은 천사의 적인 악마임에 틀림없소, 당신의 사악한 혀를 모든 천사로부터 100미터이상의 거리에 둘 것을 명하오!’ 새댁은 의사봉을 세 번 두드린 후 그녀의 꾀죄죄한 하얀 가운을 벗겨내도록 사제들에게 명했다. 아기를 보러갔다. 남편이 이름을 대자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유리창 건너편으로 다가왔다. 으악, 저 아기가 나의 천사? “아휴, 꼭 원숭이 같아!” 새댁은 진정한 모성애의 제어가 끼어들 틈없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2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