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이후 – 이뻐지려다 망했다!

나는 마흔 즈음까지 눈가 주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그 이유는 거울을 볼 때 눈동자를 응시했기 때문이다. 나는 남의 얼굴에서도 눈동자를 본다. 그건 오래된 버릇이고 그래서 얼굴의 다른 부위가 어찌 생겼는 지 잘 알지 못한다. 눈썹뼈와 콧대가 어찌 연결되어 있고 광대가 어떤 모양이고 부위별 비율이 어찌 되고…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한국에 와서 타인의 입을 통해,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얼굴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일반인들도 교과서적 미의 기준과 인체 계측법에 의거해 타인을 쳐다본다.

한국은 개성 보다는 정형화된 미의 기준이 판을 치는 나라다. 강남에 가면 그 여자가 그 여자같은 느낌을 틀림없이 받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눈은 커야 하고 이마는 툭 불거져야 하고 코는 높아야 하고 얼굴은 작아야 하고 피부는 나이가 어찌 되었건 팽팽하고 백옥처럼 희어야 하고… 그런 획일화된 모양을 동경해서 성형을 받기 때문이다. 솔직히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미적 감각을 검증받고 자격증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그들의 기술력으로 재탄생된 미녀들의 모습이 엇비슷해져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큰 딸아이는 한국 친구들이 눈머리를 덮고있는 몽고주름을 지적하면서 너무 심해서 장애인 수준이라는 평가를 듣고 쌍꺼풀 수술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 농담이라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친구들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겠는가. 그때 나는 몽고주름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나로부터 유전된 인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내 나이 마흔 중반을 넘어 알게 된 사실을 한국에선 웬만한 중등생들도 다 알고 있었다. 만 12세를 넘긴 한국의 여인이라면 그 정형화된 미의 기준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귀국하던 첫 해, 보톡스를 맞은 여인을 처음 보았다. 이웃 주민이었던 그 여인은 40 초반쯤 되었을까? 마침 우리 집에 놀러 온 또다른 이웃한테 보톡스를 맞았는데 퉁퉁 부었다며 그녀가 전화를 했다. 나로서는 그때 받은 쇼크가 가히 문화충격 수준이었다. 그녀는 연예인도 아니고 외모를 가꿔야 할 직종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련된 치장과도 거리가 먼 묘사하자면 컨츄리풍의 가정주부였다. 그녀조차 보톡스를 맞는다는 의미는 이 사회에 그것이 얼마만큼 침투되어 있는지를 증빙해주는 셈이었다. 그런 사람들 많아요… 전화를 끊고 놀라고 있는 내게 간호사출신인 이웃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심상히 말했다. 얼마후 보톡스를 맞은 이웃을 보았는데 30대 중반처럼 젊어 보였을 뿐 아니라 인상도 달라져 있었다. 저래서 맞는구나… 산 경험이 되었다. 한번은 급식봉사에서 만난 60 초반의 여인이 인조눈썹은 기본이며 필러도 살짝살짝 해주면 좋다고 당당히 밝히는 것을 들었다. 당당히 밝힌다는 말은 본인의 표현이었다. 즉 다들 하면서도 쉬쉬하지만 자신은 당당히 밝힌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고보니 그 옆에 있던 여인도 바비인형처럼 예쁘고 두터운 눈썹을 달고 계셨다. 봉사활동을 하는 마음 곁에 미에 대한 갈망이 공존할 수 있는 게 여자의 본능임을 실감했다. 또 가끔은 분명 중년인 것 같은데 턱부터 뺨을 다리미로 편 듯 뺀뺀한 여인을 본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엔 어찌 저런 뺨을 가졌을까 의아했는데 지금은 뭔가 시술을 했다는 정도는 눈치를 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눈두덩에 살짝 바늘땀을 떠서 쌍꺼풀을 만든 이후 비비와 립스틱만 바르고 얼굴에서 눈동자만 쳐다보며 살던 내 미의 세계에 바람을 넣기 시작한다. 다른 건 엄두가 안 났지만 화장을 즐겨하지 않는 터라 피부에 잡티를 없애고 싶은 욕구는 거듭 꾸물댔다. 그래서 친구따라 그녀가 해서 덕을 봤다는 레이저를 쐬러 동네 의원에 가게 된다. 하지만 뜨거운 열선으로 고문은 고문대로 받고 다음 날 피부가 뒤집어지는 불상사를 몇 번 겪다 보니 이게 할 짓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중간에 그만두니 결국 잡티만 더 진해진 비극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싼 가격에 혹해서 비전문의가 시술하는 곳을 찾았던 탓을 해야할까? 허나 그곳에서 시술을 받고 백옥미녀가 된 친구가 옆에 있으니 문제는 빌어먹을 내 피부지 누구 탓을 할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렇게 이뻐지려다 망했다. 눈동자를 쳐다보고 살던 때가 행복했음을... 

PS. 그런데 이 나라엔 이뻐지고도 망한 여인이 있다. 그녀도 여자인지라 외모 가꾸기를 게을리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럴 시간에 나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신을 조금 더 돌보았으면 지금 나라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겠나… 주변의 옥석도 제대로 못 가리고 이상한 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동안 안티에이징에는 성공했을 지 모르나 자신이 약속한 말조차 못 지키면서 젊음만 지켜낸 그 여인… 겉만 이뻐지면 뭐하나 속이 이뻐야지…… . 그녀때문에 사단 난 이 정국을 지켜보면서 이 진리도 함께 촛불 속에 밝혀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