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보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안을위해 재로그인해주십시오.

연아의 이야기

아버지와 남편 Yunah Kim (kyeonah) 2020-11-1  07:43:08


아버지와 남편



 

 

거울 속 내 모습이 약간 충격적이다. 피부는 칙칙하고 눈밑은 푹 꺼졌고 부기가 양 턱선을 향해 흘러 뺨근육이 팔자를 그리고 있다. 마른 세수를 하는데 까슬, 버석, 우툴두툴, 난리다. 하기야, 내가 한달 반 정도 잘 안 씻고 살았지어떨 땐 세수를 하루에 한 번도 안 하거나 물 칠만 하기도 했다. 나로서는 드문 일이다. 나는 매우 잘 씻는 사람이므로3년 후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괜찮다, 아니 5년쯤 더 늙어 보여도 괜찮다. 우리 아버지한테 다리에 힘이 생겨 걸으실 수 있게만 된다면, 방광의 마비가 풀려 소변을 자유롭게 보실 수 있다면 난 내 목숨을 10년쯤 바꿔드릴 수도 있다. 늙어 보이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다. 못 걷거나 용변을 못 보는 불편에 비하면 그냥 자연스러운 삶이다. 진짜 우습지만 처음 아버지 소식을 접했을 때 심청을 떠올렸다. 심청은 나보다 훨씬 효녀이고 내겐 남편과 딸들, 그리고 엄마도 있으므로, 목숨을 내놓진 못 하겠지만 심청이 어떤 심정으로 그랬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애교도 없고 말수도 많지 않고 바른말도 잘 해대서 재미없는 딸이다. 다만 살면서 부모님께 불효했다는 마음의 빚 없고, 친정집 가풍대로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마음을 다해 부모님의 행복을 빌어 온 자취엔 일말의 가책이 없다. 정평난 효녀도, 늦게 철이 든 불효녀도 아니지만 자식이란 본디 이런 존재인가 보다. 나는 불현듯 내 생명의 원천이 아버지였음을 느끼면서 아버지와 매우 단단하게 묶인, 주신 생명을 10년쯤은 되돌려 드릴 수 있는 사이임을 강하게 인식했다. 평시엔 낙관적이고 좋은 생각을 하는 편인데, 이번엔 달랐다. 허리쪽 척수가 손상되어 하체마비를 일으키는 병, 척수경색아버지가 이대로 거동을 못하시게 된다면 멀쩡한 뇌로 얼마나 불행을 느끼실까, 란 불온한 상상이 꼬리를 물고 낙담이 되어서 잠을 잘 못 이뤘다. 까무룩 든 잠에서 심장이 눌려 깨어났으며, 온갖 정보와 논문을 찾아 읽느라 컴퓨터를 끼고 살았다. 누구라도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연락해 질문을 퍼부어 댔으며 어떻게 치료를 해야 최선이 될 것인지를 궁리하느라 씻고 먹는 것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눈물이 자꾸 흘렀다. 하나님께 기도하느라 두 손을 시도때도 없이 모았다. 한국에 가야겠다는 충동과 14일 동안 자가격리 해야 하는 현실적인 갈등이 부싯돌처럼 부딪혀 가슴이 타들어 갔다. 하나뿐인 남동생 가족과 남편과 엄마가 똘똘 뭉쳐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버지 곁에서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안타까움에 하루가 며칠 같이 느껴졌다. 큰아이의 대학원 합격소식을 들었지만 무감각했다. 내 촉수는 오로지 아버지에게만 향해 있는 모양이었다. 동생은 직장에 매인 몸이라 평일엔 시간 조절이 가능한 남편이 수고를 많이 했다. 입원실에서 기거하며 아버지 수발을 들고 목욕을 시키고 재활을 도왔다. 난 남편에게 진심으로 수고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수고라고 생각하지 않아, 라고, 나는 남편의 진실된 눈빛을 봤다. 그 눈빛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던지남편이 나랑 진배없이 가슴으로 아버지를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소화기로 분사된 듯 내 속의 사나운 불길이 잡혔다. 비로소 평정심이 돌아왔다.

 

그래, 엄밀히 따지면 남편과 아버지는 나로 인해 맺어졌지만 나로 인해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었다. 언젠가 남편과 아버지가 여행지에서 셀카로 찍은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주었는데 친구는 장서간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는 흘리듯이 말을 들었다. 그런데 실은 깊은 의미가 들어있는 느낌이요, 평가였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자신과 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여러 말을 했다. 김포아버지와 난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야, 라던가, 김포부모님이 인간적으로 좋고 편해, 라던가, 장인어른 유머 코드가 나랑 맞거든, 이라던가

남편은 한국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별일 없는 한 2주에 한번 내 친정을 찾았다. 내가 부탁한 적 없고, 남편의 일상은 남편의 의지대로 돌아가고 있으므로 그런가 부다 할 뿐이었다. 우리는 일주에 세 번씩 만나지만 특별히 친정 다녀온 후일담을 보고하듯 전하지도 않았다. 즉 남편은 나와 상관없이 시부모님이나 친구를 만나듯 내 부모님을 찾은 것이다. 남편은 2주에 한번씩 아버지가 좋아하는 샤브샤브를 먹으러 다녔다고 했다.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되신 아버지때문에 나 만큼이나 충격에 휩싸였을 때도 남편은 샤브샤브를 언급했다. “며칠 전만해도 아버지랑 샤브샤브 먹으러 갔다 왔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지??” 우리는 그때 동시에 부모님 살아 계실 적이라는 의미에 대해 득도하듯 깨우쳤다. 아버지는 늘 시부모님 살아 계실 적에 잘 해드리라는 덕담을 건네셨지... 나는 남편이 동지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사위와 장서간을 넘어 친자처럼, 사랑과 우정을 쌓은 아버지. 남들은 자식 생각해 이혼을 꺼릴 때 나는 아버지 때문에 남편과 헤어지는 일이 불가하리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재산이나 명예 보다 더 훌륭한 삶에 가치를 보여준 아버지거기에 화답하는 남편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다 보면 그 사이에 많은 감정이 생겼다 사그라들기도 한다. 그때마다 늘 잊지 않고 진심으로 대하다 보면 인연은 두터운 동아줄로 사람과 사람을 꽁꽁 묶는다. 지금 이순간, 나는 두 남자의 사소한 단점을 잊는다. 아름다운 인연을 동여맨 그들의 커다랗고 정겹고 그지없이 고맙고 멋진 관계를 기억할 뿐이다.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