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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새벽을 즐깁니다 (19금 주의) Yunah Kim (kyeonah) 2020-5-31  06:24:14


새벽을 즐깁니다 (19금 주의)

 

 


코로나 때문에 변한 세상에서, 감사하게도 극한의 상황에 처하지 않고, 일상을 누리는 당신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식탁 가득 서류와 컴퓨터를 펼쳐 놓고 재택 근무를 하거나, 돌밥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마당이니 먹고 돌아서면서 또 밥을 짓는 처지거나, 허구헌날 컴퓨터속 인공물과 싸우는 아들을 현실로 끌어내 실제 전투를 벌이거나내 가족이지만 24시간 함께 해야하는 고충을 감내하기위해 도를 닦거나그러다 정이 들거나또 어떤 특정한 사람들은 이러기도 한대요. 조코비치는 프라이팬으로 테니스연습을 하고, 조성진은 나홀로 콘서트를 열고, 정해진 시간에 각자의 발코니에서 이웃과 단체체조를 하고, 애완견이 노는 모습을 유튜브로 중계하며 스피치감을 유지하는 스포츠 아나운서, 맨바닥에서 수중발레를 하며 온라인상으로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는 수중발레단원

 

당신의 모습도 이 중 어딘가엔 있나요? 저는 돌밥체험자^^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어요. 락다운 이래 막내가 학교에 가지 않으니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어떨 땐 6, 운이 좋으면 740그 정도 시간엔 일어나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하신다면 제가 보통 취침을 새벽 2시경에 하거든요. 게다가 잠순이에요. 어쨌거나 8시엔 알람을 맞춰 놓지만 요즈음은 알람소리를 들으며 깨는 일은 없어요. 대신 다른 소리로 깨지요.

 

무슨 소리냐구요? 먼저 스무고개를 해볼까요? 매일 아침마다 윗집에서 소리를 들어요. 규칙적으로 경첩이 삐그덕대는 소리에요. 뭐 가끔은 빨라지기도 느려지기도 하구요. 아이가 뛰어다니니까 젊은 부부가 사는가 봐요. 눈치가 빠른 분은 이미 아실 듯…~~ 이사 초기엔 주로 주말에 소리를 들었어요. 그땐 낙수소리라고 여겼죠. .... 윗집 수도꼭지에서 욕조바닥으로 물이 떨어지는 상상을 하면서요. 윗집은 낮에는 사람이 없는 게 확실했어요. 조용하다가 오후 630분경 발소리가 시작되거든요. 락다운이 시작된 이래 낮에 늘상 아이가 뛰어다니고 있으니 둘 다든 한쪽이든 이웃은 집에 머무나 봐요. 그래서 아침에 시간적 여유가 생긴 탓일까요? 이젠 매일 들려요.

 

처음 그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요, 정말이지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몰랐어요. 타인의 매우 사적인 생활을 엿듣는 당혹감이란 정말 당해보지 않은 분은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내가 듣는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보이지도 않는데 혼자서 느끼는 그 수치스런 민망함이란둘째날에는 구체적인 상상을 붙들어 매느라 진땀이 났고요, 셋째날에는 제발 듣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왔지요. 며칠 동안 정말 그 소리를 듣고 깨는 일이 트라우마처럼 싫었고 아침이 불편하고 불안하기까지 했어요. 귀를 막기도 하고 할 수 없이 음악을 크게 틀기도 하고정말 코로나도 미운데 이 목조아파트는 더 밉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죠. 그래도요, 시간은 정말 익숙함을 선사하더군요. 윗집사람들의 익숙함처럼 제게도 익숙함이 찾아왔어요. 그들은 한동안 출근 준비하던 시간을 영락없이 맞추더니 점점 시간이 느슨해 지더라구요. 익숙해지는 거죠. 저는 이제 안절부절 하지 않고 으레 그러려니 소리를 들어요. 젊고 금술 좋은 부부의 일상에 태클을 걸 의도가 전혀 없기에, 사실 그들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빌어먹을 아파트가 문제죠, 제 문제는 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요, 이제는 깜짝 놀라면서 깨진 않아요. 운이 좋으면 다 지나도록 잠을 잘 때도 있고요. 어쨌거나 덕분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좋은 습관이 생겼어요. 다만 윗집에 바람이 있다면 날이 갈수록 심하게 삐거덕 대는 침대 프레임을 바꾸거나 나사라도 좀 조여주었으면

 

어느 하루, 그 날이 생각나네요. 소리 때문에 깨진 않았지만 곧 들릴 시간이라 서둘러 밖으로 나왔어요. 막 떠오른 말간 햇살이 프리지아 꽃잎처럼 연하고 부드러웠지요. 게다가 살랑살랑 바람은 어찌나 살갑던지요한 시간동안 동네 호숫가를 천천히 돌았어요. 호숫가는 아시잖아요, 그림 같고 평화롭고 멋스럽고 때론 경이롭고게다가 새벽에 산책 나온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주로 노인분들과 굿모닝이란 인사를 거듭 나누면서 저도 모르게 실실 웃고 다녔나봐요. 집으로 돌아올 땐 입꼬리가 스리슬쩍 올라가 있더라구요. 참고로 우리 동네에선 중장년 층과 젊은 층이 다른 문화를 살아가요. 누군가와 마주칠 때 ‘Hi’를 말하고 살아온 세대는 이제 저물고 있지요. 제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문화인데이른 새벽에 산책을 하니까 이 멋진 문화를 만끽할 수 있더라구요(노인이 많아서요^^). 아이가 마구 점프하고 뛰댕겨도 주의를 주는 기색이 없고 새벽엔 불쾌한 소리로 수면을 방해받고오피스에 컴플레인을 할까, 막대기로 천장을 쳐볼까, 이런저런 충동을 참아내던 나날이었는데 참길 잘 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 건 그 때문이었을 거예요. 새벽산책을 선사해 준 것이 그들이거든요. ! 산다는 건 뭘까요. 오늘을 지내면서 뭐 하나라도 작은 기쁨을 발견해 위안 삼고 서로서로 이해로 타인도 나도 행복해지는 시간꼭 거창해야만 할까요? 꼭 이익과 손해를 따지며 싸워야 하나요? 사는 데 중요한 건 뭐니뭐니 해도 행복인걸요, 나도 남도 말이죠. 윗집의 작은 행복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반, 내 안락함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 반의 갈등이 하늘을 찔렀는데 그 날 이후부터 잘 참아내며 새벽을 즐깁니다^^ 코로나로 인한 이 사태도 곧 끝이 나겠죠 뭐




덧붙임) 요즈음 미국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자꾸 일어나네요. 잠시 눈을 돌려 하늘을 봅니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생각과 판단이란 걸 잘 하며 살아가야하는 지 다시한번 그 중요성을 깨닫게 만드네요. 모두 잘 견뎌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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