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국물에 부유하는 거품을 국자로 떠내듯 대기속 불순물을 싸~악 걷어내고 싶은 욕구는 4월 내내 불끈거렸다. 한국에 왔을 때 고개가 갸웃해 진 것중 하나가 바로 그 탁한 하늘이었지… 회색 그물 한자락 덮힌 듯 대기가 투명하지 않아서 자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그랬던가?…… . 고운 면보를 하늘까지 펼쳐 먼지를 걸러내거나 긴 호스를 우주에 대고 물대포를 쏘는 상상을 즐기는 것은 파래도 너무 파란 하늘 아래서 살았던 후유증일지 몰랐다.

연일 비가 온 덕에 제법 푸르른 하늘이 둥둥 떠있던 4월의 끄트머리, 그만하면 ‘상큼'한 공기를 들이키며 나는 막내네 학교로 갔다. 아이들은 시험기간이었고 학부모들은 시험감독을 하라했다. 시험감독을 하는 이틀동안 동상마임(?)을 펼치는 그들이 또 떠올랐다. 동상처럼 하염없이 멈춰있는 그들… 일 년 전, 큰 애 학교에서 시험감독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예술인들이 아무나 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더 힘든 역할이란 느낌이 절절했기 때문이다. 큰 애 학교는 역사가 오래된 학교건물답게 교실이 하 비좁아서 뒷벽까지 책상이 늘어섰는데 그 사이 어딘가 앉거나 서서 학부모는 시험감독을 해야했다. 교육부?에서 하달된 지시지만 학교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시행해오지 않았으나 그 해엔 어쩔수 없이 따라야 했던 모양이다. 한 번은 뒷 쪽에 서서 한 번은 교실 앞 문 옆에 서서 또는 앉아서… 같이 시험감독을 하는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나의 위치가 결정되었다. 내 앞이나 옆에 있는 학생은 무슨 죄인가란 생각에 나는 겨우 숨만 쉬면서 나무인 듯 붙박혀 있다가 나오곤 했다. 어떤 선생님은 시집을 한 권 내밀며 읽으라 하시기에 옳타꾸나 고개를 쳐박고 시집을 읽는데 책장 넘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기억도 생생하다. 애써 공부하고 열심히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유령처럼 내 존재를 없애는 것이었다. 허나 예상대로 방해를 받았다는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속출했고, 그래서 당장 다음 시험 때부터 학부모시험감독은 사라졌다.

큰 애 고등학교와는 달리 작은 애 중학교에선 그래도 할 일이 있었다. 아직 어린 중학생들이라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주워주어야 했고 수정테이프를 챙겨오지 않았으면 옆 친구 것을 빌려주어야 했고 꼼꼼한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손과 책상 검사를 돕기도 하고,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 때마다 휘날리는 커텐으로 방해를 받는 학생을 위해 창문을 닫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들은 (다행히 그 학교에는 뒤에 조금 여유가 있었다) 뒷자리에 앉아서 동상마임 예술가 빙의를 했다.

나는 북한군도 두려워한다는 중 2 교실에 투입되었는데 뒷모습은 마냥 순진한 청소년들이었다. 물론 게중엔 10분 만에 엎드렸다가 심심했는지 거울을 꺼내들고 쌍꺼풀 테이프를 붙이는 아이도 있었지만, 반 백 년도 넘은 교사(school building), 알미늄 미닫이 문, 회칠한 벽을 가진 교실에 교복을 입고 앉은 모습이 내 중학시절과 어찌나 닮았던지( 물론 신설학교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른 것이 많았다. 천장 한가운데 달린 에어컨, 커다란 삼성TV 모니터, 예쁜 색깔의 커텐, 열쇠달린 사물함… 그 중에 가장 다른 걸 꼽으라면 바로 아이들이지 않을까싶다. 숨돌릴 틈 없이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 비비크림을 바르고 틴트나 고데기를 선물 받는 아이들, 학업수준이 너무 높아져서 시험문제를 한 번 꼬고 두 번 꼬아도 척척 풀어내는 아이들, 기다란 허벅지를 가진 아이들, 같은 모양이 아닌 교복을 입는 아이들(제조사마다 치마의 패턴이 다르고 각자 고쳐 입기도 해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심하게 잘 다루는 아이들, 머리카락이 찰랑대기 보다는 끄슬려 있는 아이들…

아! 그런데 나는 이 아이들에게 고운 면보를 펼쳐 걸러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학원을 좀 걷어내고, 곱디 고운 입술에서 틴트를 얼굴에서 비비크림을 걷어내고, 단백질 충만한 머리칼을 끄슬리는 고대기를 걷어내고, 스마트폰을 걷어낸 손에 책을 쥐어주고 싶다는 욕구가 불끈댔다(뽀얀 분을 바르고 붉은 틴트를 칠하고 끝이 동그랗게 말린 단발머리의 학생이 선생님에게 이끌려 세수를 하고 나온 모습을 대면하고, 시험 시작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불순물을 걷어내면 그리 해맑은 실체가 남는 나이가 그 나이임을 실감했다!). 종이 칠 때까지 시험지를 붙잡고 있는 아이의 행복, 10 분만에 엎드린 아이의 행복이 다 다를 진대 그래도 이 아이들이 숨통도 틔우고 인생의 참가치를 알면 좋겠다는 기원을 하면서 말이다. 학부모가 해야할 역할은 시험감독이 아니라 자녀에게 컨닝이란 인생에 보탬이 되지 않음을 교육하는 일이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