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카페가 참 많다. 한국의 도심지 마을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값은 만만치 않아서 요즈음은 밥을 사나 차를 사나 그 값이 그 값이다. 카페에서는 차와 커피도 팔지만 디저트, 샌드위치나 간단한 식사, 꽃과 화분, 심지어 예쁜 그릇을 더불어 파는 곳도 있다. 저번에 갔던 어떤 카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그 친구들이 막 놀다간 듯 빈티지하고 판타스틱했다. 차는 분위기로 마신다더니 눈이 황홀하고 코가 향그럽고 귀는 감미로워 혀가 달콤했다. 유럽풍 노천카페는 이국적인 멋이 있지만 한국식 꽃카페는 지친 마음을 싱그럽게 되살려주는 마력이 있다. 심신이 리렉스된다.

녹차라떼, 아메리카노, 레몬차, 애플시나몬티도 맛있지만 팥라떼는 정말 살살 녹는다. 곱게 간 팥에 우유를 섞어 만든 달콤한 팥라떼는 조금씩 아껴 먹어도 순식간에 컵바닥이 드러난다. 너무 달지 않고 너무 묽지 않고 너무 싱겁지 않아야 풍미가 살아나는 팥라떼는 이 시대에 탄생된 끝내주는 카페 메뉴다.

카페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은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줌마 군단들이다. 일상을 벗어나 수다를 떨고 있는 그녀들은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아이가 공부는 안하고 게임만 한다고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는 한밤중에 라면을 끓이랜다고 투정하지만 음악소리와 진한 커피향과 동네친구의 미소 띈 고갯짓에 녹아 고민은 불꽃축제처럼 뜨거웠다가도 스르륵 꺼진다. 네 고민은 내 고민이기도 해서 여인들은 수다를 떨면서 외롭지 않고 힘을 얻는다. 이렇게 얻어진 힘으로 어떨 땐 웬수같은 자식과 남편을 위해 다시 빨래와 청소를 하고 밥과 반찬을 짓는다. 그 한 몸을 마음껏 부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밤에 보이는 풍경이다. 식구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와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할 그 시간에도 거리의 카페엔 여전히 삼삼오오의 아줌마군단이 있다. 가끔은 가족이나 데이트족도 보이지만 아줌마군단은 독보적인 존재처럼 카페를 장악한다. 한번은 막내 친구 엄마가 카톡을 보내왔다. 금요일에 저녁 먹고 8시쯤 카페에서 만날까요? 나는 무언가 색다른 외출에대한 기대감으로 옳타꾸나 했지만 막상 그날이 되어 밤에 나가려니 이탈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제각각 일할 곳, 공부할 곳으로 흩어졌다가도 저녁이면 모여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가족 아니던가… 남편과 딸에게 미안한 어색한 발걸음을 떼어내 만나는 장소에 닿았는데 세상에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삼삼오오 아줌마군단이 그곳엔 한가득 있었다.

기왕에 만난 거 나도 미안함 따위 털어내고 신나게 수다에 동참하는데 알고보니 막내 친구들은 그 시간이면 학원에 있다고 했다. 영어, 국어, 수학, 과학… 아이들은 학원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그러고보니 그 아이들은 모두 우등생이었다. 열심히 공부해 특목고를 가고 좋은 대학을 가서 나중에 잘 살기위해 아카데미 학원을 다니는 것이다… 문득 학원에 다니지 않는 우리 막내가 떠올랐다. “엄마, 미국에서 살았다면 키가 조금 더 컸을 것 같아요.” “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하고 잠도 더 많이 잘 수 있었을테니까요…” 두 나라의 실상을 잘 아는 막내가 했던 그럴싸한 논리도 떠올랐다. 

귀국후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온 막내에게 학원을 다녀야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스스로 원한다면 보내겠지만 원하는 기색이 없었다. 중학교에 올라와 홍수처럼 불어난 학습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막내는 지난 시험 때 물에 빠진 듯 허우적거렸지만 얼마만큼 열심히 해야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을 지는 알게 되었단다. 그 경험이 앞으로 어떤 발전을 가져올 지는 모르겠지만 긴 인생에서 공부가 되긴 했겠다.

그러고보니 우리 동네에는 학원도 많다. 그 많은 학원과 카페가 지금 성업중이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니 엄마들은 카페에 모인다. 교육열이 뜨거운 한국의 한 마을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