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3시간마다 한번씩 깨어 젖을 달라고 했다. 새댁은 세상에 이런 고통도 있구나… 잠을 못자게 한다는 추악한 고문담에 관해서는 책에서 읽은 바가 있었어도 실제를 상상하기는 힘들었던 그 당시를 추억하며 그리워했다. 밥 먹을 때도,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 줄 때도, 심지어 슈퍼마켓에 갔을 때는 진열대에 기대어 졸았다. 유방의 형태유지를 고려하자면 분유를 먹이는 것이 당연했지만 사무치게 돌아온 새댁의 지각있는 모성은 모유를 주라고 명령했다. 천사같은 아기에게 원숭이 같이 못생겼다는 말을 했던 죄를 십분 씻을 수 있는 구제책이었다. 아기의 식욕은 엄청났고 젖을 주는 산모는 살이 금방 빠진다는 말이 사실이었던가 보다, 새댁의 뽀얗고 통통했던 볼이 몇 달새 홀쭉해 졌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자 그에따라 비례적으로 느는 것이 있었는데 고것은 주름이었고 원했던 S라인 실루엣보다 훨씬 선행하여 돌아온 실체는 거뭇한 피부색과 거칠한 피부결이었다. 새댁은 어찌된 일인지 8년이 아니라 10년은 층지게 신랑보다 나이들어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을 깨부수고 싶었다. 혼자 속을 끓이던 새댁은, 아니 이젠 현지엄마라 불리우는 여인은 돌이 엄마를 제과점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녹차라떼를 대접하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생각을 떠보았다. 사려깊은 돌이엄마는 빙빙 말꼬리를 돌리며 직격탄을 피해갔다. 그리고 사려깊은 충고를 길게 던졌다. “이젠 현지가 있잖아요. 세상의 여인은 엄마가 되면서부터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는 거예요. 미(美)란 결코 절대적이지 않고 젊음은 양귀비,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지켜주지 않아요. 현지 아빠도 서서히 나이를 드실것 아니겠어요? 조금만 먼 훗날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차이쯤 아무것도 아닌게 될거예요.” 새댁은 동갑인 돌이엄마가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다. 뱃속에 돌이 동생을 가진 돌이엄마는 새댁보다 외양은 5년이 젊어보이고 정신세계는 10년쯤 성숙해 보였다. 그런 사람이 이웃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세상엔 그렇게 성숙하고 사려깊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현지엄마가 된 새댁을 만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 쪽은 세월을 뱉어내더구만 엄마쪽은 세월을 더 먹네.” “언니, 조심해야 겠다. 젊은 형부 바람나면 이를 워쩌” “여자는 남자보다 쉬늙기 마련이라는데 그리 나이층까지 져설라무네, 쯔쯧…” 새댁은 그들을, 돌아가신 할머니 표현을 빌자면, 멧돌에 갈아 마시고 싶었다.

새댁은 회상해 보았다. 현지가 뱃속에 있었을 때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남편보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언감생심 언제 또 들어볼까. 게다가 현지가 처음 뱃속에서 꿈틀거렸을 때 밀려오던 감회, 세상의 기득권을 꽉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남자란 족속이 결코 해내지 못하는 생명의 잉태를 주관하는 위대한 여성이라서 자랑스럽지 않았던가. 현지는 이제 백설공주보다 어여쁘게 무럭무럭 크고있다…

그 모든 것을 다시 손에 쥘수 있다, 아이를 또 갖는다면… 새댁은 상상만으로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출산의 고통, 잠에 대한 고문으로 돌아가실 것 같던 시절… 그것들이 지금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다. 새댁의 몸은 이제 S라인의 굴곡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현지가 뱃 속에 있었을 때 주었던 기쁨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 다음날, 새댁은 현지를 롯데월드에 데리고 가서 정신을 쏘옥 빼낸 후, 집 앞 놀이터에서 나머지 체력을 모두 소진시킨다음 오랜동안 따스한 물에 목욕을 시켰다. 아이는 욕조 안에서 곯아 떨어졌다. 그리고 큰 맘 먹고 산 빅토리아 시크릿표 란제리를 입고 푸석한 머리카락에 물스프레이를 뿌려대고 검붉은 루즈를 바르고 집 안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초에 불을 붙인 후 퇴근하는 남편을 맞이했다. 남편은 물론 그날 밤, 뿅 갔다.

둘째의 이름은 지현이었다. 뱃속에서 지현이는 세기의 축구선수가 태어날 양 무지막지하게 발길질을 해댔다. 새댁과 남편은 볼록볼록 튀어나오는 뱃살을 오랜동안 흡족하게 바라보곤 했다. 지현이는 총 5시간의 진통만 주고 벌떡 뛰쳐나왔고 엉덩이에 손대는 시늉을 하자마자 빵빠레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순간으로 매직은 풀려버렸다. 새댁에게 임신부로 있는 9개월동안은 매직에 걸린 순간 같았다. 피부는 뽀얗게 피고 머리숱이 많아지면서 윤기가 흘렀다. 지현이 때는 하물며 15년이나 적게 나이를 가늠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새댁은 지현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 기쁨으로 충만했던 추억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겨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지현이는 한번에 깊은 잠을 오랫동안 잤지만 밤과 낮이 거꾸로 된 아기였다. 새댁은 낮엔 현지와 놀아주고 밤엔 지현이에게 젖을 먹이느라 언제나 초죽음 상태였다. 새댁의 볼이 몹쓰게 패여 그간 있는지도 몰랐던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빛은 뽕맞은 듯 했으며 S라인바디는 허리살이 빠지지 않은 채 원체 빵빵했던 히프로 인해 A형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날, “당신 거야” 하며 젊은 남편이 인삼의 것인지 산삼의 것인지 뿌리가 그려진 초록색 천가방을 내밀었다. “당신 얼굴이 말이 아니야. 보약먹고 힘내!” 젊은 남편은 측은한 눈빛으로 새댁을 몇 초간 쳐다보더니 옷을 갈아입는다고 방으로 들어갔다. 새댁은 눈물을 글썽이며 가방에서 약봉지 하나를 꺼내어 쭉쭉 빨아먹었다.

며칠동안 복용한 약기운 때문이었을까, 새댁은 힘이 났고 다시 욕심이 생겼다. 아직은 기력도 있고 가능성도 있다. ‘둘’이 가장 힘든 숫자라 하지 않았던가. 자고로 형제 자매는 경쟁을 일삼는 관계로서 부모의 사랑을 놓고 질투하기 마련인데 그 숫자가 셋이상으로 늘면 관심사가 부모에서 형제간으로 돌려진다고 어떤 교육학자가 그랬더라… 새댁은 둘이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남편을 설득하느라 개인사에 없던 교육학 이론 서칭을 눈이 빨개지도록 한 후 침을 튀겼다. 더 나이들기 전에 다시 매직에 걸려보고 싶은 충동이야말로 두 아이로 인해 폭 삭아버린 자신에 대한 진정한 보상이 될 거라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진실로 여기면서 울면서 토로했다. “당신이 정 원한다면야…” 원체 착하고 너그러운 젊은 남편이 그렇게 져주자 새댁은 트램플린 위에서 점핑하 듯 아파트 방바닥에서 방방 뛰었다. 약기운 때문이었다. 4,5초 후에 아랫집에서 천장을 탕탕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셋째도 시도한 그 날로 생겼다. 새댁은 그 사실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난 아이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달란트를 가졌나봐!” 그런데 이번엔 문제가 생겼다. 먹고 싶은 것이 유달리 많아진 새댁이 다른 건 몰라도 음식에 대해서만은 남편을 들들 볶았다. 시와때도 가리지 않았다. 고약한 건 생각이 났다하면 먹지않고 못 배긴다는 점이었다. ‘이 꼭두새벽에?’ ‘그렇게 생긴 음식이 있었어?’ ‘돌아가신 할머니 손 맛을 무슨 수로 내…?’ 남편은 구할 수 없어 안타깝기도 하거니와, 세상을 8년 더 살았단 이유로 음식에 대해 그리 해박한 지식을 가진 아내가 놀라워 혀를 내둘렀다. 달이 더해가면서 남편의 황당함과 안타까움은 차차 진저리와 고통으로 변해갔다. 그로인해 남편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새겨졌다. 눈엔 다크써클이 생겼고 입가에 팔자주름도 패였다. 다음에 또 애를 갖자고만 해봐! 남편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반면 새댁은 하루가 다르게 팽팽해졌다. 사람들이 말했다. “이렇게 젊은 부인을 두신 것 보면 능력 있으신가 보네요” “너무 어린 분을 꼬셔서 결혼하신 것 아니예요?” 호호호, 새댁은 입을 가리고 다소곳하게 웃었고 그 말을 되새기면서 또 웃고 그러면서 하루 종일 웃고 산 덕에 에피네프린과 코티솔이 분비되지 않아 언제나 평안하고 감기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세월은 애타게 흐르고 8개월 10일만에 셋째가 나왔다. 그리고 1분 간격으로 네째도 나왔다. 30분만에 진통과 분만이 모두 끝나 버렸다. 두 아기는 좁은 산도를 금방 탈출한 덕인지 머리통이 동글동글 아주 예뻤다. 그런데 새댁은 매직에 걸린 기간이 훨씬 짧아져서 심통이 났다. 남들은 한 번에 하나씩 나오는데 왜 둘이 같이 나왔느냐며 눈도 뜨지 못하는 갓난쟁이들을 타박했다.

네 아이는 그렇저렇 잘 커주었다. 새댁은 아이들이 예뻐서 가끔씩 깨물어주었다. 셋째의 이름은 미지였고 네째는 지미였다. 쌍둥이들은 언니오빠에 비하면 너무도 양순했다. 삼칠일 지난 후부턴 밤중에 깨지도 않았으며 낮잠도 잤다하면 보통 3시간 스트레이트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느날 새댁은 두 아이 틈에 끼어 잠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댁은 빅토리아 시크릿표 란제리를 입고 검붉은 루즈를 칠하고 젖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남편을 향해 윙크를 날리고 있었다. 세번쯤 윙크를 날리고 혀 끝을 빼어 입술을 핥기 시작하던 새댁이 갑자기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으앙, 쌍동이들이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그럴수가… “ 새댁이 악악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자다가 달려온 현지와 지현이마저 덩달아 울기 시작한다. 남편은 이 사태를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 지 몰라 진땀을 뻘뻘 흘리다가 그만 자기도 훌쩍인다. 그러다 정신을 가다듬고 모두에게 묻는다. “근데 아빠 정관수술한 게 그렇게 슬픈 일이야?”

아이들은 아빠의 말을 아랑곳 않고 그냥 울어제꼈다. 엄마가 서럽게 우니 자신들도 슬플 뿐이었다. 현지와 지현이 엄마의 양 쪽 다리를 붙들고 울고 쌍동이들은 엄마의 양 팔에 안겨 울었다. 남편이 무릎으로 기어와 새댁의 허리에 팔을 감더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런데 새댁은 갑자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이상 매직에 걸리지 못 해 울지만 다른 식구들은 왜 울까?’ 새댁이 조용해지자 아이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새댁은 자신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남편과 상하좌우에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다시 울음이 삐져 나왔다. 아이들이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댁은 울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환희와 감격이 밀려들었다.

‘이렇게 나를 위해 울어주는 가족이 있는데 늙어보이는 것이 대수겠어? 매직이 가져다 준 진정한 선물은 금방 사그라지고 마는 젊음이 아니라 사랑이란 관계로 똘똘 뭉치는 가족이었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