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이후 - 위기에 휩싸인 한국을 바라보며
Yunah Kim (kyeonah)
2016-2-29 17:59:29
한국에 온 이후 - 위기에 휩싸인 한국을 바라보며
-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집 앞에 있는 작은 세탁소를 이용했다. 낡은 기계를 갖추고 부부 둘이서 땀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 가격이 조금 싸다고 새로 오픈한 곳으로 발길을 돌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옷장을 정리하다가 지난 가을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겼던 옷의 암홀(arm hall) 부분에 하얗게 얼룩이 진 것을 발견했다. 집에서 물빨래로 지르잡을 수도 없는 재질이라 다시 세탁소를 찾았다. 나는 고의성이 없는 실수를 두고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손하게 그 부분만 다시 처리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부인은 옷을 이리저리 살피고 맡긴 시기를 기록으로 확인하더니 다짜고짜 입었구먼, 이라는 혼잣말을 뱉어냈다. 그 옷은 실크 재질의 민소매 블라우스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늦가을에 세탁해서 겨울을 지내는 동안 다시 입었을 거라는 의심은 품지 못할 것이다. 뭐 그런 상식을 떠나더라도 몇 천원 아끼려고 입은 옷을 가지고 와서 거짓말 할 사람으로 나를 바라보다니… 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부인이 나를 잘 알지도 못 할 뿐더러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겪으면서 사람에 대해 불신을 키운 시선을 한 번쯤은 유하게 넘겨야 할 것 같아서 "저는 추위를 너무 타서 이런 옷을 겨울에 입지 못해요” 라며 겹겹이 껴입은 내 입성을 내보였다. 그런데 옆에 있던 남편 주인장이 입은 거여, 라고 또 한번의 어퍼컷을 매기는 것이다. 세상에 어쩌면… 이라는 말은 놀라움과 분노가 분기탱천해서 절로 튀어나온 내 언어였다. 그랬더니 부인이 “어쩌면 뭐요? 그 마누라에 그 남편이라고?” 란 훅컷을 또 날리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잽싸게 암홀 부분에 스프레이를 뿌려 다림질을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돌아가는 혈류의 흐름을 심장과 뒷목으로 느끼며 내 대신 스팀을 뿜어대는 납작 엎드린 옷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그곳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입은 옷이라면서 세탁은 왜 해주는가?
-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그 옷매장을 두세차례 이용했었다. 한번은 썩 마음에 드는 가디건 하나를 구입했는데 살 때는 몰랐으나 한 부분의 직조가 성겨서 빛이 훤히 비쳐보이길래 교환하러 갔다. 산 다음다음날이었으니 그닥 늦장을 부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안면도 있는 매니저가 연신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면하더니 언제 냄새를 맡았는 지 옷을 입었던 건 아니냐고 물었다.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미리 정황을 이야기 했었다. 쇼핑백에서 꺼내 옷걸이에 걸려다 보니 불빛이 통과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대로 가져왔다고… 그렇지 않아도 새 옷이라고 건네받았는데 새 옷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 나였다. 사실 별 것 아닌 헤프닝이지만 이미 상세히 밝힌 내 말을 믿지 않고 계속 의심을 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반감이 심히 일었다. 환불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같은 제품으로 교환하는 상황을 그렇게 껄끄럽게 만들어 좋을 일이 무엇이겠는가. 살 때는 웃고 교환할 때는 찌뿌리는 상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나를 자꾸 의심하는 사람과 미래에 또 마주하고 싶겠는가. 사람을 상대하면서 사람 볼 줄 아는 눈이 없어서 어떻하나. 어차피 바꿔주면서도 고객을 잃는 그녀의 상술이 적쟎이 안타까웠다.
- 상하이에 갔을 때였다. 클린징 티슈가 필요해서 세포라에 들어갔다. 비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필요하니 구매해서 매장을 나왔는데 모퉁이를 도는 순간 이니스프리가 보였다. 거기선 반값이면 클린징 티슈를 살 수 있었다. 써봤던 제품이기도 하고 기왕에 한국 것으로 사자는 생각에 반품을 하러 세포라에 갔다. 그런데 반품불가란 답변이 돌아왔다. 영수증에 씌여있는 중국어를 가리키며 환불은 불가하고 조건을 충족하면 교환만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중국어를 모를 뿐더러 사전에 그런 주의사항을 듣지 못 했다고 항변했다. 세포라는 서양의 다국적기업이니만큼 소비자보호규정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중국인 직원은 강경했다. 그래서 매니저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더니 누군가를 데려왔다. 그 사람은 조금 유한 태도를 취했지만 여전히 반품이 불가하다는 소리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결국 총책임자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다시 정황을 이야기해야 했다. 사전에 어떤 방침도 듣지 못 했고 산 지 채 5 분도 되지 않은 미개봉제품을 환불할 수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따졌더니(미국문화에 익숙한 내 관념이었다) 중국인들은 다 아는 규정이라고 했다. 나는 중국인도 아니고 온당치 않은 억지에 굴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 즈음에 조금 지쳤다. 같은 설명을 여러번 반복해야 하는 건 검찰의 조지기수법중 한가지로 씌일만큼 사람을 지치게 한다. 게다가 일대 삼의 인해전술도 있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한다는 진리도 떠오르고 여행 와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뇨?란 자책도 생겼다. 다행히 총책임자는 상냥한 태도로 소소한 선물을 제안했고 그렇지 않아도 실갱이를 그만 두고 싶던 차에 슬그머니 나는 오케이를 선언했다.
-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중국인과 중국, 한국인과 한국을 하나로 보지 않았다. 문득 과거의 이 사사로운 에피소드가 떠오른 이유는 현재 무지한 북한으로인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국가간 갈등을 지켜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를 새로이 느꼈기 때문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국에서의 헤프닝은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경고망동으로 고객을 잃은 경우였다. 반면 상하이에서 세포라측(중국인들)은 자신의 원칙을 끝까지 주장하면서 교묘히 상대를 물리쳤다. 국민이 모여 나라를 이루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나라의 성질을 대변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외국인에게 중국인의 상식을 들이대는 강짜와, 이익을 위해 정해진 방침을 고수하는 강성과, 교묘히 윈윈(win-win)을 이끌어내는 강수가 중국인과 중국은 닮았다. 강하다. 미국 살 때는 중국의 파워나 위상이 그닥 피부에 와닿지 않았는데 한국에 있자니 중국은 한국에게 막강 파워를 가진 커다란 이웃이다. 한국이 강대국을 상대하려면 파워를 가져야 하는데 먼저 국민성(사고방식)부터 대범하고 쿨해져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 하루빨리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남북이 하나 되는 일만큼 한국이 커질 지름길은 없다. 더이상 전쟁위기설에 휩싸일 일도 없다. 세계인이 위태롭게 지켜보는 한반도… 일단 우리는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냐며 오늘도 고요히 아침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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