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실을 안지 1 시간이나 되었을까, 나는 또 다른 죽음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엔 엄마의 지인이었다. 어째 늦게 오신다 했더니 엄마가 좋아하는 동네 동생분이 새벽에 베란다에서 투신자살을 하셨다고 했다. 방이 네 개나 되는 집에서 혼자 살면서 우울증에 시달렸었지. 이번에 병원에서 치료받고 오빠집에서 1주일 쯤 있다가 왔는데 갸가 얼굴에 살이 올라 뽀얗고 참 예쁘더라만... 이미 실컷 우신 탓인지 눈에는 마른 허망만 가득했다. 어떤 전조같은 건 없었냐고 물었더니 나 살고 싶어, 살고 싶어, 했었다고...  우울증의 가장 무서운 유혹은 죽음이라더니 일흔 넷의 할머니가 13 층에서 뛰어내릴만큼 깊어진 마음의 병은 그야말로 섬뜩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가슴이 갑갑하다며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다. 두 달동안 병원에 있다 집에 왔는데 두 달 전에 널었던 빨래가 그대로 걸려있다며 쓸쓸해했지… 그 말을 전해듣는데 얼굴 한번 못 뵌 어느 할머니에게 밀려든 적막과 상실이 내게도 쑤욱 전해졌다. 바로 이웃에 두 아들내외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른 빨래 따위에 더 상심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키우던 손주가 웬만큼 자라자 큰 아들내외가 분가했고 아들과 밀착이 심해서 며느리가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 전후사정이라 했다.

두 상반된 죽음 앞에서 나는 상념이 깊어졌다. 저승길을 떠나는 외롭고 두려운 길목 앞에서 개지만 사람보다 나은 환송을 받은 이유를 자꾸 생각하게 됐다. 그건 '관계의 다름'이 빚은 결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쪽은 관계를 잘 맺었고 한 쪽은 잘 못 맺어 비극을 초래했다.

독거노인… 그 외로움과 고사((lonely death)는 한국과 일본 등에서 당면한 노인들의 현주소이다. 여담이지만 몇 년 전, 세계적인 장수국가인 일본에선 독거노인들의 사망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장수통계가 높아졌다는 슬픈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것이 아직도 풍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과 달리 북미, 서유럽, 동북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등은 1 세대만 사는 것을 넘어 나홀로 가족이 팽창되는 실정이다. 이는 사회가 발달할수록 관계맺기의 어려움을 피하고 싶어하는 편리성과 개인주의 추구의 한 양상인 듯 보인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부모에게 무조건 효도를 해야한다는 의식이 변하고 있다. 효도의 의무에 대한 의구심은 관계의 중요성으로 전환되고 있다. 부모자식간이지만 사랑받고 사랑해야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는 것이다. 젊었을 때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노후에 자식에게 그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야릇한 계산법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 이는 관계의 유착을 위한 좋은 기제였을 수도 있지만 사회가 세분화되고 사고방식이 합리화 되며 개인(이기)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슬픈 유산이었다. 그러므로 부모 자식간이라도 관계를 잘 맺기 위한 방법은 진심을 통한 사랑 뿐, 잘못된 유착이나 집착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함께 살던 배우자가 죽고 빈 공간이 못견디게 차갑고 서운하게 느껴진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할까. 떠난 이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또 다른 관계를 맺는 방법밖엔 없을 것이다. 취미나 일 그리고 친구. 빈집에서 혼자 외로워 우울하다면 미국처럼 양로원이나 요양원처럼 친구가 모여있는 곳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최근에 디어 마이 프렌드라는 드라마를 몇 편 보았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병든 엄마들이 자신의 옆자리에 친구들을 앉히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장면은 통쾌, 감동스럽기도 했거니와 한국사회의 새로운 면모를 엿보이기까지 했다. 어렸을 때는 부모형제와, 청장년에는 배우자와 자녀와, 말년에는 배우자와 친구간 밀착으로 관계그래프를 그려간다면 노년에 잘못된 외로움으로 인생을 어지럽히는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