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는 즐거움 – 골라 즐기는 행복

한국의 장점 중 하나는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바다가 가깝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처럼 대전에 산다면 (자동차로) 동해는 3시간 반, 서해는 2시간, 남해는 4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대전보다 북쪽 지방은 남해가 멀어지는 대신 동해가 가까워질테고 남쪽이라면 그 반대가 된다. 그러니 어디에 살더라도 3시간 안이면 어떤 바다든 한군데에는 도착할 수 있다. 바다를 끔찍하게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엄청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작은 반도국이어서 벌어지는 이 현상^^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작은 육지를 가운데 놓고 위치하는 동해, 서해, 남해가 각각 그 분위기와 매력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동해는 깊고 푸르고 고즈넉하기까지 하면서 세련된 면모가 있다. 서해는 왠지 모르게 시골스러운 장면이 곳곳에 있고 경사가 완만해서 아이들과 해수욕을 즐기기에 적당하고 바다생물들을 살피고 체험하기에 좋은 입지조건이다. 남해는 도시풍의 바다, 젊은이들이 항상 북적북적, 그야말로 생동감이 넘친다.

동해

동해를 대표하는 강릉의 경포대는 조지아 사바나의 Tybee Island를 닮았다. 거뭇한 모래, 너른 백사장, 긴 수평선, 세 사람쯤 앉을 수 있는 나무흔들의자… 찌걱찌걱, 벤치의 낡은 경첩에서 나는 소리마저 닮았다. 흔들벤치에 앉아 깜빡 졸다가 눈을 뜨면 그곳이 강릉인지 사바나인지 잠시 헛갈리리라^^. Tybee Island는 도미 초, 내가 미국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준 곳이다. 햇빛이 나~ 햇빛이 나~ 하며 칭얼대는 두 살 된 큰아이를 데리고 사람의 흔적이라곤 차를 타고 내리는 이들의 발자국만 묻어 있는 주차장을 빙글빙글 돌며 몇 개월을 버티다가 숨통이 막혀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던 어느 날, 4시간을 달려가 닿았던 사바나. 그 밤의 파도소리가 내 가슴에 쌓인 돌을 녹여 숨쉬는 자유를 찾아주었던 것처럼 경포대 흔들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세상사에 눌린 가슴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경포대 가는 길, 원주에서 알탕을 먹고 강릉에서 초당순두부를 먹고 속초 동명항에 있는 콩새식당에서 가자미조림을 먹으면 미쉐린 가이드 투어가 부럽지 않다. 바닷물로 만든 고소하고 부드럽고 단백한 초당순두부는 매콤한 찌개로 먹어도 투박한 모두부로 먹어도 양념장 끼얹어 뚝배기로 먹어도 혀뿌리에는 고소함을, 마음에는 영양담뿍이란 만족감을 넣어준다. 간장과 고춧가루로 밑간을 맞춘 국물에 양념을 넣어 끓인 가자미 조림은 황교익 씨 말대로 죽기 전에 먹어보아야 할 음식같다. 겉은 단단한데 입에 넣어 깨무는 순간, 버터를 넣어 섞은 듯 사르르 녹는 알탕은 주인장의 노하우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가격들도 엄청 착해서 3인에 3,4만원이면 충분하다. 그야말로 한국 사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서해

서해는 백사장의 경사가 완만해서 여름철 가족이 해수욕을 즐기기에 최적화된 곳이기도 하지만 봄이면 키조개 맛조개 백합 등을 어느 때보다 싱싱하게 먹을 수 있고 냉동이 아닌 쭈꾸미와 낙지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4월엔 꽃게가 제철을 맞아 찜이나 찌개로 야들야들한 게맛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동거리가 짧다보니 동해의 대게를 서해에서도 동일한 조건으로 먹을 수 있다. 꽤 비싼 편이지만 함께 나오는 코스, 일명 쯔끼다시가 근사한 곳을 찾으면 오히려 주인장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게 된다. 동해쪽에서는 러시아산 대게를 코스 없이 싸게 먹을 수 있는 곳도 있다하니 3월엔 대게 먹방투어를 하자!!

항간에 사람들은 게가 맛있나, 랍스터가 맛있나를 두고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게는 단백 고소하고 부드러운 식감인 반면 랍스터는 쫄깃 달큰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어떤 것이 더 맛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떻게 조리했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의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게가 유명하고 메인주는 레드 랍스터가 유명해서 현지를 여행하다 먹어본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경우 그냥 끓는 바닷물에 익혀 통째로 먹는데 그러면 게든 랍스터든 엄청 짜다. 게다가 그것을 버터에 찍어 먹는다. 그렇게 랍스터 한 마리씩을 먹다가 우리 딸들은 랍스터 헤이터가 되었다(물론 맛있게 요리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비싼 것이 흠이지만^^). 나고야의 유명한 게집에서 먹었던 킹크랩도 무척 짰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는 전용찜기를 이용, 고유의 단백한 맛을 제대로 살려서 조리한다. 게다가 온갖 색다른 진미를 코스로 함께 먹을 수 있다. 이것은 한국 사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남해

남해의 부산엔 7개의 공설 해수욕장이 있다. 해운대, 광안리, 송도, 송정, 다대포, 일광, 암랑. 그중 유독 해운대와 광안리는 젊음의 도가니다. 계절도 따로 없다. 학생과 청년과 외국인으로 언제나 북새통을 이룬다. 거기에 이 아줌마도 한 몫 낀다.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서 내리면 버스로 해운대까지 일사천리로 당도할 수 있어서 까딱하면 간다.

해운대에서는 호러를 경험할 수 있다. 새우깡 한 봉지면 히치코크의 영화에서나 볼만한 아뜩한 장면이 연출된다. 갈매기 수 십 마리, 때론 기백 마리가 거센 부리를 조아리며 날갯짓을 하면 하늘이 사라진다. 그 중심엔 당당하게 새우깡을 든 사람도 있지만 기겁을 하고 온 몸을 말아 엎드리는 사람이 더 많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나는 갈매기의 무모함을 안다.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바닷가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피크닉을 하느라 밀전병을 만들어 간 적이 있는데 비닐 랩을 벗기려는 순간 갈매기가 달려들더니 덥석 검지손가락을 물었다. 비명을 지르며 손을 떼자 재차 삼차로 달려들어 랩을 뚫고 고기를 물어갔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새우깡을 들고 바닷가에 가지 않는다. 나는 갈매기들이 다 새우깡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서해안 대천해수욕장에서는 갈매기들이 새우깡에 열광하지 않았다. 본둥만둥 했다. 갈매기도 지역색이 있는 모양이라며 농담을 했지만 아마도 조개가 풍부한 서해안에서는 갈매기들이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부산 해운대와 광안리에 유독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유는 주변 환경때문일 것이다. 동해와 서해 주변엔 횟집이나 조개구이 집이 즐비한데 비해 해운대와 광안리 근처는 술집과 고깃집과 카페촌이 형성되어 있다. 환경이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3해의 3색이라! 한국에 살면 바다를 골라 즐기는 이런 행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