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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미국에서 하면 안 되는 원 탑의 행동 (2) Yunah Kim (kyeonah) 2021-3-30  07:41:19



미국에서 하면 안 되는 원 탑의 행동 (2)

 

 


미국에서는 타인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 친근감의 표시로 머리를 쓰다듬거나 동료의 팔을 툭툭 치면서 웃어도 실례란다. 아이가 귀여워서 엉덩이를 두드리거나, 뽀뽀를 하면 바로 성추행이다. 포옹을 하거나 얼굴을 맞대고 뺨에 입술도 대는 그들의 인사법을 떠올리면 개방되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규정된 선 밖에서는 오히려 더 엄격해지니 우리로서는 대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기시되는지 혼란스럽다. 곰곰이 분석해보면 모든 것의 기준은 동의. 프라이버시가 엄중한 사회인만큼 타인의 모든 영역에 들어설 때는 내가 아니라 타인이 허용하고 포용하는 범위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듯 하다.


미국에서는 반드시 personal space를 존중해야 한다. 줄을 설 때 앞 사람과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신체접촉은 매우 실례이고 무례다. 그래서 서로 부딪치면 바로 사과한다. 만원버스와 지옥철에서 켜켜이 눌러 담은 김치처럼 포개지는 경우를 경험하며 사는 한국사람들은 길 가다 부딪쳤을 때 별일 아닌 듯 그냥 간다. 사과를 하면 무신 사과까지? 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참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면 당신은 미국정서다.


미국에서는 고맙다미안하다를 말해야 할 때 꼭 해야 좋은 예절이 된다. 나는 아무 말 안 했는데 상대가 You’re welcome!을 외친다면 고맙다는 말을 안 한 경우다. 이런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도 바른 예의는 아니지만 고마움은 잘 표현해야 한다는 사고가 엿보인다. 반면 한국에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면 서운해 하는 경우도 있다. 친구 사이에, 우리 사이에 하면서대놓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미안할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입을 다무는 사람도 있다. 너무 당연한 듯 여기지 말고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적재적소에 잘 하는 문화가 한국에 정착되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과잉 친절을 베풀어도 곤란하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꾸역꾸역 해주는 마음은 한국의 미풍이지만 독립적인 상태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남의 도움을 꼭 고맙게 여기지만은 않는다. 그래서 노인분들을 도울 때도 허락을 받는 것이 좋다.


미국에서는 새치기를 하면 안 된다. 물론 한국에서도 경우에 어긋난 행동이지만 좋은 게 좋다고 눈감아 주거나 애교로 봐주는 경우도 있다. 허나 미국에선 절대 삼가할 행동이다. 미국인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고 새치기는 남의 차례를 빼앗는 극히 몰상식한 행동이 된다.


새치기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울 세식구가 홀푸드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자 음식과 음료수를 샀는데 계산을 하려니 기다리는 줄이 길게 두 줄로 나뉘어 있었다(워싱턴 시내의 좁은 곳). 우리는 이야기하기 편하게 양쪽에 나누어 섰고 상품도 조금씩 나누어 들었다. 열 개? 정도의 계산대가 있었고 벨이 울리면 왼쪽, 오른쪽 줄에서 번갈아 계산대로 향했다. 막내의 순서가 먼저 왔고 나는 들고 있던 것을 남편에게 주어 막내를 뒤쫓아 가게 했다. 그러자 뒷사람이 순서를 안 지킨다고 비난했다. 우리는 한 가족이고 지갑을 남편만 가지고 있어서 같이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으나 그와 다른 옆 사람은 비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나로서는 이상했다. 우리가 한 계산대로 가면 바로 다음 차례에 자신들이 계산할 수 있으니 더 효율적이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들이 얼마나 차례 지키기에 민감하면 이것저것 안 따지고 무조건 순서를 지키라고 하는지다음부터는 먼저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울 동네 아미쉬 마켓에서 인기 최고인 치킨을 사려면 요즘은 앞사람과 1미터 간격을 두므로 마트 안을 한바퀴 빙 돌도록 줄을 서는 경우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조금식 전진해 베이커리를 지나고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고 가구점을 지나고 마트 내 식당 앞에 서있을 때였다. 식당입구엔 들고나는 손님들이 있어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거리를 더 두었다. 그런데 맞은 편 육류코너에서 어떤 소녀가 후드티를 뒤집어 쓴 뒷머리를 디밀며 앞사람 뒤에 슬그머니 섰다. 그 아이가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다가가 앞사람을 가리키며 내가 뒷 순서라고 조용히 말했다. 앞사람이 자진해서 확인을 해주자 소녀는 오케이,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런데 갑자기 소녀의 아버지가 나타나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소녀는 내가 다른 곳을 구경하고 있었고 그래서 자기가 내 앞사람 뒤에 줄을 선 거라고 말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큰 목소리로 그럼 그건 네 차례 맞다면서 경찰을 불러야 겠다는 등, 저 사람이 잘못했다는 등그리고 소녀한테 너는 정당하다고 신처럼 선고를 내렸다. 남자는 자신의 딸과 함께 당당히 내 앞에 섰다. 나는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지만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성격은 아니다. 강짜를 부리고 있는 큰 남자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내 논리를 말했을 지도 모르겠다. 뒤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라고, 나는 분명 줄을 따라가고 있었고 식당입구에서 다른 사람을 막지 않기 위해 물러서 있었던 것 뿐이라고그리고 앞 뒤 사람에게 확인을 시켜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이상하게 소녀 앞에서 그 아버지의 초라함을 더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다. 몰라서 강짜를 부리는 건 아닐 것이다. 나라면 훗날 그런 아버지가 너무 부끄럽게 뇌리에 박힐 거 같았다. 소녀와 아버지어렸을 때 난 울 아버지의 동료가 아버지도 안 계신 자리에서 법 없이 살 분이란 소리를 했을 때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이후부터 울 아버지는 법 없이 살 분이라는 믿음이 가슴 속에 단단히 박혔지. 그들은 알까. 아버지는 그런 존재여야 함을나는 소녀도 그 아버지도 측은해서, 그런 마음 때문에 침묵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이런 생각을 했다. 소녀는 내가 아시안임을 처음부터 인지했다. 물론 나는 그들이 흑인 부녀임을 인식하고 있다. 어쩌면 그 소녀는 아시안 여인 앞에서는 새치기가 쉽겠다고 생각했을 지 모르고 결국 확인을 한 셈일지 모른다. 그렇담 나는 흑인들은 강짜를 부리고 새치기를 참 잘해,라는 결론을 가져야 하는 걸까. 미국에서는 모르는 타인을 그냥 어떤 사람이라 칭하지 않고 피부색을 구분해 말하곤 한다. 두서너 번의 나쁜 경험이 쌓이면 같은 인종을 피부색처럼 하나의 빛깔로 묶어버린다. 이런 선입견이 생기면 이후 어마어마한 모순과 비극이 탄생한다 (우리는 요즈음 뉴스에서 소식을 많이 접하고 있다). 유전자를 주고받은 가족과도 성격과 가치관이 다를진데 어떻게 한 인종의 사람이 몽땅 하나의 바운더리로 묶일 수 있는가. 사람을 인종으로 구분해서 선입견을 탕탕 박아 인식하고 나쁘게 대하는 일, 법도 엄격하지만 미국에서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원 탑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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