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이후 – 결국은 따뜻한 이야기

전주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4남 3녀중 사내로 막내인 전주 작은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중이셨다. 위로 층층이 형들과 누나는 아직 살아있는데 막내를 먼저 맞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래서 반갑기 보다 가슴이 미어지실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숨을 쉬고 음식을 씹고 생리작용과 배설을 하고…

그런데 진정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일상을 활기 있게 영위하고,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개인의 선한 의지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때때로 여가를 즐기고…

미국의 철학가이자 연설가인 스코트 니어링의 죽음을 대했을 때 나는 뭐랄까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했다. 그는 그.냥. 살아있는 것 말고 진정으로 살아있기를 원했고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생의 주체가 되기를 원했고 그는 그것을 이루었다. 원하던 교수로서의 삶을 영위하지 못했고 사랑하는 헬렌 니어링과 정식으로 혼인하지 못했고 그녀와의 사이에 아이를 갖지 않았지만 그의 삶이 칭송될 수 있는 이유는 선각자가 되어 자신이 옳다고 추구해온 것을 만인에게 설파한 힘과 그 과정에도 있겠지만 죽음을 자신의 의지대로 완성시킨 마지막 화룡점정 때문일 지 모른다.

인명은 제천이긴 하다. 내 목숨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났 듯이 내 죽음도 하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질 것은 순리이다. 그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죄이며 불행한 삶의 표상이 된다. 햄릿의 말마따나 하나님이 굳혀 놓은 법칙이어서 일본의 카미카제 특공대나 아랍의 ISIS 테러범들처럼 그릇된 소명의식을 가진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스코트 니어링과 같은 죽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순전히 내 가치관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참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할 때 선택하는 죽음은 다른 차원이 된다. 참용기가 있어야 하고 바른 철학이 있어야 하고 꿋꿋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부음소식을 들으면 먼저 놀라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 때문에 목이 심하게 눌리는 통증이 있는데 이번에 나는 조금 다르다. 작은 아버지가 스코트 니어링을 아셨는 지 어쨌는 지는 모르지만 스코트 니어링처럼 스스로의 삶을 당신의 의지로 마무리 지으셨기 때문이다. 고인의 배려와 사랑과 각오를 느끼기 때문이다. 곡기를 끊기 전에 조카의 결혼식까지 버티고 또 추석까지 버티고… 이렇게 계획을 세우셨다고 한다. 그건 경사를 앞두고 명절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범인은 감히 이루지 못할 행보이다. 그때 숨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씩만 드시고 계신다며 작은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안타까워 하셨다.

이렇게 목적의식을 가지고 조금씩 연명해서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하시는데 그 말을 들은 내 목에서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암투병 하는 남편 병수발 들면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 어찌 가슴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로 이런 바람을 소원하는지… 사회적으로 보면 일개 촌부에 불과한 두 분의 정신세계가 눈부셔 나는 하얗게 고개를 숙였다.

더이상 사랑하는 가족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은 가장의 마음과 내 고생같은 건 안중에 없이 그저 남편이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아내의 마음… 내겐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보다 따뜻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