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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같은 출산 다른 삶-미국 산부인과에서 겪었던 불편한 진실 Yunah Kim (kyeonah) 2020-12-16  08:02:57



같은 출산 다른 삶 미국 산부인과에서 겪었던 불편한 진실

 

 

일생일대의 획기적이고 날것에다 만감이 뒤섞이는 신비의 극치였던 첫 임신과 출산을 마친 모든 모태 앞엔 두 갈래 선택길이 놓일 것이다. 둘째를 가지느냐 마느냐. 언제부턴가 자녀출산은 선택의 명제가 되었다. 이때 모성의 선택은 첫아기 경험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드물지만 설사복통 정도의 레벨로 순산을 한 복 많은 여인은 쉽사리 둘째에 대한 열망을 꿈꿀 수 있겠고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난산을 했거나 임신중독증에 걸려 내내 고생했거나 안타깝게도 선천적장애아를 배태한 경우, 둘째 임신을 쉽사리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성격에 따라서도 망각의 은혜를 잘 입는 사람과 나무에 새김질한 듯 진통을 뚜렷이 기억하는 사람도 다음 출산에 대한 마음 가짐이 다르고, 소중한 아기가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는 경우와 응급실이나 입원실을 제 집 드나들 듯해야 했던 경우도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애초에 자녀 계획을 하나만,으로 정한 경우도 있지만 첫출산 후 변경하여 한 자녀만 키우게 된 가정은 이런 메커니즘이 작용했으리라.

 

아기 두상이 너무 커서 막판 휴지기 없는 진통을 장시간 했던 나 같은 사람은 분만을 공포수준의 이미지로 갖게 된다. 아기 머리가 얼마나 컸냐면 완전 외계인 형상이었다. 두상이 길고 위쪽으로 뾰족하게 모인 영화 속 외계인의 탄생이 이런 신생아 모습에서 기인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뾰족한 부분은 그러니까 머리가 보이는데 쉽사리 진행이 안 됐던 증거인 셈이다. 나는 정말 오랜 동안 큰애 두상에 관한 말을 들었다. 잊히지 않는 장면도 있는데 두 살 때인가, 한 초등생 남아가 제 어머니를 막 부르면서 엄마, 쟤 머리가 앞에서 뒤까지 이만해라며 손과 손을 멀찍이 떨어뜨렸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신기했으면그런데 남들은 겉모습만 보며 신기해 할 때 나는 그 속에 든 분만의 고통이 늘 함께 보여 문제였다. 원래 겁도 엄살도 별로 없는 편인데 그때의 트라우마^^가 머리에서 쉬 떠나지 않아 둘째를 가질 엄두를 오랫동안 내지 못했다.

 

그러다 드디어 망각의 시간이 도래했고 2년여간의 노력 끝에 포기를 하자 둘째가 찾아왔다. 큰아이는 절로 찾아와 임신이 그토록 큰 선물임을 둘째 때 깨달았는데 그래서 모든 것이 더 감사하고 은혜롭고 더 곰곰이 생명에 대한 신비와 경이로움을 음미했다. 입덧이 정말 징글징글해서 이웃이 그때 넌 사라진 듯 했어란 농담을 건넬 만큼 8개월까지 외출도 힘들었고 하도 헛구역질을 해서 입가에 팔자주름이 패였어도 내 행복은 오롯하고 충만했다. 어렵게 얻은 것의 귀함을 고요히 깨닫는 시간이었지의료수가가 비싼 미국에서 우리가 살던 조지아에는(다른 주도 있을 거라 짐작한다) 일정 금액으로 정기검진부터 분만까지 보장받는 플랜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저렴이 미국병원의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다니기 시작한 산부인과에는 다섯 명의 의사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내 담당의사가 되었다. 예정일은 있지만 불확실한 분만일을 대비하기 위해, 그들은 당직을 정해 분만을 담당하므로, 다섯 명의 의사를 다 만나봐야 한다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러므로 늘 다음 예약은 새로운 의사가 출근하는 날짜 중에 선택을 했다. 다섯 명을 다 만난 후에 비로소 한 의사에게 진찰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항상 초음파로 아기의 상태를 점검했는데 그곳에서는 소변검사와 배의 사이즈를 줄자로 재서 기록한 것만 생각난다. 물론 한두 번 초음파를 본 기억도 있긴 하다.

 

여의사 하나, 남자의사 넷 중에는 좋은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간호사 동반없이 단독으로 의사를 보는 시스템이었고 세 번째 까지는 좋은 의사를 만났다. 물론 그 중에서도 선호하게 되는 의사는 있지만 그래도 임무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네 번째 의사는 너무나 능글맞고 성추행 수준의 진단을 했다. 겉으로는 그 의사만큼 친절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계속 머리속에 과연 그 유일무이했던 진단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생겼고 찜찜해서 이후로 바쁜 남편에게 부탁을 해 정기검진을 같이 갔다. 물론 극단적이라면 모를 리 없지만 묘한 수준이었다. 나는 나중에 딸들이 임신을 하면 꼭 엄마 경험을 얘기해 줄 것이다. 신뢰할 수 있기까지 반드시 남편과 병원에 동반하도록 권할 것이다. 이런 일은 당한 사람이 창피한 게 아니며 우리의 인식은 이런 패러다임을 굳건히 해야 한다. 그때 결코 창피하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내 하나의 일로만 간주하고 피하는데 그쳤으며 잠자코 있었던 것은 큰 잘못이었다. 부당한 일에 맞서는 참다운 용기는 정의의 발현이고 누군가의 범죄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은 타인을 위한 깊고 융숭한 사랑이다. 우리는 가끔 그런 희생자에게 무모한 돌팔매질을 한다. 눈을 떠야 하리라. 그 의사는 아마도 나처럼 미국인이 아니고 영어도 불완전하여 어리숙하고 만만해 보이는 환자에게 같은 일을 자행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내가 침묵함으로써 그 범죄에 경고등을 켜지 못했던 과오가 지금 이 글을 쓰게 만든다. 이런 일도 경각심을 가지면 방지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고 제 글이 딸을 두신 어머님이나 임신을 앞둔 여인들께 따뜻한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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