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이후 – 말, 말, 말…

(그 집 부엌 2탄)

그 집 부엌에서 오랫동안 밥을 먹지 못했다. 자, 봉사자들 점심 먹읍시다, 소리가 들리면 마지막까지 설거지통에서 접시를 닦다가 하나 둘씩 식판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갈 때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들꽃 냄새도 맡고 땅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들한테 스토커 짓도 하고 하늘도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돌아왔다. 고개를 갸웃하며 점심 드셨어요? 라고 묻는 분께는 어물쩡 웃기만 했다. 그런 짓도 한 두 번이지 몇 번씩 거듭되는 어물쩡한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린 분들은 열심히 일만 하고 밥을 못 드셔서 어째요,라고 걱정을 하셨다. 그 말에 내가 더 송구해진 건 우리는 잘 먹을 수 있는데 유별이네요, 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 3 백명으로 꽉 찼던 홀은 썰물처럼 급식자들이 빠져나가도 멸균되지 않은 냄새가 빛처럼 곳곳에 퍼져 내 콧속을 비집고 들어와 위장을 쥐락펴락 한다. 밥과 함께 그 냄새가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환경은 여전한데도 최근에는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식판과 수저를 끓는 물에 삶기 시작하신 봉사단장님의 배려도 있었지만 봉사단체에서 제공하는 이 음식에 대해 예의를 보여야 할 것 같은 자의식이 생긴 때문이었다. 어느 날 단장님이 말했다.

“식구들 먹이는 재료보다 더 좋고 신선한 것을 사용하지만 제일 하등품을 사용한다고 믿고 있는 급식자들때문에 속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내가 당당하면 그만이고 그렇게 생각해도 먹으러 와 주잖아요. 그러면 됐지…”

그런 단장님의 음식을 먹지 않으면, 식판과 수저까지 삶아냈는데 그런다면 참 마음이 속상하실 것 같아서 먹기 시작했다. 식재료들을 직접 대하는 우리는 신선한 먹거리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요리된 음식만 대하는 급식자들은 그런 의구심이 이는가 보았다. 게다가 항상 부엌에서 봉사를 하다 그날따라 홀에서 서비스를 하게 되었는데 “이 두부 어디에선가 가져왔지요?” 라고 묻는 분이 계시길래 “아니요, 여기서 조리했어요.” 라고 답했더니 “두부는 어디서 남는 거(유통기한 지난 거) 받아왔겠지…” 라는 혼잣말이 돌아왔다. 이런 말들 때문에 단장님이 속상했겠구나… 실감이 났고 그래서 식욕이 일지 않더라도 먹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남은 음식 봉다리를 내밀었을 때는 사양하지 않고 들고 왔다. 돌아올 땐 그랬다. “참 맛있어 보이네요. 잘 먹겠습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에는 온도가 있단다. 그러고보니 그래서 따뜻한 말, 차가운 말이란 표현이 생겨났군요^^ 죽마고우도 말 한마디에 갈라지고, 비단 대단 곱다 해도 말같이 고운 것은 없다는 속담은 단지 말이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말은 마음이고 생각이다. 마음을 대변하는 말, 따뜻하면 따뜻할수록 세상도 더불어 온유해지지 않겠는가.

미국 대선주자인 트럼프한테 영 신뢰가 가지 않는 것도 그의 맹목적인 이익추구, 국가 이기주의적인 발상과, 교양과 품격이 떨어져 대통령으로서의 인성과 자질이 의심되는 그의 말, 말 때문인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